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내게도 친구가 생길까요?

 

아들이 여섯 살이던 때로 기억한다. 동네에 있는 키즈카페를 갔다. 신이 났다. 기분이 좋을 때 취하는 행동(한 손은 귀에 다른 손은 입에 가져다 대고 “아갸갸갸갸”라고 외치기)을 하며 이곳 저곳을 탐색한다.

 

그러다 또래 아이 둘 앞에 섰다. 마침 둘은 까르르 웃어대며 어떤 놀이를 하고 있던 상황. 웃음소리를 듣자 같이 기분이 좋아진 아들은 가까이 있던 아이의 팔을 툭 하고 건드렸다.

 

“앗! 그 신호는….”

 

아들이 다가와 팔을 툭 하고 건드리는 건 ‘같이 놀자’는 신호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잡기놀이를 하며 같이 놀고 싶으니 니가 먼저 달려 나가’라는 뜻.

 

까르르 웃던 아이 둘이 갑자기 끼어든 아들의 등장에 일순 얼음이 된다. 아들의 반응을 기다린다. 같이 놀자든가 뭐를 하자든가 말을 건네야 할 타이밍에 아들이 양손을 귀와 입에 가져가며 “아갸갸갸”라고 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둘이 눈빛을 교환하더니 자리를 떠난다. 잡기놀이 할 기대감에 부풀어있던 아들이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이 보인다. 눈길이 방금 전 떠난 둘을 쫓고 있다. 귀와 입에 가 있던 손이 천천히 내려온다. 다시 또 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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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아들을 키워오면서 가장 가슴이 미어졌던 순간이다. 거절을 당한 건 아들인데 송곳이 파고드는 건 내 심장이었다. 지금도 그때의 아들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미취학 아이들의 사회성이라는 건 어제 같이 놀다가도 오늘은 안 놀기도 하는 거라, 딸이 같은 상황을 당했다면 별생각 없이 넘어갔을 터였다.

 

하지만 그 날 아들의 모습을 보며 난 ‘아~ 앞으로 평생을 저리 살아가겠구나~’ 하는 걸 처음으로 느꼈다.

 

장애인인 아들을 키우며 가장 고민이 되는 것 중 하나가 이 부분이다. 친구 문제.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도통 감이 안 잡힌다. 일반 아이를 키우듯이 개입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면 되는 것일까? 아니면 환경을 조성해줘야 하는 것일까? 아직도, 여전히 나는 시행착오 중이다.

 

아들은 ‘친구’에 대한 개념이 없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친구에 대해 무관심하다.

 

혹시 한국지적장애인협회에 나와 있는 설명대로, 아들이 친구 관계에서 반복된 상처를 경험하고 그로 인해 실패감과 위축감을 느끼게 되어 새로운 친구를 만들고자 하는 도전 자체를 포기해 버리게 된 것은 아닐까? 알 수가 없다.

 

아들에게 안전한 모든 관계는 여자 어른들로 구성돼 있다. 가장 좋아하는 건 엄마. 다음이 양가 할머니, 그다음이 학교와 치료실의 여교사들, 가장 마지막이 아빠와 누나다. 아빠는 뽀뽀를 너무 세게 해서(심지어 침까지 묻힌다) 싫고, 누나는 엄마의 사랑을 나눠야 하는 경쟁상대라 싫다.

 

하지만 또래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좋아한다. 안전한 건 어른들인데 좋아하는 건 또래들이 모여 있는 공간이다. 나는 아들이 좋아하는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방안을 모색했다. 가장 쉬운 건 딸의 인간관계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유치원에 입학을 하자 나는 열혈 학부모가 되어 딸 친구 엄마들과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많은 정성을 쏟았다. “엄마들끼리 친해져야 아이들도 친구가 된다”는 말을 여기저기서 주워들었기 때문이다.

 

맞는 말이기도 했다. 엄마들끼리 친하면 아이들도 자주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아들은 딸의 인간관계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갔다. 딸아이의 쌍둥이 동생인데 태어날 때 죽었다가 살아나서 아직도 마음이 두 살인 ‘어린 사람’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관계 형성에 만족하고 있던 난 아들만의 사회적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을 따로 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처음 맞는 학부모 총회. 하필이면 날짜도 시간도 똑같다. ‘어느 학교를 가야 하나~’ 하루 정도 고민했으나 결국은 딸의 학교를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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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였다. 초등학생 때부터는 아이들 스스로 친구를 선택하기 시작하면서 엄마들끼리 친하면 그냥 엄마들끼리만 만나게 됐다. 아들이 누나의 인간관계 안에 슬쩍 끼어들 틈이 없었다.

 

게다가 아들도 유치원이 아닌 학교라는 곳에 입학을 한 만큼 반 엄마들에게 아들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이해를 시키는 과정이 필요했었는데 내가 그것을 생략해 버렸다.

