날 시험하지마!
날 시험하지마!
2016.10.18 15:59 by 시골교사

‘10명 중 4명.’

독일 대학에서 치르는 시험의 낙제율이다. 꽤 많다 싶은 이 수치가 때론 60%까지 올라가기도 하니, 그야말로 살벌하다.

우리 학과(경제학)의 평가방식은 절대평가였는데, 높은 낙제율을 굳이 낮추려 하지 않는다. 낙제가 두려운 진짜 이유는 제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 경제학과는 학칙에 따라 5학기 안에 13개의 필수과목을 이수해야 하는데 이를 수행하지 못하면 자동 제적이다. 5학기 안에 13과목 통과. 말은 쉬워 보이지만, 앞서 언급한 낙제율을 고려하면 가시밭길이다.

실제로 우리 과의 경우, 대학에서 대학원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절반 이상이 탈락했다.

내겐 너무 냉정한 강의실 (사진:시골교사)

제적을 당하면, 말 그대로 더 이상 그 학교에선 같은 전공을 공부할 수 없다. 다른 주로 학교를 옮기거나, 교내에서 전공과목을 바꾸어야 한다. 특히 유학생이 한 번 제적을 당하면 더 이상 독일에 있는 6년제 대학(Universitaet)의 경제학부에서 공부할 수 없었다. 경제학을 공부하려면 전문대(Fach-Schule)로 내려가야 한다.

제적이 주는 의미는 이참에 본인의 적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뜻이기도 하다. 공부 자체가 적성에 맞는지, 아님 그 과목이 본인과 맞는지 여부를 판단해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런 학과 규정 때문에 대학과정 내내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다. ‘아차’ 하다간 곧 제적감이기 때문이다.

‘아차…’(사진:DarkBird/shutterstock.com)

 

| 분명 공부한 내용인데…

경제학과의 봄 학기는 3월 중순쯤 시작돼 7월초에 교과진도가 모두 마무리 된다. 진도가 끝나면 바로 시험기간, 중간고사는 따로 없기 때문에, 통상 7월부터 약 한 달 정도가 시험기간으로 소요된다. 시험기간이 길어 지루할 수도 있지만, 시간에 늘 쫓기는 나로서는 오히려 다행이었다.

시험이 워낙 중요하다보니, 시험기간은 분위기가 남다르다. 준비도 많이 한다. 시험 대비가 어느 정도 돼있는 학생이라면 시험지를 받고 크게 당황할 일은 없다. 전혀 예상치 못한 문제가 나오거나, 지나치게 꼬여 나오는 경우를 제외하곤 말이다.

하지만 돌발상황이 생길 때도 있다. 공부는 많이 한 것 같은데 전혀 문제를 못 풀겠는, 그런 상황 말이다. 이는 대부분 시험 문제의 의도 파악이 잘 안 되는 경우다. 시험에서 묻는 물음의 의도가 무엇인지 도무지 해석이 안 되는 것이다. 수학이나 통계처럼 계산문제가 많은 과목은 괜찮지만 이론 과목의 경우는 가끔 이런 일이 발생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외국인 학생에게는 사전 반입을 허용한다는 점인데, 이것도 어느 순간부터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시험장에서 사전을 뒤적일 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없는데다, 실제 시험장에서는 단순한 사전이 아니라 전공사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머리 터지도록 외워 들어가서 문제조차 이해 못하다니… 얼굴은 창백해지고, 초초함으로 시계만 자꾸 쳐다보게 되며, 초점 풀린 눈동자를 허공으로 굴려댄다. 그러다 시험 감독자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오해받기 딱 좋은 상황이 연출된다.

그래, 포기하면 여러모로 편하다.(사진:Antonio Guillem/shutterstock.com)

 

| 뼈에 새겨지는 시험내용

'전공내용이 뼈에 새겨진다, 새겨져!'

시험장을 나온 유학생들끼리 주고받는 농담이다. 시험이 끝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외운 내용이 머릿속에서 지워져야 정상이고, 정신건강에도 그런 편이 좋으련만… 시험 후에도 머릿속에서 그 내용들이 맴맴 거리니 미칠 지경이다. 시험장에서 다 쏟아 붇지 못한 아쉬움과 함께,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시작되는 합격, 불합격 결과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다.

불안감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을 남긴다. ‘문제를 맞힌 걸까?’ 내가 정말 그 문제를 정확히 이해한 걸까?’, ‘채점하는 조교가 내가 쓴 독일어를 제대로 이해할까?’, ‘더하기 빼기는 정확히 한 걸까? 등등…

결과가 발표될 때까진 그렇게 속이 시끄럽다.

 

germany

커피 한 잔의 사치?

‘시험공부에 지쳐있을 때 누군가 어깨를 두드리며 고갯짓을 한다. 반가운 마음에 선뜻 의자를 박차고 일어선다. 이내 커피 자판기 앞으로 자리를 바꿔,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긴다.’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익숙한 풍경. 하지만 유학생에겐 여유라기 보단 사치에 가깝습니다. 대학 내의 자판기에서 뽑아먹는 원두커피 한 잔은 50센트, 한화 약 700원 정도에 불과하지만, 가난한 유학생 부부에겐 이조차 어려운 선택의 문제죠. 그래서 우리 부부는 각자 하루 종일 먹을 분량의 커피를 집에서 내려서 가지고 다녔습니다. 

하지만 사람 사는 게 뜻대로만 될 리 없죠. 아주 어쩌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판기 커피를 마시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어려운 선택’의 과정을 거친 커피여서 그런지 집에서 내려가는 커피맛과는 비교가 되질 않습니다. 그렇게 도서관 휴게실에서, 혹은 잔디밭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꽃을 피워갑니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 한 잔을 두고 말이죠.

(사진:Andrey_Popov/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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