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 익스프레스
헤르메스 익스프레스
2016.12.13 16:36 by 오휘명
(사진:rudall30/shutter.com)

신종 수면제였을까. ‘강제적인’ 잠에서 깨어난 것 치고는 비교적 정신이 온전했다. 언젠가 수면 내시경 검사를 받았을 때와는 달랐다. 한동안 몽롱한 기운이 감돈다거나 하는 것이 아예 없었다. 나는 갑자기 잠에서 깨어났고, 내 몸과 의식은 비교적 온전한 것 같았다. 다만 눈앞이 온통 새까맸고, 손과 발, 그리고 입은 무언가에 의해 묶이고 틀어 막혀 있었지만. 자동차나 기차와 같은 육상 교통수단에 실려 있는 것인지, 간혹 아래쪽으로부터 육중한 흔들림이 느껴졌다. 멀지 않은 곳으로부터 자동차의 클랙슨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래도 나는 어떤 자동차에 실려 있는 것 같았다.

“거, 빵빵거리지 좀 맙시다. 어디 지들만 바쁜가.”

“어디 놈들이야? 근두운 쪽 놈들이야?”

“몰라, 하여간 서로 양보하는 문화가 없어요, 이 업계는.”

남자와 여자의 두 목소리가 대화를 나누는 것이 들렸다. 저들은 아마도 운전석과 조수석에 앉아있을 것이었다. 글쎄, 무슨 ‘업계’일까. 나는 나름대로 머리를 회전시켜 온갖 상상을 하다가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혹시 저들은 암흑세계의 사람들이 아닐까? 무고한 사람들을 납치하거나 감금하곤, 노동력을 착취하는 불법 작업장에 팔아넘긴다거나 하는. 그것도 아니면 혹시 장기매매 일당?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추측이었다. 왜냐면 나는 누가 뭐래도 강제적으로 기절하듯 잠에 빠졌고, 잠에서 깨어나니 타의에 의해 어딘가로 실려 가고 있는 거였으니까.

천천히 잠에 빠지기 직전의 정황을 되짚어봤다. 나는 물을 마시듯 급하게 저녁 식사를 끝마치고, 다시 노트북을 부여잡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이놈의 회사는 부려먹을 사람이 나밖에 없는 건지, 왜 항상 보고서 작성과 발표는 나의 몫인지에 대해 계속해서 구시렁거리던 참이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급격히 눈이 감기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나는 그 와중에도 혼잣말을 계속했던 것 같다. 아직 보고서가 완성되지 않았는데, 당장 내일까지…….

“인지 과정이 시작된 것 같아, 슬슬 패키지 만들 준비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아까부터 알 수 없는 말만 계속하고 있었다. 패키지라니, 뭐, 내 장기들을 담아낼 준비라도 하라는 건가? 그렇다면 정말 최악인데. 이번엔 여자 쪽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겠는데, 노래라도 틀면 안 돼? 누가 보면 우리가 무슨 흉악한 범죄라도 저지르는 줄 알겠다.”

두 사람이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디서 들었던 범죄자들의 심리를 기억해냈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 싸이코에 가까운 흉악범들은 자신들이 저지르는 범죄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못한다고. 나는 조금씩 더 무서운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등줄기에선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이상했다. 이미 나의 손과 발은 포박당한 뒤였고, 아무런 목소리도 낼 수 없도록 입마저 틀어 막혀 있었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겁이 많은 편이었고, 지금 이 상황은 충분히 오줌을 지려도 납득이 갈 만큼 무시무시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공포에 떨고 있지는 않았던 것이었다. 사람은 죽기 직전에는 차분해진다더니, 바로 그런 거였을까.

<떠나요, 둘이서-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남자가 여자의 말대로 음악을 틀은 건지, 온통 깜깜한 차 안에는 성시경의 노래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제주도의 푸른 밤.

제주도. 하, 정말. 거의 매 순간 가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제주도. 이렇게 허무하게 죽어버릴 줄 알았다면 무리해서 연차라도 내볼걸.

죽음이나 그에 준하는 사고(아마도)를 코앞에 두고 나니, 온갖 것들이 후회스러웠다. 온통 바쁜 일들뿐이었다. 내 일상은 상사의 혼남과 그 혼남으로 인한 바쁨의 반복이었고, 나는 일을 하기 위해서만 존재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볼품없고 허무하게 인생을 끝마치려는 것이었다.

