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남부선을 타고 일광역에 내리면…
동해남부선을 타고 일광역에 내리면…
2017.01.16 09:25 by 이한나

'부산 동해남부선 복선전철 개통'

우연히 본 기사 하나에 마음이 동했다. 부전역에서 기장 일광역까지 열차가 개통돼 12월 30일부터 운행한다는 내용이었다. 기장 일광이라면 일광 해수욕장이 있는 곳. 늘 가보고 싶었지만 멀어서 자주 가지 못했던 곳이다. 결국 개통일을 기다려 친구와 함께 여정에 나섰다.

동해남부선을 탈 수 있는 부전역의 전경.

유의해야 할 점은 지하철 부전역이 아니라는 점. 지하철에서 아예 빠져나와 또다른 부전(기차)역으로 이동해야 한다. 요금은 1구간 1,200원, 2구간 1,400원인데, 다른 교통수단에서 동해남부선으로 환승할 경우 (현재는) 선불카드, 신한·농협·현대 후불카드만 가능하다. 추후 환승서비스 대상 카드가 확대될 예정이라고 하니 미리미리 확인해보자.

배차간격은 출퇴근시간 15분, 평시 30분에 한 번 출발하는 것으로 꽤 긴 편이다. 더군다나 출퇴근시간도 아닌 오후 2시. 실내 플랫폼이 아니라 기다리는 동안 많이 춥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데, 다행히도 열차가 미리 도착해서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탑승. 열차가 출발하기를 기다린다. 승객의 대부분은 나이 드신 분들이다. 

부전역에서 일광역까지는 불과 26분이 소요된다. 같은 부산이지만 기장군은 항상 참 멀게 느껴졌는데, 이런 걸 두고 ‘격세지감’이라고 하나보다. 창밖 풍경은 은근 별로다. 예전의 동해남부선처럼 바다를 따라 이동하지 않기 때문. 옛날 그 동해남부선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꽤 실망스러운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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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개의 역을 정신없이 지나 마침내 일광역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승객들 역시 일광역에서 우르르 내렸다. 부산 사람이니 이리저리 지나갈 일은 있었던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제 발로 찾아온 건 처음이라 걱정스런 마음에 지도앱을 열심히 들여다본다. 하지만 초행자의 마음앓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어촌 읍내같은 푸근한 주변풍경 덕분이다. 생각보다 길도 어렵지 않았다.

역에서 나와 길을 건넌 후 큰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쭉 이동하다 보면 왼편으로 바다가 보이는 골목이 나온다. 설명이 조금 뜬구름 잡는 듯 보이겠지만, 그 정도로 일광해수욕장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난생 처음으로 일광해수욕장에 발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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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일이라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게 정말 좋았다. 한적하고 쓸쓸한, 겨울 바다의 진수를 만난 기분이랄까.

흔히 일광해수욕장은 백사장이 작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던데, 실제로 가보니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물론 부산의 여타 해수욕장들과 달리 해안선이 한 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그건 둥그렇게 형성된 지형 때문이지 크기 때문은 아니다. 참고로 풍수지리설에선 '둥그렇게 말린 해안선의 모양은 명당지라 불리는 조건'이라고 한다.

일광해수욕장에서는 부산의 다른 해수욕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조용함과 한적함,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아, 이것이 겨울 바다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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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여름에 해수욕장을 찾지만, 바다의 힘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계절은 사실 겨울이다. 겨울 바다는 스스로를 옭아매는 수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기에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추억을 쌓기에도 제격이니까. 겨울의 파도 소리는 유난히 청명하고, 바다는 벅찰 만큼 푸르다. 겨울 바다는 참 많은 것을 우리에게 주지만, 우리는 그저 열린 마음과 따뜻한 옷만 준비하면 된다.

해변의 한가운데에는 귀여운 배 모양의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요즘은 해수욕장에 온갖 시설물들을 많아 큰 감흥은 없었지만, 막상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그냥 시설물이 아닌 바닥분수였다. 이곳에선 6월부터 9월(해수욕장 개장기간)까지 매시 정각부터 30분간 바닥분수쇼가 열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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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의 모래사장은 다양한 면면을 가지고 있다. 위로 난 다리를 건너야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깊은 골이 두어 개 있고, 난데없이 해조류가 잔뜩 낀 바위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파도가 치는 모양도 여타 해수욕장들과는 달리 시간차를 두고 여러 겹이 동시에 육지로 다가왔다. 이처럼 해수욕장 자체에 흥미로운 구석이 정말 많아 걷는 동안 지루할 틈이 전혀 없었다.

제주의 광치기해변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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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끝을 향해 다가가면 카라반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는 광경을 보게 된다. 캠핑이 보편화되면서 일광 해수욕장에서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필자가 방문한 날에도 몇몇 사람들이 여유롭게 캠핑을 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다. 단, 해수욕장 아무 데서나 할 수는 없고 지정되어 있는 지역에서만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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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해수욕장의 끝자락에는 일광 해수욕장이 위치해 있는 삼성리와 바로 옆의 학리, 학리항을 연결해 주는 데크 산책로가 자리하고 있다. 생각보다 훨씬 더 바다와 딱 붙어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관리가 아주 잘 되어 있는 편은 아닌 것 같아 조금 아쉬웠지만 한 번쯤은 걸어볼만한 코스였다. 강아지들과 함께 산책 나온 한 가족의 다정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여기까지 걷다 보니 푸르던 하늘은 아주 조금씩 붉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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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다리를 쉬게 해주려 카페를 찾았다. 해변을 바라보며 서 있는 수많은 건물들 중 눈에 띈 카페는 세 군데 정도였고, 대형 브랜드 카페는 전혀 없었으며, 모두 손님들이 많았다. 그 중 ‘에스페랑스’라는 고급스러운 이름의 카페로 들어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작년 SBS에서 방영되었던 드라마 <딴따라>에 등장해 유명세를 탄 곳이었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 고급스러운 인테리어 등 모든 면에서 만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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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커피(4-5천 원대)뿐만 아니라 핸드 드립 커피(6-7천 원대)도 맛볼 수 있고, 베이커리 역시 맛이 좋기로 소문이 났단다. 나름의 고심 끝에 음료와 딸기 생크림 케이크(7천원)를 주문했다. 커피도 맛이 좋았지만, 딸기 생크림 케이크의 맛은 쉬이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케이크를 다시 먹기 위해서라도 또 일광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맛있는 것을 먹고 원기 충전까지 완료.

단순한 호기심으로 동해남부선을 탔을 때까지만 해도 일광 해수욕장이 이처럼 매력적이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앞으로 관광지로서 어떠한 변화를 겪을 지 알 수 없지만, 투박한 원석 같은 지금의 일광이 가진 매력을 잃어버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필자 역시 이곳을 꽤 자주 찾게 될 것 같다. 특히 겨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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