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이는 신의 축복이다
모든 아이는 신의 축복이다
모든 아이는 신의 축복이다
2017.02.07 13:54 by 류승연

모든 아이는 신의 축복이라 했다. 그렇다면 장애를 갖고 태어난 아이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2년 전만 해도 믿지 못했던 이 말을 지금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장애 아이를 키우다보니 겪지 않아도 될 별 꼴을 다 겪으며 인생을 살아 나간다. 눈물은 마를 날이 없고, 가끔씩은 화도 나며, 신을 원망하고 싶을 때도 한 두 번이 아니다. 특히 나는 ‘신의 축복’이라는 말에 유독 민감하게 반응을 했는데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왜냐하면 장애아인 내 아들은 고인이 된 김수환 추기경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아이이기 때문이다. 이게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고 할 수도 있겠다. 사연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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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무교다. 남편은 무교인 듯 무교 아닌 무교적인 그런 상태고, 나는 정확히 말하면 무교라기 보단 ‘신은 하나’라는 개념에서 종교를 바라본다. 하나님이든 부처님이든 달님이든 ‘같은 존재, 다른 이름’으로 인간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포괄적으로 ‘무교’라 명명해 버리는 건 편했다. 급할 때면 하나님한테 기도를 했고, 절에도 마음 편히 다녔으며, 밤하늘을 보며 달님에게 소원을 빌었다.

그러다 그 날이 왔다. 남편과 집에서 TV를 보는데 김수환 추기경이 영면에 들었다며 유리관 안에 누워있는 모습이 계속 나왔다. 그 때 번쩍 든 생각 하나. “자기야! 빨리 기도 좀 하자. 우리 애기 생기게 해달라고. 하나님 말고 김수환 추기경한테”

하나님은 전 세계 모든 인간들의 기도를 다 들어줘야 해서 바쁘니 이제 막 천국에 도착한 김수환 추기경에게 기도를 하면 임신을 바라는 우리의 요구가 하나님에게 전달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천국에 막 들어간 신입생. 당분간은 하나님 바로 옆에서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회포도 풀지 않겠냐는 지극히 무지하고 무교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발상이었다. 하지만 마음만은 진지해서 우리는 TV 앞에 서서 두 눈을 꼭 감고 김수환 추기경에게 진심을 담아 기도를 했다.

“추기경님, 우리 애기 좀 생기게 해 주세요~”

이것도 해 보고 저것도 해보는데 임신은 안 됐고 눈 마주칠 때마다 노력을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우리가 인간인지 짐승인지도 모르겠다. 이대로 가다간 임신을 하기도 전에 남편의 기력이 먼저 쇠할 판이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후 남편이 꿈을 꿨다. 꿈에 김수환 추기경이 나와서 본인이 입고 있던 추기경복을 벗어 남편에게 입혀 주었단다. 추기경복을 입고 있는 남편을 보고 어느 아주머니가 뭐라고 막 나무랐는데 김수환 추기경이 본인 옷을 벗어 입혀주었다고 하자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했다고. 꿈에서 깬 남편은 로또를 사야하냐며 흥분하는데 나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태몽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임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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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의 축복을 받고 잉태된 생명. 남편의 성이 마침 김씨였기에 우리는 태아의 태명을 ‘수환’이로 지었다. “수환아~ 수환아~” 부르며 행복해하기를 한 달. 임신 6주가 되어 초음파 검사를 하는데 애기집이 두 개다. 쌍둥이란다. 오 마이 갓! 한 방에 두 명!

태명을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한 명은 ‘수’ 한 명은 ‘환’. 이렇게 나눠서 “수야~” “환이야~”라고 불렀다. 그리고 아이들이 태어나자 김수환 추기경의 이름을 차례대로 넣어서 먼저 나온 딸은 김수인, 나중에 나온 아들은 김동환으로 지었다.

분명 추기경의 축복을 받고 태어난 아이들인데 한 놈이 이상했다. 돌이 되어도 뒤집기도 못하고 세 돌이 되어도 혼자 못 걷는다. 부모 손을 잡거나 벽을 잡고는 걸어가는데 그나마도 뒤뚱뒤뚱. 게다가 양 발이 바깥으로 활짝 펴져 있다. 발꼬락이 앞을 보고 서 있어야 하는데 부채처럼 펴져서는 양 옆으로 휘어져 있다.

발도 걱정이지만 더 걱정되는 건 두뇌. 말귀를 알아듣는 게 하나도 없고 세상만사에 무관심하다. “장애일까? 에이 설마…. 늦는 애들이 있다고 했어”, 그렇게 두려움 반 우려 반으로 지내던 나날들.

친정에 가 있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침대에서 자고 아이들은 바닥에서 자고 있었는데 어둠 속에서 방문이 조용히 열리더니 김수환 추기경이 들어온다. 아이들이 깰까봐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 우리 아들 앞에 선다. 자세를 낮춰 아들의 머리와 발을 한 번씩 어루만지더니 다시 뒤를 돌아 조용히 나간다. 방문을 닫기 전 나를 보더니 손가락을 들어 “쉿~”하는 제스춰를 보이곤 문을 닫았다.