어딘가의 신에게 구원을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정말로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길 간절히 바랐었다. 들려오는 가사처럼 꼭 제주도가 아니더라도, 집과 일터가 아닌 어딘가를 향한 일탈을. 여섯 캔들이 맥주 팩을 옆에 두고, 캠핑용 의자에 앉아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쌓아두고 읽는 시간을 갈망했었다. 그리고 그 앞으로는 울창한 숲이나 시원한 바다의 풍경이 펼쳐져 있고-.

“거기엔 아이스 팩도 같이 넣어. 자고로 ‘그건’ 신선도가 생명이니까. 그건 그렇고, 다음 배송지는 어디야?”

“필리핀.”

그렇지만, 아, 저들은 나를 죽일 것이 분명하다. 내 몸의 대체 어느 부분이 신선도가 생명인 것인지. 이럴 거면 회사는 왜 다녔을까. 다 때려치우고 여행이나 하루 갔다 왔다면, 이토록 인생이 후회스럽진 않았을 텐데.

*

얼마나 더 달린 걸까. 내가 삶에 대한 미련을 거의 버려갈 때쯤. 나는 차의 덜컹거림이 서서히 줄어들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이윽고 차의 문이 열렸는지 차갑고도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신선하다’라……. 사람이 죽느냐 사느냐가 걸린 순간에도 신선하다는 감정을 느끼다니. 웃겼다.

그 ‘신선한’ 공기를 조금 맡다 보니, 나는 그 공기에서 약간의 짠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차가 바닷가에 정차한 걸까. 역시, 나는 여기서 해체를 당하려나 보군.

덜컥

이내 가까운 곳, 코앞의 문(아마도 트렁크의 문이겠지)이 열리고. 나는 온몸이 경직되는 것을 느낀다. 누군가가 트렁크의 문을 열었다. 오랫동안 컴컴한 시야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는지, 아직은 눈앞의 사물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고객님,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응? 목적지라고? 나는 일순간 멍한 상태가 되어, 그 말이 과연 무슨 뜻인지를 생각하고 있는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아주 조심스레 나의 손과 발을 포박하고 있던 끈을 푸는 것이 느껴진다. 흉악범의 손길치고는 너무나 정성스럽다. 컴컴했던 시야도 서서히 되돌아오고 있다. 두 사람이 나를 바라보며 다시 말을 건넨다.

“이제 움직이셔도 됩니다, 내리세요.”

도무지 범죄자라고는 볼 수 없는 깔끔한 외모의 사람들이다. 나는 경계의 자세를 늦추지 않은 채로 트렁크에서 몸을 내려 주변을 둘러본다.

세상에, 바다잖아.

“서비스의 특성상, 그리고 기술 보안상의 이유로 이동 중에 다소 불편하시게끔 했던 점, 사과드립니다. 여기, ‘여행 패키지’를 받아주세요.”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여자 쪽으로부터 커다란 배낭을 받아들었다. 천천히 지퍼를 열어보니 안에는 여섯 캔 들이 맥주와 하루키의 소설 몇 권, 그리고 접이식 의자로 보이는 철붙이가 들어있었다. 와, 이거 진짜 뭐지.

“그럼 저희는 필리핀 쪽으로 다음 고객을 모시러 가봐야 해서, 즐거운 여행 되세요.”

가방을 들여다보며 계속 멍하니 서 있는데, 두 사람은 그렇게 말하곤 오래된 지프 차량에 몸을 실었다. 지프에는 촌스러운 글씨체로 ‘헤르메스 익스프레스’라고 적혀있다. 그리고 내가 한 번 눈을 때, 그 커다란 지프는 말끔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드디어 내가 미쳤구나.”

배낭을 들고 주변을 둘러본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정말 멋진 풍경이다. 끝없이 펼쳐진 밤바다. 날씨도 완벽할 정도로 선선하다. 아주 잠시, 내일까지 제출해야 할 보고서가 생각났지만, 이렇게 된 이상 보고서 작성은 불가능에 가깝다. 빠르게 체념한다, 몰라, 어차피 실려 오는 동안 삶과 죽음을 오간 후다. 회사에서 잘리면 잘리는 거겠지.

맥주 캔을 하나 집어 들고 뚜껑을 열었다. 숨도 쉬지 않고 그것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나니, 눈앞의 바다가 더욱 시원하게 다가온다. 웃음이 나왔다.

여행이었다.

 길 건너 그분들의 사연  세상의 모든 존재들, 나와 나의 주변 ‘것’들이 각자 간직한 마음과 사연. 그 사연들을 손 편지처럼 꾹꾹 눌러 담아 쓴 초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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