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차바 피해 복구 집수리 봉사
“전쟁도 그런 전쟁이 없었어요.”
이경화(가명‧54)씨는 한 달 전 그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생전 처음 겪은 물난리, 급박한 탈출의 순간에서 생명의 위협마저 느꼈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초순, 제18호 태풍 ‘차바’가 시간당 최고 130mm의 비를 쏟으며 습격해온 날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10월 5일 한반도 남부를 강타한 태풍 차바는 가을 태풍으로는 이례적으로 부산, 양산 등 영남지방에 큰 피해를 남겼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 중 하나가 울산지역이었는데요. 단 몇 시간 동안에 300mm 이상의 폭우가 집중돼 주택침수 약 3000건을 비롯해 차량침수, 도로파손 등 총 6000여 건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이로 인해 울산에서만 3명이 목숨을 잃었고, 145세대 331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갑작스레 불어난 물에 몸만 겨우 빠져나와
물 빠지고 나니… ‘진짜 전쟁은 그때부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가봤지만 냇물이 그렇게 불어나지는 않았거든요. 그런데 갑자기 넘쳐난 물이 집 안까지 들이닥친 거예요. 불과 20분 만에요. 수압으로 현관문이 찌그러지는 바람에 겨우 집밖으로 탈출했는데, 순식간에 물이 지붕까지 차오르는 걸 보고 섬뜩했습니다.”
이경화씨 댁은 울산 울주군 범서읍 천상리의 저지대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냇물이 불어나면서 수십 가구가 침수피해를 입었습니다. 삽시간에 불어난 물은 쓰나미처럼 마을을 집어삼켰습니다. 인근의 다른 마을에 거주하는 박순남(가명‧90) 할머니도 “물은 점점 차오르는데 문이 열리지 않아 발을 동동 굴렀다”면서 “죽을힘을 다해 겨우 문을 열고 나왔다”고 아찔했던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물은 금세 빠졌지만, 수마가 휩쓸고 간 자리는 참혹했습니다. 벽돌 담장은 유실돼 사라졌고, 오래된 가옥들은 심지어 무너지기까지 했습니다. 살림살이는 대부분 떠내려갔고, 그나마 남아 있는 가구며 가전제품도 온통 진흙투성이가 돼 건질 것이 없었습니다. 바닥에는 30cm 가까이 진흙이 쌓여 발이 푹푹 빠졌습니다. 그때부터 진짜 ‘전쟁통’을 치렀습니다. 공무원,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의 손길도 이어졌지만 이를 퍼내는 데만 열흘 이상이 걸렸습니다.
“TV 뉴스에서 수해 현장을 보면 ‘아이고, 저래서 어떻게 사나’ 하고만 생각했죠. 실제로 내가 겪고 보니 거지꼴이 되는 것도 한 순간이더라고요.”
마을의 한 주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미 한 달 가까이를 옆 마을의 경로당에 마련된 임시대피소에서 지내고 있던 상황. 복구는 요원했고, 도움의 손길은 절실했습니다.
희망브리지 봉사단 130명 참여
이틀간 울산 태풍 피해 세대에 ‘집수리 봉사’ 구슬땀
희망브리지는 태풍 피해 발생 직후 세탁구호차량 3대를 울산 등 피해지역에 파견해 세탁구호활동을 펼쳤고, 10월 8~9일에는 공장 등 피해현장을 찾아 복구활동을 전개했는데요. 10월의 마지막 주말이었던 29~30일 양일간 희망브리지 봉사단은 또 다시 울산을 찾았습니다. 서울, 인천, 경기, 충청, 대구, 부산 등 전국에서 대학생 봉사자 130명이 주말을 반납하고 내려와 울산 울주군 내 피해 세대를 대상으로 청소 및 도배‧장판교체를 실시하는 집수리 봉사를 전개했습니다.
희망브리지와 연계한 각 대학의 동아리 활동을 바탕으로, 이날 참가자 대부분도 집수리 봉사 유경험자들로 구성되었는데요. 하지만 재난위기가정을 대상으로 펼쳤던 기존의 봉사와는 달리 이미 큰 피해를 입은 곳에서 실시한 봉사는 마음가짐도, 작업 내용도 많이 달랐습니다.
“태풍이 왔을 때 저는 해외에 있었어요. 이번에 봉사 차 내려오지 않았다면 이렇게 강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갔다는 것도 모르고 지나갔을 뻔 했지요. 아직 남아 있는 흔적들을 보고 피해가 얼마나 컸을지 가늠만 하는 수준인데요. 이재민 분들이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실 땐 정말 안타까웠어요.”
희망브리지 봉사단에서 3년째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배서연(24)씨가 말했습니다. 서연씨가 속한 조가 찾은 곳은 올해 구순의 독거어르신 박순남 할머니 댁. 이 곳에서 60년을 사셨는데, 본채는 이미 오래 전에 무너져 창고를 개조한 가건물에서 생활하고 계셨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에게 청소며 복구 작업은 엄두도 못 낼 일이었습니다. 피해 발생 4주 만에 찾은 집도 당시의 모습 그대로였지요.
30일엔 울산지역 최저기온이 7도까지 떨어졌지만 봉사자들의 열기로 현장은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한쪽에서는 실내의 가구와 집기들을 들어내 다시 쓸 수 있는 것과 버릴 것을 분류하는 한편, 일부는 오염된 벽지와 장판을 뜯어내고 바닥에 남아 있는 진흙이며 잔여물을 긁어냈습니다. 이내 새하얀 벽지를 바르자 점차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서울에서도 왔다고? 아이고, 참 반갑다. 내가 너무 너무 좋아 죽겠다.”
130명의 봉사자가 울산을 찾았다고 하자, 박 할머니가 반색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피해 복구에는 처음 참여해 본 봉사자들에게도 이날 활동은 더욱 뜻 깊었습니다. 할머니 댁의 작업을 이끌었던 전경수(29)씨는 “태풍 피해로 마음이 많이 아프셨겠지만, 도움 드릴 수 있는 젊은 일꾼들이 많다는 것을 보여드릴 수 있어 한편으론 기쁘다”면서 “앞으로 예전처럼 편안하게 사실 수 있도록 피해 흔적을 말끔히 지워내고자 노력했다”고 했습니다.
“따뜻한 공감과 위로로 새로운 희망을 선물합니다”
“집 안의 모습을 처음 보고는 사실 엄두가 안 났어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앞섰거든요. 동료들이 잘 이끌어줬고, 무엇보다도 함께 힘을 합치니까 해낼 수 있는 일이더라고요. 저 혼자서는 절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피해를 입은 할머니의 막막함이 조금은 가늠이 됐고, 제 손으로 누군가의 집을 다시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일이 더욱 의미 있게 느껴졌어요.”
집수리 봉사에 처음 참여한 공현주(25)씨의 말입니다. 그는 지난여름 희망브리지의 ‘집수리로드’ 봉사에 참여했던 동생 공민주(23)씨의 손에 이끌려 참여하게 됐는데요. 민주씨는 “좋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도 만들고, 또 봉사 과정에서 변해가는 집들을 보면서 느꼈던 보람을 언니와 같이 공유하고 싶었다”고 함께하게 된 이유를 밝혔습니다.
희망브리지 봉사단은 이틀간 태풍 피해 세대 33가구에 집수리 봉사를 실시했습니다. 이로써 이재민 분들도 근 한 달 만에 다시 보금자리로 돌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봉사자들이 땀과 열정으로 전한 심심한 위로가 재해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새로운 희망으로 피어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