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 이서보난 겅 됨꾸나”(여기 살다보니 그렇게 되더라)
“이디 이서보난 겅 됨꾸나”(여기 살다보니 그렇게 되더라)
2016.12.23 16:58 by 이도원

학창시절 사회책에 그려져 있던 우리나라 지도를 기억하는가? 나 역시 지역별로 묘사되던 이미지들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그중에서도 “남쪽으로 갈수록 날씨가 덥기 때문에 음식을 짜게 먹는다”는 말이 참 인상적이었다.

우리 엄마는 전라도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엄마의 식탁 역시 자연스럽게 그곳의 입맛을 따랐다. 집에서 엄마가 만들어준 반찬을 먹을 때는 몰랐다. 다른 집과 비교해 우리 집 식탁엔 나물 반찬이 많다는 것을. 이를 깨닫게 된 건 내가 제주도로 내려와 지낸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현재 우리 집 식탁에는 대부분이 장아찌 반찬이다. 할머님이나 어머님을 비롯한 남편의 가족들이 챙겨주는 반찬들은 주재료만 다르지 거의가 장아찌다. 고추장아찌, 소라장아찌, 방풍장아찌, 양파장아찌, 마늘장아찌 등…. 어느 날 문득 식탁에 놓인 반찬 그릇들을 보다 깨달았다. 내가 진짜 제주에 살고 있구나. 대한민국 최남단 제주에.

제주도에 내려온 후 익숙해진 장아찌.

이뿐만이 아니다. 남편의 외할머니, 외숙모들, 외삼촌들은 모두 물질을 하고 배를 탄다. 덕분에 나는 매일 생선을 비롯한 각종 해산물들을 맘껏 먹을 수 있다. 육지에 살 때는 귀하게 다뤘던 갈치, 가끔 구이로 만들어먹던 고등어도 지금 우리 집 냉동실엔 한 가득이다. 육지에서는 이름만 가끔 들어봤던 옥돔, 방어도 심심찮게 밥상 위에 오른다. 이들은 어느덧 나에게 익숙한 이름이 되었다.

물론 모든 제주도 사람들이 옥돔과 방어를 자주 먹는 것은 아닐 게다. 내가 사는 곳이 제주도 최남단에 위치한 모슬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제주는 크게 한라산을 중심으로 한 산간 지역과, 섬의 가장자리인 해안 지역으로 나뉜다. 산에 가까이 사는 사람들의 식탁에는 감자, 마늘, 콩과 같은 농산물들이 주로 올라온단다. 그들 식탁의 풍경은 우리와 또 다르겠지…

무밭에서 찍은 사진. 제주엔 농산물도 많다.

우리나라 지도를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그림으로 우리나라를 휘갈겨 그릴 때면, 제주도는 언제나 마지막에 아래쪽에 아주 작게 그려 넣었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방학이 되면 그는 2주 정도를 고향 제주에 내려가 생활하곤 했었다. 그가 제주에 내려가 있는 동안엔 통화하면서 적잖게 다퉜다. 그 이유는 남편의 통화 음질 때문. 난 분명히 또렷이 내 이야기를 전했다고 생각했는데 그에게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열이면 거의 열 번을 내가 하는 이야기가 들리지 않는다고 하고, 나도 그의 목소리가 주변의 시끄러운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때마다 남편은 “이게 다 제주도 바람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때는 믿지 않았다. 내가 그때까지 알던 바람 소리는 그렇게 클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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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부는 바다의 풍경과 돌담.
바람이 부는 바다의 풍경과 돌담.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제주도에는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날에는 우산을 손에 잡지 않고 바람에 맞서 배꼽으로 잡고 걸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정확한 사실이다. 특히 해안가에 위치한 모슬포의 바람은 상상을 초월한다. 바람이 너무나 강해서 ‘못살 포’라고 불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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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많이 불어 ‘못살 포구’라 모슬포?
바람이 많이 불어 ‘못살 포구’라 모슬포?

제주에 처음 내려왔을 때, 내가 가지고 왔던 옷은 모두 무릎 위로 올라오는 짧은 치마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 옷걸이에 걸린 치마들은 모두 무릎보다 한참 더 내려오는 긴 치마들이다. 짧은 치마를 입는 날엔 바람에 날리는 치마를 붙잡아야 하는 두 손 때문에 단정한 머리는 포기해야했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했던가. 치마와 머리가 날리는 여러 번의 경험 끝에, 내 옷장에는 긴 치마와 긴 원피스들이 들어찼다.

제주 할머니들은 겨울 패션이 모두 똑같다. 목도리나 머플러를 머리에 무심한 듯 꼼꼼하게 돌돌 감아 맨다. 처음엔 그저 할머니들의 스타일인 줄로만 알았다. 바람을 겪고 나서야 그것이 제주 사람들이 터득한 지혜라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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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제주에 살아서 좋겠다고 말한다. 글쎄, 가끔은 엄마가 만들어준 나물 반찬들이 그립고 남편과 데이트를 할 때면 짧은 치마도 입고 싶다.

하지만 제주에서 맞게 되는 새로운 변화가 그리 나쁘진 않다. 이젠 바람이 불어도 두 손으로 머리를 단정하게 만질 수 있다. 맛있는 장아찌를 정성스레 담가주는 새로운 가족들도 생겼다.

난 그렇게 살고 있다. 매일매일 마주하는 새로운 것들에 설렌다.

 

/사진: 이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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