어둠 속에서 침대에 누운 채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난 “아~ 추기경이 오셨구나~”하다가 그대로 잠에 빠져 들었다. 진짜 다녀가신 건지, 꿈을 꾼 건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아마도 꿈을 꾼 것이겠지.

하지만 무교라고 명명한 우리 부부의 꿈에 김수환 추기경이 차례로 다녀간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기대를 했다. 우리 아들이, 김수환 추기경의 이름을 자신의 이름 안에 가지고 있는 이 아이가 기적적으로 좋아져 정상인인 누나를 따라잡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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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아들은 끝내 지적장애 판정을 받았고 앞으로도 영원히 어린왕자로 살게 됐다. 나는 화가 났다. 누구에게든 이 힘든 마음을 쏟아낼 곳이 필요했는데 마침 얼마나 좋아. “결국 이러려고 축복을 준 거예요?” 나는 김수환 추기경의 사진을 볼 때마다 “흥!!!”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 절실한 카톨릭 신자인 특수반 엄마가 한 명 있었다. 그 엄마는 신이라는 존재에 분노하고 있는 나를 보며 자신의 얘기를 들려줬다. 자신도 나 같은 시절이 있었다고. 아이에게 장애를 준 신을 원망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그렇게 원망하고 기도하던 어느 날, 신이 왜 아이에게 장애를 준 것인지 답을 얻었다고. 눈이 번쩍 뜨여 “왜 줬대요? 장애를?”하고 묻자 “너를 축복하기 위해서”라고 대답을 한다.

그 말을 듣고 실소가 났다. 뭐시라? 나를 축복하기 위해서 내 새끼한테 장애를 줬다고라? 사방 천지에 널린 게 기독교와 카톨릭 신자들인데 그들이나 축복하지 왜 무교인 우리한테 축복을 해! 에잇~ 그런 축복은 멍멍이나 줘 버렷!

그렇게 그렇게 김수환 추기경의 사진이 보일 때마다 한 번씩 째려보고, 그렇게 그렇게 ‘신의 축복’이라는 말만 들으면 민감하게 반응하며,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고 있던 나날.

며칠 전 잠을 자기 위해 자리에 누웠다. 내가 가운데 눕고 양 옆에는 아들과 딸이 나란히 눕는데 그 날 따라 요놈들이 잠을 안자고 장난을 치며 깔깔댄다. 특히 아들은 웃음보가 터져서 제어가 안 된다. 엄마의 작은 동작 하나에도 까르르 까르르.

그 모습을 지켜보던 딸이 말한다. “엄마~ 동환이가 역시 축복을 받은 게 맞아. 이렇게 귀여운 걸 보니…” 아홉 살 된 딸의 그 말을 듣는데, 그제서야 ‘축복’이라던 것의 의미들이 어렴풋이 이해되는 것 같다.

  

평생을 어린아이로 살아야 하는 아들 덕분에 나와 우리 가족은 언제까지고 어린 아들이 주는 기쁨을 맛보며 살게 되었다. 감정에 솔직하고, 작은 것에도 환호하고, 예상 못한 행동과 애교에서 빵 터지는 웃음을 매일 느끼며 살게 되었다.

가족들이 똘똘 뭉치게 된 것도 아들 덕이다. 주변을 보면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을 하면서부턴 남편들이 점점 육아에서 손을 떼기 시작한다. 놀러갈 때도 엄마들이 모여 아이들만 데리고 가고 그 시간동안 아빠들은 집에서 잠을 자거나 혼자서 취미활동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어린아이인 아들 덕분에 지금까지도 모든 것을 넷이서 함께 한다. 어디를 가든 함께 다닌다. 우리 아이들 곁에는 언제나 아빠와 엄마가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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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가 아니었다. 신이 준 축복은. 장애를 가진 아이로 인해 나와 우리 가족이 얻게 될 인생의 소소한 행복들이 신이 내려준 축복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이 준 축복이었다. 누군가는 기도와 응답을 통해 알게 된 그 사실을 나는 어린 딸의 말을 통해 알게 되었다.

축복을 받고 태어난 아이를, 장애를 가진 내 새끼를, 더 사랑하고 잘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그것이 내가 이 생에서 해야 할 사명이지 싶다.

아이들이 더 크면 성당에 가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카톨릭 신자가 아니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 안에 들어 있는 추기경의 축복을, 신의 축복을 한껏 누리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이상은 김수환 추기경의 사진을 볼 때마다 째려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도 한다. 고운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사진:류승연

동네 바보 형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장애인 월드’에 대한 생생한 이야기를 에피소드별로 전합니다. 모르면 오해지만, 알면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그런 비장애인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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