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의 작가들, ‘영향력’을 발휘하다
부엌의 작가들, ‘영향력’을 발휘하다
2016.12.21 15:03 by 김석준

최근 문예지가 파격적으로 변하고 있다. 작년 7월 은행나무 출판사가 2,9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의 문학잡지 「AXT」로 포문을 열었고, 민음사는 문학 계간지 ‘세계의 문학’을 40년 만에 종간하고, 캐주얼한 문학잡지를 「릿터」를 출간했다.

‘키친테이블라이팅(Kitchen Table Writting)'이란 생소한 개념으로 문학계에 도전장을 낸 「영향력」도 이런 흐름에 발맞춘 잡지다. 기존 문예지가 등단 작가만을 대상으로 했다면, 이 잡지는 퇴근 후 글을 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영향력」의 세 편집자를 대구 북성로에서 만나 봤다.

영향력 편집자. 왼쪽부터 김정애(30), 김은진(40), 은미향(35)

키친테이블라이팅? 원래 있는 말인가.

김은진(이하 은진): ‘키친테이블노블(Kichentable Novel)’이라는 말은 있다. 책상이 아닌 부엌식탁에서 소설을 쓴다는 말은,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키친테이블노블이 일과를 마치고 집에서 쓰는 소설을 뜻한다면, 「영향력」은 시와 소설, 에세이까지 의미를 확장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노블이 아닌 ‘라이팅(Writing)’이라고 붙였다.

잡지의 이름은 왜 영향력인가.

은진: 언젠가 ‘영향력’이라는 제목의 시를 읽었다. 사람들이 영향력이라는 낱말을 종종 쓰곤 하는데, 그 시를 읽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업 작가가 아닌 사람들은 자신의 글이 영향력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소수의 사람이라도 그걸 읽고 작은 영향력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영향력이라고 지었다.

에디터가 처음 잡지를 접했을 땐 파격적인 디자인에 눈길이 쏠렸다. 일러스트나 사진 같은 이미지를 넣는 것이 최근 트렌드인데, 오직 글만으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심지어 화려한 색도 하나 없이. 로고 역시 뜻을 알 수 없는 형태였는데, 이는 영향력이라는 단어를 점과 선으로만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로고를 보고 다들 독립잡지치고 패기 있다는 칭찬을 한다고. ‘패기’ 있는 그들의 시작이 궁금했다.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로고. 영향력이 보이나요?

어떻게 시작했나.

은진: 문학잡지를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잡지를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혼자 하려니 엄두가 안 나더라. 대구에 있는 ‘더폴락’이라는 독립서점에 구인게시물을 올려달라고 부탁했다. “독립잡지를 같이 만들어갈 분을 찾습니다’라고. 그 게시물을 보고 원고를 보내주시는 분들도 있었고, ”만든다는 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오는 분들도 있었다. 그때 물어보던 사람 중 한 분이 미향씨였고, 그때부터 함께하게 됐다.

미향: 타이밍이 맞았던 것 같다. 그 당시에 회사를 관두고 대구에서 쉬고 있었다. 더폴락에서 인디자인 등을 배우면서 내가 쓴 소설로 책을 만들 준비를 하다가 은진씨가 올린 글을 본 거다. 출판물 제작에 대해 배운 게 있으니 잡지를 같이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연락했다.

김정애(이하 정애): 나는 창간호 때부터 함께 한 건 아니다. 창간호 때는 시를 싣고 작가로 참여했고, 2호 때부터는 같이 일을 하게 됐다. 2호 때는 편집인으로 참여하고 3호부터는 발행까지 같이하고 있다.

가운데 파란색이 창간호.

세 편집자의 직업은 글과 무관하다. 김은진씨는 현재 학원에서 일을 하고 있다. 책에 관심이 없던 시절,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읽고, 이 정도면 나도 쓰겠다는 생각을 하며 시작한 게 퇴근 후 글쓰기의 시작이었다. 은미향씨 역시 마찬가지. 영화 마케팅, 홍보마케팅 등 글과는 관련이 없는 직업을 삼고 있다. 한때 시를 썼던 김정애씨는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퇴근 후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는 믿음, 작은 영향력이라도 줄 수 있다는 자신감은 ‘키친테이블라이팅이’라는 개념의 잡지를 탄생시켰다. 하지만 일견, 무모한 도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하철이나 카페 어디를 가도 책 읽는 사람을 찾기 힘든 시대 아닌가.

책을 안 읽는 시대다. 어떻게 글을 통해 영향력을 줄 수 있을까.

미향: 영향력이 거창한 건 아니다. 잡지를 읽고 갑자기 담배를 피우고 싶어졌다, 갑자기 바람이 쐬고 싶어졌다, 예전에 내가 잘못한 누군가가 떠올랐다 등 이런 것들도 하나의 영향력이다. 선한 영향력이나 악한 영향력 혹은 큰 것과 작은 것을 구분하고 싶지 않았다. 읽기 전과 후의 변화가 있다면 그것을 영향력이라고 생각한다.

