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식 미트볼, 알본디가스
스페인식 미트볼, 알본디가스
2016.12.19 14:48 by 이민희

스페인 사람들은 미트볼을 두고 알본디가스(albóndigas)라 부른다. 헤즐넛(hazelnut)을 뜻하는 아랍어 ‘알분두끄(al-bunduq)’에서 온 이름이다. 헤즐넛은 개암나무의 열매로, 견과류의 일종이다. 크기는 도토리 만하다. 헤즐넛의 생김새와 크기가 비슷하다 해서 그렇게 불렀다는데, 실제로 알본디가스는 대체로 한두 번 베어 먹을 수 있게끔 작게 만든다. 이름을 얻은 배경을 이해하려면 약 1300년 전부터 대제국을 세우기 시작한 무슬림의 역사를 살펴봐야 한다.

개암나무의 열매, 헤즐넛 (출처-위키피디아)

 

아랍에서 온 음식

당시 아랍인들의 야망은 징기스칸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아랍 정복자들은 7세기부터 아프리카 북부를 점령한 뒤, ‘무어Moor’라 불리던 북아프리카의 무슬림과 함께 711년 지중해를 넘어 이베리아 반도로 진격하는 일에 성공한다. 그때 점령한 땅을 ‘알안달루스Al-Andalus’라 불렀다. 프랑스와 국경을 두고 있는 오늘날의 스페인 북부를 제외하고, 무어인이 약 800년간 통치한 영토다.

긴 세월 동안 알안달루스를 다스린 무어인은 다른 유럽 사회와 구분되는 스페인 고유의 문화를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가장 대표적인 분야는 건축으로, 정복자 아랍과 이슬람, 그리고 유럽의 그리스도교 문화가 섞인 스페인의 독창적인 건축 스타일을 두고 ‘무어 양식’이라 부른다. 여기에 더해 식문화까지 지배한다. 샤프론과 큐민 같은 향신료가 이 시기 북아프리카의 인종과 아랍인들을 통해 스페인으로 유입됐기 때문인데, 아랍의 방식을 따른 미트볼 알본디가스도 그때  들어왔다.

1942년 스페인 기독교 세력은 이베리아 반도의 무슬림을 완전히 몰아내는 일에 성공한다. 이후부터 이교도에 대한 가혹한 정책이 시작됐지만, 역사가 크게 바뀌었다 한들 이미 정착한 식문화까지 바꿀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다만 약간의 변화는 따랐다. 한때 아랍식 알본디가스의 주재료였던 양고기는 스페인 사람들의 입맛을 따라 돼지고기와 소고기, 닭이나 거위 등으로 바뀌었다. 때때로 햄이나 생선으로 완자를 만들기도 한다.

알본디가스는 스페인 전역에서 광범위하게 먹지만, 북부에서는 만나기 어렵다. 무슬림이 닿지 않았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한편 알본디가스는 멕시코와 남미 등 서반어 문화권에서 즐기는 대중적인 음식이기도 하다. 16세기부터 스페인이 멕시코를 식민지로 두기 시작하면서 음식도 함께 새로운 대륙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질긴 식민지 역사는 끝났지만 음식은 남았다. 다진 고기 사이사이에 이렇게나 긴 세월이 깃들어 있다.

신소영 셰프의 알본디가스 엔 살사 (출처 - 원파인디너)

 

손이 많이 가는 고기 완자

오늘날 알본디가스를 부르는 정확한 이름은 알본디가스 엔 살사(albóndigas en salsa)다. 소스에 버무린 미트볼(meatball in sauce)을 뜻한다. 바스크 지방에서 유학한 뒤 마하키친을 운영하는 신소영 셰프에 따르면, 스페인 사람들은 소스가 잘 나와야 음식이 잘 됐다고 여긴다. 그래서 소스를 만들 때 가장 공을 들인다. 소스는 양파, 당근을 오래 볶은 뒤 블라인더로 곱게 갈아 만든다.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작업이지만 그렇게 만들고 나면 이것이 우리가 알던 양파와 당근이 맞나 싶을 만큼 고소하고 달콤한 소스가 완성된다.

미트볼을 만드는 작업도 손이 많이 간다. 여러 스페인 레시피를 찾아보면 돼지고기와 소고기, 혹은 소고기와 닭고기를 섞어 만든다. 고기를 섞은 뒤 주먹보다 작게 빚어 모양을 잡는데, 여기에 필요한 재료는 달걀과 식빵이다. 식빵은 고기 반죽의 점도를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촘촘하게 부서져 섞인 덕분에 나중에 고기를 구웠을 때 바삭한 식감까지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다진 견과류와 말린 과일이 들어간다. 그리고 마늘을 넣고 지은 밥과 함께 먹는다. 고깃덩어리만 씹는다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데, 소스와 빵 그리고 견과류 등 식물성 재료들을 더해 맛과 식감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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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본디가스 엔 살사를 만드는 과정 (사진: 원파인디너)

레시피를 참고해 직접 만들어본 결과 한 시간 반 이상이 걸렸다. 장보는 시간은 포함되지 않았다. 덕분에 만족스럽게 먹었고 조리과정도 딱히 어려울 것은 없었지만,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만큼 큰 결심이 따라야 가능하지 일상적인 음식이 되긴 어렵다 싶었다. 그러나 약 1000년에 달하는 긴 세월 동안 인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알본디가스는 아랍문화로 시작해 스페인을 거쳐 남미까지 다녀온 후 내 식탁에 도착한 요리다. 구글 검색을 통해 접하는 스페인어 레시피의 대부분은 엄마의 맛에 대한 향수로 시작한다. 사실 모든 맛있는 음식이 그렇지 않을까. 수고스럽게 만들어 어떻게든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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