 

4월이 되어서야 “아차!”하고는 아들 반의 엄마들에게 내 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제가 동환이 엄마예요.” 뒤늦게라도 만회하고자 티타임에도 나가고, 술자리에도 나갔지만 그런다고 아들까지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나와는 개인적으로 만나 차를 마시지만 반 친구들의 모임에 아들이 초대되는 일은 없었다.

 

어제는 키즈카페를 갔다. 아들은 트램펄린 타는 걸 좋아한다. 3~4학년쯤 되어 보이는 누나 둘이 등장하자 아들의 기분이 업 되는 게 느껴진다. 자기가 좋아하는 서너 살 많은 형 누나 무리다. 힘도 세고 활동도 크고 날렵한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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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같으면 옆에 가서 손으로 팔을 툭 건드려봤을 법도 한데 눈으로만 쫓을 뿐 한 번도 같이 놀자는 신호를 보내지 않는다. 한 공간에 있는 자체로만 만족을 하고 방어막에라도 둘러싸여 있는 듯 행동을 한다.

 

하지만 누나들이 나가면 따라 나가고 누나들이 들어가면 따라 들어간다. 따라는 다니는데 같이 놀자고는 못 한다. 같이 놀자는 의사를 드러낼 도전 자체를 포기해 버린 느낌이랄까?

 

나는 우리 아들이 친구에 관심이 없는 줄 알고 있었다. 물론 친구라는 개념이 잘 서 있지 않은 건 맞다. 친구와 공동으로 놀이를 함께 한다는 게 아직은 이 아이에게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어쩌면…. 단지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나도 모르는 새에 ‘거절당하는 두려움’을 알아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든다.

 

선배 장애아 엄마들이 말한다. 우리 아이들이 대체적으로 인지가 낮아서 그나마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친구라는 개념을 잘 모르고 사는데 점점 고학년으로 갈수록 친구를 찾게 되더라고.

 

선배맘들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었다. 열이면 열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며 시행착오에 부딪혔다. 정답은 없었다.

 

누군가는 ‘아줌마 네트워크’에 총력을 기울였다. 엄마들의 관계로 인해 장애인 자식이 받아들여지는 관계를 구축했다. 누군가는 다양한 동아리 활동을 통해 그 안에서 장애인에게 호의적인 일반 친구들을 접할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엄마가 더 많은 상처를 받아버려서 마음의 문을 닫아 버렸다. 바깥 외출도 거의 않고 놀이터를 가더라도 친구들이 없는 늦은 시간에만 골라 나가는 길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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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나는 어찌할까…. 어찌 보면 나 역시 친구 관계에 대해서만큼은 마음의 문을 닫게 된 쪽일지도 모르겠다. 1년 동안 일반학교에 아이를 보내면서 깨달은 건 ‘우리 아들이 일반 아이들 세계에 친구로서 받아들여지는 일은 없겠구나’ 하는 것이다.

 

4~5학년을 넘어가면서부터는 친구를 찾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쯤 아들을 특수학교로 전학을 시킬까 고민 중이다. 아이의 발달 상황에 따라 시기는 더 빨라지거나 늦어질 수도 있겠지만 막 친구를 찾고 그리워하기 시작할 그때쯤, 비슷한 수준의 비슷한 또래 친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전학을 가는 게 맞는 일이지 싶다.

 

젊은 때는 포장마차에서 친구와 소주로 병나발을 불며 사랑에 울고 인생을 논하는 재미로 살았다. 나이가 들어서는 맛난 것을 찾아다니며 친구들과 시월드 험담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우리 아들도 그런 친구를 만들 수 있을까? 인생의 어려운 고비마다 코코아 한 잔을 앞에 두고 위로 받을 수 있는 그런 친구 하나쯤은 만들 수 있을까? 특수학교에 가면 비슷한 아이들끼리 친구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것일까?

 

아, 친구를 만들기 위해선 일단 말문부터 뚫려야겠구나. “아갸갸갸”라고 말하면 “어겨겨겨”라고 대답할 친구가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일단 말은 하자꾸나. 그래야 친구를 사귈 폭도 넓어질 테니. 가자! 아들! 오늘도 언어치료가 기다리고 있다. 고고!

 

/사진:류승연

 

 

동네 바보 형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장애인 월드’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에피소드별로 전합니다. 모르면 오해지만, 알면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런 비장애인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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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소개

동네 바보 형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장애인 월드’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에피소드별로 전합니다. 모르면 오해지만, 알면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런 비장애인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필자 소개

전직 정치부 기자. 쌍둥이 조산 이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생활도 처음이지만 장애인 아이의 엄마는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그들에 대해 잘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 믿고 싶어 하는, 한창 순수할 나이.

  • 왕아인

    아… 그감통킹 오세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