은진: 미향 씨말대로 대단한 영향력을 생각한 건 아니었다. 쉽게 생각했다. 어떤 글이든 누군가에게는 영향력을 줄 수 있다고.

미향: 우리 책을 사보는 사람들이 누구일까 생각해봤다. 독립출판물을 좋아하고 시와 소설을 좋아하는 분도 많겠지만, 아마도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영향력」을 사볼 것 같았다. ‘글을 쓰고 싶은데, 글을 써야 하는데’ 생각하지만, 막상 써도 실을 곳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의 존재로 인해, 그들이 글을 완성시켜야 할 이유가 생기고, 공간도 생겼다. 그 자체로 영향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영향력은 글로 빼곡하다. 오로지 글로 승부한다.

정애: 덧붙여 말하자면, 내 삶을 윤택하게 하는 건 ‘내가 원해서 하는 것들’이라 생각했다. 만약 그것이 이 잡지가 표방하는 글쓰기가 아니더라고, 영향력을 읽고 정말 원하던 것이 떠오르고, 작은 힘을 내서 다시 시도를 해보는 그런 영향력을 주면 좋을 것 같다.

그런 시도는 독립출판물이라 가능한 것 같다. 등단하지 않아도 누구나 책을 낼 수 있으니까.

미향: 등단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는 않다. 약간 무의미해지는 시대가 됐다고나 할까… 콘텐츠를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이 많아진 영향도 있고.

은진: 외국에선 투고를 통해 작가가 되는 경우도 많다. 책이 나온 순간 작가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린 조금 다른 것 같다. 「소수의견」으로 유명한 손아람 작가가 “지금 문학계에서 말하는 등단은 문예지와 신춘문예로 들어온 사람만 인정해준다“고 말했다. 손 작가는 출판사를 직접 발로 뛰며 책을 냈던 케이스라 문학계에서 자신을 등단 작가로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하더라.

대구 독립출판서점 스튜디오 콰르텟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모임. 맥주를 마시며 글을 쓰는 모임이다.

변화가 필요한 부분인가.

미향: 우리가 등단 제도의 새로운 대안이 되자는 뜻을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니다. 글을 싣고 싶어도 (등단을 안 해서) 발표할 때가 없고, 그렇다고 혼자 프린트를 해서 나눠줄 것도 아니니 우리가 그걸 도와주자는 생각에서 시작한 것일 뿐이다. 꾸준히 하다 보면 조금의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그 ‘조금의 영향력’을 위해 출판뿐만 아니라 다양한 활동도 하던데.

은진: 지난 9월에 대구에서 ‘키친테이블라이터의 밤’이라는 글쓰기 모임을 했다. 스튜디오 콰르텟이라는 독립서점에 모여서 맥주를 마시며 글을 쓰는 모임이다. 아무도 안 오면 어떡하지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그런 걸 보면 어쩌면 ‘대구 사람들이 이런 걸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독자와 만나는 시도 역시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

미향: 종로구에 있는 전시공간 하트(hart)에서 진행하는 <Vanishing>에 참여하기도 했다. 하트의 디렉터 허유씨가 살면서 소유해온 물건들을 나누거나 파는 전시였는데, 「영향력」은 물건 대신 ‘문장 버리기’를 진행했다. 다소 추상적인 이벤트라 걱정했는데 의외로 많이 분들이 활발하게 참여해 주었다. 그곳에서 「영향력」에 글을 실은 작가와 만남을 가지기도 했고.

문장버리기? 어떻게 하는 건가?

미향: 단순하다. 버릴 문장을 종이에 쓰는 거다. 보면 너무 흔한 것들이라고 느낄 얘기들인데도, 막상 ‘이 문장을 버리러 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더라. 대게는 관계에서 오는 아픔이고, 어떤 분은 몇 월부터 며칠까지의 시간을 버리기도 했다. 사람들이 자기 안에서 갖고 있던 것들을 표현으로나마 버리고 가는 모습을 보며, 하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공간 hart과 함께한 <Vanishing> . 당신은 버리고 싶은 문장이 없습니까?

사람들에게 정확히 어떤 영향력을 주고 싶나.

은진: 어떤 것이라도 좋다. 어차피 영향력이라는 건 받는 사람의 몫이다. 바람이 불어도 다들 다르게 느끼니까. 영향력을 주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행복할 것 같다.

미향: 일단은 키친테이블라이터들이 계속 글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저기에 글을 투고할 수 있으니까 계속 써봐야지’하게 만들고 싶다.

정애: 더 나아가, 자신이 꿈꿔왔던 것, 미뤄왔던 것에 한 발짝 가까워지는 영향력을 끼칠 수 있으면 좋겠다.

 

/사진: 김석준(@summer_editor), 영향력 인스타그램(@kichentablewrit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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