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투르드
게르투르드
2017.01.10 16:04 by 오휘명
(사진: Faenkova Elena/shutter.com)

우리의 하루는 인간들의 그것과는 정확히 반대, 때문에 우리는 해가 질 때쯤에야 잠에서 깨고는 느릿느릿 집을 나설 준비를 한다. 해가 지면 이 지역(지역이라 해봤자 집 두세 채가 전부인 농촌마을이지만)의 가장이라고 할 수 있는 나를 비롯해 아들과 딸, 손자와 손녀들까지 모두 집을 나서야 한다. 밥벌이란 그런 것이다. 아무리 몸집이 작고 여려도 열외란 없다. 가뜩이나 올해에는 겨울이 빨리 찾아와, 우리 가족은 쌀 한 톨이라도 더 먹어 살을 찌워야만 했다. 인간의 속담 중에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라는 말도 있다지만, 사실 우리에겐 말 따위를 들을 여유조차도 없는 것이다.

둘째 놈은 며칠 전부터 무슨 겉멋이 들었는지, 이상한 녹색 잠바 같은 것을 걸치고 다녔다. 그런 거 몸에 달고 다니면 남들 눈에 잘 띄어, 말해도 녀석은 들은 체도 안 했다.

“아, 괜찮다니까 그러시네. 어쨌든 저 먼저 나갑니다.”

조심스러움과 예민함은 모든 쥐의 덕목이라는데, 녀석은 쥐가 맞는 건지 싶을 정도로 대담해서 걱정이다. 나는 걱정을 한 움큼쯤 더 보태어 녀석의 궁둥이에 소리쳤다.

“큰길로 다니지 말고, 수상한 거 주워 먹지 말고!”

불현 녹색 지붕 집 농부의 얼굴이 떠올랐다. 며칠 전, 멧돼지가 파먹었는지 꽤 많은 양의 농작물들을 망쳤다고 씩씩거리며 혼잣말을 하던 얼굴이었다. 이 새끼들, 내가 다 죽여 버린다. 그것과 비슷한 욕을 했었던 것 같다.

*

몇 달 전보다 이른 시간에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논길 아래를 걷는다. 잘 포장된 인도로는 가끔 스쿠터도 지나가고 경운기도 지나갔지만, 나는 이제 전혀 저런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채 몸이 다 자라기도 전의 어린 쥐였을 때에나 모든 게 무서웠지. 인간들은 대충대충 앞만 보려는 기질이 있어서, 논길 옆의 풀밭을 보는 이는 거의 없었다.

“오늘은 또 어디에 가서 어떤 걸 가져와야 하나…….”

이 동네에 집이라고는 세 채뿐이고, 그 주변으로는 온갖 위험한 새들이 날아다니는 산이었다. 그만큼이나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았지만, 나는 조금이라도 더 맛있고 몸에 좋은 식량을 구하고픈 욕심이 있었다, 며칠 전에 증손자 몇 녀석이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아직 걸어 다니지도 못하는 핏덩이 같은 녀석들이었다. 씹기 좋고 맛도 있는 게 있으면 좋으련만, 그래, 뭐였더라, ‘스파게티’ 면발 같은 것. 물론, 그런 게 이런 시골에 있을 리는 없겠지만.

내가 아주 어릴 때, 나의 아버지 역시 어린 나에게 스파게티 면발을 가져다 먹여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버지와 나는 서울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발품을 팔면 그런 먹을거리쯤은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도시라는 것에는 이중성이 있어서, 번화하면 번화할수록 먹을 것도 많아지는 동시에 우리네 쥐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들도 함께 갖추곤 했었다. 이를테면 전문 방제업체가 점점 더 많은 음식점과 가맹을 맺는다거나(이때 아버지의 여러 동료들이 쥐약을 먹고 목숨을 잃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도심을 걸어 다니게 되어 밟혀 죽게 된다거나 하는 것들이었다. 결국, 우리 부자는 농수산물을 유통업체의 트럭에 몰래 타서 귀농을 감행했다. 그 뒤로는 도시의 풍경을 볼 수 없었다.

*

‘넓은 마당 집’에 거의 다 도착해간다. 이때부터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만 한다. 마당이 넓은 이 집에는 먹을 만한 것들이 많이 있었지만, 성질이 아주 고약한 고양이 두 마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같았으면 안전하게 다른 두 집의 뒤주를 털었겠지만, 오늘따라 증손자들의 얼굴이 눈에 훤했기 때문에 나는 모험을 감행해야 했다.

잔뜩 웅크린 채 풀숲 사이를 가로지르는데, 문득 저 앞의 큰길에 이상한 것이 놓여있는 게 보였다. 동시에 꼬릿꼬릿한 냄새 또한 맡을 수 있었다. 아주 어릴 적 서울에서 맡았던 치즈의 냄새였던가.

저 앞에 놓인 이상한 것이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나는 조금 더 기어나갔는데, 나는 순간 눈앞이 깜깜해짐을 느꼈다. 세상에, 나뭇잎 같기도, 작은 돌멩이 같기도 했던 모양은 둘째 놈이 큰 길 위에 벌러덩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이놈아, 밟혀 죽으면 어쩌려고 그런 데서 자빠져 자고 있어!”

최대한 소란스러운 찍찍거림으로 둘째를 꾸짖었지만, 놈은 들은 척도 안 한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부르기 위해 조금 더 앞으로 기어나간다. 놈의 표정까지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가 됐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눈은 뜬 건지 감은 건지 몽롱하게 뜨고 있고, 요란한 꿈이라도 꾸는 듯 팔다리를 바들바들 떠는 게 아닌가. 무엇보다도 입에는 이상한 거품 같은 것이……맙소사! 내가 아무거나 주워 먹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둘째 녀석의 앞에 작고 노란 자갈 같은 것이 이제야 보인다. 모양과 냄새는 분명 치즈와 같지만 무시무시한 약이 섞여 있을 것이다. 아이고, 이를 어쩌나.

조금이라도 빨리 녀석을 집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 찬물이라도 먹이면 조금 나아질 수도 있으니까. 나는 잔뜩 땅에 달라 붙어있던 몸을 일으켜 뛰쳐나갈 준비를 한다. 자, 잽싸게 데리고 오는 거야.

“하나, 둘…….”

다리가 굳어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둘째 녀석과 약이 섞인 치즈의 너머로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대로 가다간 둘째 녀석이 잡아먹히는 걸 뜬 눈으로 지켜보게 될 것이다.

순간, 어느 날 동시에 모습을 감추셨던 형님과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랐다. 여러 사연들이 있었으리라. 나는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를 꽉 깨물곤 다시 뛰어나갈 준비를 해본다.

이대로 뒤돌아서 혼자 집으로 달려갈 수는 없다.

 길 건너 그분들의 사연  세상의 모든 존재들, 나와 나의 주변 ‘것’들이 각자 간직한 마음과 사연. 그 사연들을 손 편지처럼 꾹꾹 눌러 담아 쓴 초단편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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