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걸'은 웁니다
'알파걸'은 웁니다
'알파걸'은 웁니다
2017.02.09 15:41 by 제인린(Jane lin)

설 명절이 끝난 지 한 주가 지났습니다. 이맘때 등장하는 단골 뉴스가 있죠. ‘며느리들의 지나친 가사 노동으로 인한 부작용’ 같은 것들입니다. 같은 기간 중국에서도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춘절을 보내고 있지만, 이 같은 여성의 가사 노동으로 인한 부작용 사례를 언급하는 언론 보도를 찾긴 힘듭니다. 왜 그럴까요?

(사진:Photographee.eu/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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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시선 

지난달 세종 청사에서 7일 연속 야근한 것으로 알려진 35세 여성 근로자가 과로(過勞)로 사망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다수의 언론은 ‘육아휴직이 종료된 이후 복직과 동시에 7일 연속으로 야근을 했고, 주말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하며 업무 공백을 메우던 중에 사망한 것’으로 보도했죠.

비교적 근무 환경이 좋은 것으로 알려진 중앙정부 공무원의 사망 사유가 ‘과로’라는 점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그녀보다 좋은 환경에서 일하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며, 이 보다 더 열악한 환경에서 근로하고 있을 수 백 만 여성 근로자들의 안위 역시 생각해볼 대목이기 때문이죠.

직장에서는 완벽한 직장인으로, 퇴근 후 가정에서는 세 명의 자녀를 돌봐야 했을 여성 근로자의 삶이 얼마나 고됐을까요?

과로를 권하는 사회, 말로만 대충 넘어가는 정책 말고,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할 수 있는 ‘진짜’ 대책이 시급한 형국입니다.

(사진:Brian A Jackson/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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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선

이번 호에서는 최근 베이징에 거주하는 중국인 지인의 집을 방문했던 일화로 시작합니다.

이달 초 춘절 명절을 맞아 중국인 지인의 가정에 초대를 받은 일이 잦았습니다. 외국인 노동자로 중국에 거주하는 필자를 안쓰럽게 생각하거나, 특별히 아꼈을 지인들의 반가운 초대 소식이었죠. 필자는 그중 평소 가깝게 지내던 송씨 부부 댁에 저녁 식사를 하러 방문했습니다.

당시 필자는 작은 케이크 하나를 선물로 준비해 송씨 집에 도착했습니다. 필자를 맞이한 (부부 중에) 남편은 저녁 식사를 전담했고, 부인은 거실에서 저녁 식사가 마련되는 동안 내내 저와 함께 TV를 보고 있었죠.

여성이 가사 일을 전적으로 담당하는 한국식 가사 문화에 익숙한 필자는 손님으로 초대 받았을지언정 가만히 앉아서 받아먹는 환경이 불편해, “제가 돕겠다”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정중히 거절당했죠. “고맙지만, 중국에서 손님에게 일을 시키는 문화는 없다”라면서요.

송씨 부부의 가사 분담은 남편이 장을 보고 식사 준비 일체를 하고, 아내는 바깥일을 담당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의 남편은 3년 전 퇴직 후 가사일을 하고 있고, 아내는 아직 직장생활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날 식사가 다 끝난 이후 과일과 차를 내오는 것 역시 남편의 몫이었고, 식사 후 벌려 놓은 식기류를 정리하는 것도 남편이 맡았습니다. 그 시각 부인은 집으로 돌아가는 필자를 배웅했죠.

그 날의 경험은 아내가 식사를 담당하고, 뒷정리를 하는 가사 노동에 전적인 책임자로 자리하길 원하는 우리 문화와는 정면에서 배치되는 장면이었습니다.

한동안 그때의 기억을 자주 이야기하며 ‘너희(중국) 문화와 우리 문화의 상반성’을 회자했던 이유도 그래서죠.

비단 남성이 저녁 식사를 담당했다는 단편적인 현상뿐만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꾸려가는 가정의 평화와 남녀평등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가 더없이 편안해 보였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그 후에도 종종 “정말 너희(중국인)들은 남성이 가사 일을 분담하거나, 전적으로 담당하는 것이 아무렇지 않아?”라는 물음을 중국인 지인에게 자주 던집니다. 그들은 언제나 “한국 남자들은 집안일을 하지 않는 것이냐, 그런 일이 가능하냐. 그러고 보니 한국 드라마에서는 항상 여성이 밥을 하고 남성은 앉아서 먹기만 하는 장면이 나와서 가부장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되묻던 기억이 있습니다.

