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이 평범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
평범한 일상이 평범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
2016.11.10 10:41 by 지혜

<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과 <양들의 왕 루이 1세>

대단히 특별한 삶을 바라지 않았다. 그저 제대로 된 끼니를 챙겨 먹는 일, 온기를 넉넉하게 느끼며 잠드는 일, 사랑하는 가족의 얼굴을 충분히 바라보며 이야기 하는 일을 별다른 걱정 없이 이어가고 싶었을 뿐이다. 평범한 일상이 이 나라에서는 왜 이렇게 어려웠는지, 엉망진창인 꼴을 마주하고 있으려니 너무 화가 난다.

그래서일까 한없이 예쁘고 따뜻하기만 했던 그림책 한 권도 이제 서글프기만 하다.

 

 

사실은 우리의 눈물,

<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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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샘 주변이 온통 코끼리로 빽빽하다. 가뭄이 심해 이곳까지 물을 찾아 온 것이다. 멀리에서 왔으니 양껏 퍼 가면 좋을 텐데, 겨우 양동이 하나를 머리에 이고 있다. 이들에게는 다만 아이들에게 나눠 줄 100개의 물방울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코끼리 아저씨가 100개의 물방울을 집으로 가져가는 일은 순탄하지 않다. 사막의 무자비한 볕에 물방울 몇 개가 말라버리고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느라 또 몇 개가 떨어진다. 어디 그뿐인가 벼랑에서 넘어져 물방울 대부분이 쏟아진다. 겨우 100개 가져왔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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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아저씨는 불이 난 개미집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물방울을 쓴다. 이렇게 착한데 손해만 본다. 키 큰 기린이, 하늘을 나는 새들이 아저씨의 양동이에서 마음대로 물방울을 꺼내 목을 축인다. 결국 양동이는 텅 비어버리고 아저씨의 눈에는 눈물이 찬다.

코끼리 아저씨의 여정을 보고 있으면 우리 부모님의 지난 삶 같아서 마음이 저릿하다. 한편으로는 이 나라에서 나 또한 부모가 되었으니 이런 고된 길을 걸어야 하나 싶어 답답하다.

딱 100개의 물방울이면 가득 차는 양동이 하나 지키려는데, 왜 이렇게 힘들까. 분명한 것은 코끼리 아저씨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다.

 

 

 

 

너에게 좋은 것은 너한테만 좋은 것이다,

<양들의 왕 루이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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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좋은 것이야말로 백성에게 좋은 것이다.”

양들의 왕 루이 1세의 말도 안 되는 이 말이, 코끼리 아저씨가 힘들었던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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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날아 온 파란 왕관을 쓰면서 저절로 왕이 된 루이 1세에게 나랏일이란 없다. 왕에게 어울리는 근사한 지휘봉과 의자, 멋진 침대를 마련하는 일이 우선이고 연설과 사냥, 산책을 하며 화려한 시간을 보낸다. 권력을 확인하려고 명령과 지시를 내리거나 자기와 다르게 생긴 양들을 쫓아내 버리는 일이 그의 업적 전부이다.

두 눈을 꾹 감은 채 흥청망청 왕의 시간을 쓰는 루이 1세를 보다가, 양동이를 머리에 이고 길 위에 있는 코끼리 아저씨를 생각한다. 아저씨 동네에 가뭄을 대비한 수도를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따가운 볕을 막아줄 그늘막이나 번듯한 길이라도 있다면, 아저씨의 커다란 몸을 버거워하는 자전거 말고 튼튼한 자동차를 탈 수 있었다면 좀 나았을 텐데. 아니 무엇보다 아저씨의 집은 왜 이렇게 먼 곳에 있는지.

아마도 샘이 가까운 집에는 양들의 왕과 그를 닮은 양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머리 위에 파란 왕관이 ‘우연히’ 온 것처럼 우연히 갈 것임을 모르는, 나에게 좋은 것이야말로 백성에게 좋은 것이라 믿는, 무지하지만 영악한 동물들. 그들이 집을 수도를 그늘막을 길을 자동차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이 그림책에서 코끼리 아저씨의 긴 여정은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다행히 하늘에서 비가 내려 양동이를 다시 채우고, 어린 코끼리들은 물을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나라에서 평범한 우리들의 여정은 계속 된다. 가뭄은 또 올 것이고 100개의 물방울을 가지기 위해 먼 길을 떠나야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지치고 힘들 것이다. 양동이를 지키지 못해 울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들은 고달픈 갈증에 지쳐가고 있는데, 그들이 시키는 대로 비가 올 때까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가뭄이 다시 오기 전에 바꿔야 한다.

또 다른 그림책은 책을 읽는 우리에게 결말을 맡긴다. 마지막 장면을 보면,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양들에게 새로운 왕이 다가가고 있다. 맙소사 이번에는 늑대이다. 어쩌면 루이 1세가 무엇을 하던지 무표정한 얼굴로 풀만 뜯던, 그들의 무관심과 냉소가 늑대를 부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당신 머리 위에 파란 왕관은 처음부터 우리들의 것이었다고, 왕관을 내려놓고 당장 나가라고, 들판 위에 양들이 힘껏 소리칠 것이라 믿는다. 함께 지르는 소리가 거센 바람이 되어 늑대 머리 위에 파란 왕관이 날아가 버리는, 해피엔딩이 되었으면 좋겠다.

대단히 특별한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일상이 평범한 나라에서 살고 싶다.

  Information

<코끼리 아저씨와 100개의 물방울>글·그림: 노인경 | 출판사: 문학동네어린이 | 발행연도: 2012.07.05 | 가격: 12,000원

<양들의 왕 루이 1세> 글·그림: 올리비에 탈레크 | 역자: 이순영 | 출판사: 북극곰 | 발행2016.07.06 | 가격: 15,000원(원제: Louis I, King of the Sheep)

/사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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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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