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가는데 실 간다고, 연필과 지우개는 당연한 한 쌍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 둘이 만나기까지는 200년이 걸렸고, 둘이 한 몸이 되기까지는 300년이 걸렸다. 환상의 짝꿍으로 인정받기까지 굉장한 시간이 필요했다. 일단은 당연하게도 연필이라는 친구가 먼저 태어났다.
| 흑연이 단단한 연필심으로 태어나기까지
1564년 연필의 주재료인 흑연이 영국 캠브리아 산맥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이를 나무에 끼워서 실이나 종이로 감싸 사용한 것이 근대적 연필의 시초다. 당시 사용하던 먹물과 잉크에 비해 가격도 저렴했고, 관리도 용이하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그러나 손톱보다 약한 강도라 잘 부러지고 가루가 많이 날린다는 단점이 있었다.
프랑스 화가 니콜라스 콘테는 잘 부러지는 흑연에 불만이 쌓여갔다. 1795년, 공원에서 작품에 열중하던 콩테는 갑자기 부러진 연필심 때문에 작품을 망치게 되자 집으로 돌아간다. 머릿속에 연필심에 대한 생각만 가득했던 콘테의 눈에 띈 것은 접시였다. 단지 가루에 불과했던 흙을 뜨거운 불에 구워 단단한 접시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순간 아이디어가 번뜩한 것이다. 흑연에 흙을 섞어 불에 구웠다. 덕분에 연필을 더욱 단단해졌고, 손에 묻어나는 것도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처음 흑연이 발견되고 200년이 넘게 지나서의 일이다.
| 빵 대신 고무, 지우개의 탄생
영국에는 산소와 암모니아를 발견한 유명한 화학자 한 사람이 있다. 조지프 프리스틀리는 공기 중에 산소가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덕분에 화학자로서 명성을 떨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뿐만 아니라 중요한 발견을 하나 더 했다. 1770년, 무심결에 고무뭉치로 연필 자국을 지워보게 되면서 지우개를 발명하게 된다. 그가 그 사실을 발명하기 전까지는 빵 조각으로 지웠다고 한다. 빵조각에 비해 잘 지워지고 가루도 덜 날리기에 당시 사람들에게 큰 환영을 받게 된다. 지금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지우개지만 저 당시에는 혁신적인 아이템이었다.
| 15세 소년가장의 아이디어, 지우개 연필
자꾸만 말도 없이 사라지는 지우개 때문에 연필은 걱정이 많았다. 지우개를 만나고 100년 가까이 마음 고생하던 연필은 같이 한 집에 들어가 살겠다는 다짐을 한다. 그래서 둘은 하나가 되기로 약속하고, 지우개 연필이 되었다.
둘이 한 몸이 된 것은 1867년 7월이다. 둘 사이의 큐피드는 15살의 소년가장 하이만이다.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러나 병든 홀어머니를 간호하면서 집안을 이끌어야했기에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화가를 꿈꿨지만, 하루하루 그림을 그려 팔아 밥 벌어 먹는데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하이만은 필요할 때 자주 없어지는 지우개 때문에 너무나 불편했다. 그래서 한 번은 지우개에 실을 꿰어 연필에 매달아보았다. 잃어버릴 염려는 없었지만 연필을 사용할 때마다 지우개가 덜그럭거려 이 또한 불편하기는 마찬가지. 답답해하던 중 모자를 쓰면서 영감을 얻게 된다. 연필에 지우개를 모자처럼 씌우는 것이다. 그는 특허를 출원한 뒤, 리버칩 연필회사에 가서 매년 5천 달러를 받는 조건으로 특허를 팔았다. 당연히 상품은 불티나게 팔렸고, 하이만과 연필회사 모두 큰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지우개와 연필이 한 몸이 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제는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도 당시에는 새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것은 주변의 것들을 당연치 않게 생각하고 의문을 던지는 데서 탄생한다. 사소한 연필과 지우개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