분위기가 이쯤 되면 필자 쪽에서 질문하기를 그만두고,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기 일쑤였죠.

지난 2008년 중국 ‘시사출판사’에서 펴낸 ‘좋은 남자의 표준(好男人的标准)’은 대중의 큰 인기를 얻었는데, 해당 서적에서는 가사일을 담당하는 남자의 멋에 대해서 서술하고 있다. (사진:바이두 백과사전 이미지 DB)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평등하지 못한 가정 내 분위기에 익숙한 한국 문화가 떠오르며 부러운 감정이 앞섰던 것도 사실입니다.

남녀가 모두 사회생활을 하고, 맞벌이를 하는 부부의 비율이 크게 증가한 상황에서도 한국에서 가사는 왠지 모르게 여전히 여성의 전유물로 남아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죠.

일각에서는 이 같은 문화가 유교적인 관습이 크게 남아 있는 한국 가정이 버려야 할 유물이라고 지적하곤 하지만, 오히려 유교의 진짜 발상지는 남녀평등을 당연한 가정 내 기치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국이죠.

이와 관련해 한 가지 떠오르는 언어적 습관이 있습니다. 한때 한국에서는 알파걸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사용된 적이 있습니다. 보통 사람보다 더 똑똑하거나, 일을 ‘똑’ 부러지게 잘 처리하는 ‘girl'이라는 의미에서 '알파걸'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라 추측해봅니다.

요리하는 남자의 모습. (사진: 바이두 이미지 DB)

해당 단어는 대체로 긍정적인 이미지로 활용되며, 더 많은 수의 여성들에게 평범함은 당연한 것이고, 그보다 한층 더 우위의 수준에 ’알파걸‘을 올려놓은 바 있죠. 이때 여성들은 '더 잘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수위 높은 업무 강도에 시달리게 되는 악순환이 고리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보통의 ‘걸’에 플러스 된 ‘알파’의 항목에는 완벽한 직장생활 또는 학업 외에도 가사일이 암묵적으로 포함됐을 것이라 유추할 수 있습니다. ‘워킹맘’이란 단어도 비슷합니다. ‘일하는 엄마’라는 의미 속에는 엄마로서의 주체자이자 자녀교육, 가사일을 전적으로 담당하는 역할이 담겨져 있죠.

중국인 한 남성이 흑마늘 제조 과정을 중국 SNS 웨이보(微博)에 게재,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하는지 문의한 장면. (사진: 웨이보(微博))

예컨대 장을 보고 식사 준비를 하며,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는 것은 물론 출산을 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일체의 과정이 모두 여성의 몫으로만 돌아간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죠. 직장인으로서 같은 회사의 남성 동료들과 동등한 수준의 업무를 담당하고 있더라도 말이죠.

하지만 ‘알파보이’, ‘워킹파더’란 말은 존재하지도, 생겨난 적도 없습니다. 평범함보다 그 이상의 것들은 언제나 여성에게 요구된 모양이라는 것을 지울 수 없는 대목입니다. 직장일을 하며 동시에 아빠로서의 자녀 양육과 가사 노동을 담당할 주체자로의 요구를 담은 단어들은 무엇 때문인지 우리 사회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이죠.

‘남성에게도 가사 노동의 짐을 지우자’는 것이 아닙니다. 가사 노동은 함께 영위할 때 더 가치 있는 것이며, 이때야 비로소 여성이 하나의 인간으로 인정받고 삶을 지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부수적 존재가 아닌 그 자체로써 가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남녀를 막론하고 누구나 당연히 가져야 할 권리이며, 꿈이기 때문이죠.

긴 명절을 보내는 매년 이 시기, 과로를 권하는 사회의 잔혹성과 이를 암묵적으로 용인하는 가정 내 억압적인 분위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때입니다.

  중국에 대한 101가지 오해 언론에 의해 비춰지는 중국은 여전히 낡고, 누추하며, 일면 더럽다. 하지만 낡고 더러운 이면에 존재하고 있는 중국은 그 역사만큼 깊고, 땅 덩어리만큼 넓으며, 사람 수 만큼 다양하다. 꿈을 찾아 베이징의 정착한 전직 기자가 전하는 3년여의 기록을 통해, 진짜 중국을 조명해본다.

필자소개
제인린(Jane lin)

여의도에서의 정치부 기자 생활을 청산하고 무작정 중국행. 새삶을 시작한지 무려 5년 째다. 지금은 중국의 모 대학 캠퍼스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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