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멩고와 투우의 나라, 정열적인 낭만이 살아 숨 쉬는 곳. 스페인에 언젠가 한 번은 꼭 한 번 가보겠노라 마음먹었었다. 그리고 그 ‘언젠가’는 필자의 생각보다 훨씬 빨리 찾아왔다. 스페인에서 일주일 간 머무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거다. 보통 유럽 여행을 떠나면 소위 ‘뽕을(?) 뽑겠다’는 마음으로 여러 국가를 조금씩 여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상하게도 그러기 싫었다. 차라리 한 나라, 한 도시, 한 장소에 내내 머무르며 그 공간을 ‘내 것’으로 체화시키고 싶었다. 그게 스페인이었고, 그 중에서도 바르셀로나였다.
스페인에 지금의 모습으로 흡수되기 전까지 바르셀로나는 ‘까탈루냐 군주국’의 수도 역할을 해왔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다. 그래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해 자치국가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또한 가우디라는 걸출한 건축가를 낳았고, 그 건축가 한 명이 그가 사망한 지금까지도 관광객들을 이 도시로 불러 모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황영조가 금메달을 땄던 바르셀로나 올림픽으로도 친숙한 도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바르셀로나는 지중해의 낭만을 가득 느낄 수 있는, 해변과 가까운 대도시이다.
바르셀로나 최대 번화가인 그라시아 지구를 기준으로, 우리 나라의 명동과도 같은 람브라스 길을 따라 주욱 내려가면 아메리카 대륙을 탐험했던 콜럼버스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높이 약 60m의 이 동상은 자유의 여신상이나 에펠탑처럼 직접 올라가 바르셀로나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당신의 시야에 콜럼버스 동상이 나타났다면 지중해가 머지않았다는 뜻이다. 동상의 왼쪽으로 조금만 더 발품을 팔면 벨 포트(항구)와 바르셀로네타 해변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다.
걸어가는 길에는 카탈루냐 박물관과 대관람차를 비롯한 소박한 놀이동산, 프리마켓, 그리고 예술가들의 거리 공연 등이 있어 눈과 귀가 지루하지 않다.
그러다 보면 벨 포트로 향하는 길이 먼저 나오는데, 이곳은 많은 요트와 배들을 정박해 두는 곳이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요트 경기가 열리기도 했던 곳이라고 한다. 요트들을 뒤로하고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대형 쇼핑몰과 아쿠아리움도 여유를 즐기러 온 가족, 친구 단위의 사람들로 북적인다. 본격적인 바다를 만나기에 앞서 지중해의 이국적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좋은 장소인 것 같았다.
바르셀로네타 해변으로 가는 길에 만난 버스커를 영상에 담았다.
그러나 아직 바르셀로네타 해변을 만나려면 조금 더 걸어야 한다. 대로에서 빠져 작은 골목길로도 들어가 봤다. 방금 전의 대도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주거지가 펼쳐졌다. 바르셀로네타가 과거 항구 근로자들과 어부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
여자 혼자 그런 길을 걷는 것이, 해가 떠있는 낮이었음에도 처음에는 조금 무서웠다. 하지만 마주쳤던 그들의 눈빛은 따스했고, 우리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약간 지쳐 있던 나도, 그 온기 덕분에 더 힘을 내서 바다를 향해 걸어갈 수 있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해수욕장 특유의 시끌벅적함이 느껴졌다. 드디어 바르셀로네타 해변에 도착한 것이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이곳은 사람들이 일부러 모래와 나무 등을 실어 날라 조성한 인공해변이다. 그래서일까. 유난히 말끔하게 정리된 길들과 산책로, 벤치 등이 다소 인간미 없게도 느껴졌지만, 사람들이 더욱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해변인 이유기도 하다.
흐린 날씨였음에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 일요일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 모습도 상당히 자유분방해서 좋았다. 서로 등을 기댄 채 다른 곳을 보고 있는 친구들, 돗자리를 깔아 놓고 피크닉을 만끽하는 가족들, 네트 아래에서 발리볼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아예 아무것도 없이 모래 위에 드러누운 사람까지…. 덕분에 늘 눈치 보며 살던 필자도 스스로를 좀 놓아버릴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주변에 식당들이 많지만, 필자는 근처 보른 지구에서 ‘현지인 맛집’으로 소문난 수제버거집 ‘핌 팜 버거(Pim Pam Burger)’에서 유명한 감자튀김을 사서 갔다. (Google Maps로 검색하면 그 가게에서 해변까지 약 20분 정도가 걸린다고 나온다. 하지만 조금 헤맨 탓에 그 보다 조금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우리나라의 해수욕장들처럼 이곳 역시 해변 주변 식당들의 물가가 비쌌다. 굳이 그리 비싼 값을 주지 않더라도 바르셀로나에는 수많은 맛집들이 즐비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어쨌든 깔고 앉을 것 하나 없이 그냥 모래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감자튀김을 펼쳐 먹기 시작했다. 별다를 것 없어 보였는데 정말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여전히 의문이다. 그게 그렇게 특별한 맛을 자랑하는 음식이었던 걸까. 아마도 아니었을 것이다. 오랜만에 가져보는 그토록 철저한 자유로움에 가슴 벅차게 설레 뭘 먹어도 맛있는, 그런 기분이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누구도 혼자 앉아 있는 필자를 청승맞게 보거나 '여자 혼자 뭐하는 걸까' 하며 힐끔거리지 않았으니까. 모두가 각자의 지중해를 독립적으로 맛보고 있었으니까.
한가로이 걷다 보니 눈에 띄는 조형물이 두 개 있었다.
이 특이한 탑(?)은 1992년에 세워져 이제는 바르셀로네타 해변의 상징이 된, 독일의 예술가 레베카 호른(Rebecca Horn)의 <Homenatge a la Barceloneta>라는 작품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당시, 그 때도 즐비하던 해변 주변의 레스토랑이나 바들이 한시적으로 운영을 멈추었단다.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가 담겨 있는 작품이라고 하는데, 현재는 해변의 명물이 되어 여전히 줄지어 서있는 레스토랑과 바들의 영업을 오히려 돕고 있는 것 같다. 역시 모든 세상 일은 길게 보고 생각할 일이다.
첫 번째 조형물이 아름다운 과거를 추억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면, 두 번째로 만난 것은 가슴 아픈 현재에 관한 것이었다. 3609. 목숨을 걸고 지중해 바다를 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죽어가고 있는 전쟁 난민들의 숫자란다. 이 표지판에는 그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겠노라는 바르셀로나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표지판 앞에서,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이 행복이 누군가에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일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또한 지구상에서 그들처럼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사람들에게도 지금의 나와 같은 행복이 빠른 시일 내에 도착하기를 기도했다.
필자의 숙소는 람블라스 거리가 시작되는 어딘가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에서 바르셀로네타 해변까지 걷는 것이 솔직히 만만한 거리는 아니기 때문에, 가는 중간중간 다리가 아프고 힘들었다. 그러나 빨리 도착하는 것보다 쉬엄쉬엄, 주변의 사람과 사물에 애정 어린 시선을 보내며 즐기는 편을 택했다. 그러다 보니, 단순히 최종 목적지였던 '바다' 못지 않은 아름다운 모습들을 차곡차곡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이 여정 속에서 필자는 일상 속에서 잃어 왔던 많은 것을 찾고 돌아왔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주변을 응시하는 여유'였다. 그 풍요로운 시선에 다른 사람에 대한 섣부른 판단이나 질투 따위가 자리할 틈은 없었다.
/사진: 이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