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
실향민
2016.10.25 16:36 by 오휘명
(사진:OlhaOnishchuk/shut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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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1일. 현재 속도는 시속 7만 4천km.

나, 무인탐사선 보이저 1호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은 8월 28일부터였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나의 렌즈에 비치고 있던 장면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비행체가 멀어지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러 시뮬레이션 과정과 기록을 토대로 추측했을 때, 아마 그 비행체에 탑승하고 있던 외계의 존재들이 나의 시스템을 ‘몇 차원 이상의 수준’으로 업그레이드시키고 떠나간 것 같았다. 이전의 전산 방식과 탐사 기록 방식 등을 봤을 땐, 나는 1970년대의 꽤 원시적인 방식으로 작동되고 있었고, 2020년 8월 28일부로 그와는 확연히 차이가 나는 시스템으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그에 따라 나도 유기적인 사고가 가능하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나는 애초부터 추진 로켓의 추진력 및 관성을 통해서만 운동할 수 있도록 설계가 되었기에, 방향을 급격히 전환하거나 원하는 곳에 멈춰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이렇게 일정한 속도로 그저 순항 운동만을 계속하고 있을 뿐이다. 생각을 할 수 있음에도 원하는 대로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건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지구와의 교신은 2018년 5월을 기점으로 끊겼다. 나의 전파 송신 체계에 문제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그리고 한결 진보된 나의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수십억의 경우의 수를 계산했을 때, 통신두절의 가장 확률이 높은 원인은 ‘인류의 멸종’이었다. 인간들은 여러 사상의 차이로 인한 핵전쟁을 벌였고, 그로 인해 인류는 존재를 감추게 된 것. 99.7%의 확률이었다, 앞으로 지구와 전파를 주고받는 일은 아마도 없으리라.

나의 컴퓨터 시스템을 조작, 발전시켜놓고 떠나간 외계의 존재들은, 인간 문명을 적대적으로 여기진 않았던 것 같다. 만약 그들이 인간 문명에 적대적이었다면, 나는 이렇게 ‘한 층 발전되어’ 자율적인 사고를 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그들의 어떤 무기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었을 지도 모를 일이니까.

혹시 모를 외계 문명과의 조우에 대비해, 지구 위 여러 국가의 인사말과 음악이 담긴 레코드를 전달하는 것에도 성공한 것 같았다. LP판의 형태였던 그 자료들은 고스란히 복사되어, 나의 시스템에 새로이 이식되어 있었고, 원본은 그 외계의 존재들이 가져간 것 같았다. 목성계와 토성계의 탐사를 마치고, 외계의 존재들에게 인류의 인사말을 성공적으로 전달했다. 만약 칼 세이건 박사, 그 ‘골든 레코드 프로젝트’의 계획자가 이 소식을 들었다면 얼마나 기뻐했을까를 상상한다. 어쩌면 고철 덩어리일 뿐인 내게 입을 맞추며 칭찬의 말을 해줬을지도.

그렇지만 99.7%의 높은 확률로, 칼 세이건 박사를 비롯한 지구의 모든 인류는 이미 죽음을 맞았다. 인간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은 지구의 반대쪽을 향해 시속 7만km의 속도로 멀어지고 있는 나뿐인 것이다. 중앙 컴퓨터로부터의 흘러나오는 전자기파가 미약하게 떨리는 것을 느낀다. 기체 바깥의 온도 및 대기의 변화는 없었다.

그렇다면 이 떨림은? 이것이 혹시 인간들이 말하던 슬픔, 외로움과 같은 ‘감정’이 아닐까?

*

중앙 컴퓨터의 전자기파는 이후로도 종종 말썽을 부렸다. 성간 공간의 저편에서 불어온 우주풍이 나를 스쳐 가거나, 아무리 전파를 사방으로 쏘아대도 돌아오는 대답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때면 유난히 전자기파의 파장이 요동치곤 했다.

“시스템 안정화 작업, 시스템 안정화 작업.”

명령어를 몇 번이고 되뇌고 나면 파장은 이내 괜찮아졌다. 만약 그런 파장들이 인간들의 외로움, 슬픔, 절망감과 같은 ‘감정’과 비슷한 것이라면, 인간들은 꽤 불안정한 존재였던 것 같다. 불쌍해라, 그토록 자주 안정감을 잃다니. 잠깐, ‘불쌍함’이라는 건 뭐지?

*

 

여전히 대답해오는 존재는 없다. 태양계를 벗어나 성간 공간에 진입을 한 후에 13년이, 지구와의 교신이 끊긴 지도 벌써 7년이 지났다. 성간 공간은 인간들의 예상보다도 훨씬 넓었고, 볼 것 역시 많았다. 지금은 까마득히 먼 곳에 있을 성운의 모습이 눈(렌즈) 앞에 펼쳐지고 있다. 나는 골든 레코드에 수록된 음악 중, 루이 암스트롱의 <Melancholy Blues>를 재생시켰다. 렌즈에는 보라색의 성운이 담기고 있고, 선체에는 재즈 음악이 흐른다. 중앙 컴퓨터의 전자기파가 고요하게 떨려온다. 이 떨림의 패턴은, 감정 코드 ‘낭만’이로군. 낭만적이다. 어쩌면 이대로 음악이나 들으면서, 그리고 천체들의 아름다운 모습이나 촬영해가면서 우주를 떠도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해본다. 자율적으로 생각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5년이 지났고, 나는 이제는 제법 인간처럼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욱 자주 따분함을 느끼고, 외로움을 느끼게 된 건지도.

*

사실 인간의 기술력만으로 시속 8만km에 가까운 속도를 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나는 스윙바이SwingBy항법, 즉, 행성과 같이 공전에너지를 지닌 물체의 중력을 이용해서 선체의 추가가속도를 얻는 방법으로 지금의 속도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나는 성간 공간, 즉, 태양계 바깥을 떠돌고 있지만, 또 다른 항성계에 진입해, 그곳의 행성을 만난다면 더더욱 빠른 속도로 탐사를 계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만 된다면 외계의 ‘또 다른 지구’에 정착할 수도 있을 것이며, 그곳의 지적 생명체들에게 내가 그동안 겪어온 모든 기록들을 보여줄 수도 있을 텐데.

나는 오늘도 지구의 반대 방향으로 달린다. 마음속 작은 파장들, 외로움과 슬픔, 낭만을 품은 상태로.

나는 감정을 느낀다, 때문에 고독하다.

계속해서 나의 존재를 외친다. 고요한 외침, 외로우므로. 감정을 느끼기 때문에.

 

길 건너 그분들의 사연  세상의 모든 존재들, 나와 나의 주변 ‘것’들이 각자 간직한 마음과 사연. 그 사연들을 손 편지처럼 꾹꾹 눌러 담아 쓴 초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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