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주자 X의 헌신
반주자 X의 헌신
2017.02.24 17:33 by 정원우

이제 세상의 중심은 디지털이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검색, 예약에서 결제까지 안되는 게 없을 정도다. 현금을 들고 다닐 필요도 없게 됐다. 가까운 미래에 지폐나 동전이 아예 없어지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봤다.

(사진:ESB Professional/shutterstock.com)

하지만 이게 괜한 걱정이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번화가를 걷던 중 내 시선은 어느 한 곳에 머물렀다. 요새 한참 유행 중인 인형 뽑기 기계. 몇몇 사람들은 뽑은 인형을 들고 해맑게 웃으며 걸어 다니고 있다. 사실 저 인형을 갖고 싶지는 않지만, 뽑기에 성공하는 순간의 짜릿함을 기대하며 하고 싶었다. 한 번 해보고자 지갑을 열었으나, 가진 건 카드와 신분증뿐. 디지털 세상인데, 왜 아직 인형 뽑기는 현금만 되는걸까…

허탈한 마음에 온갖 주머니를 헤집어 봤지만, 가진 건 딸랑 500원짜리 하나뿐. 요새는 소위 껌값이다. 혹시나 하고 기계 앞에 섰지만, 역시나 1회 이용이  1000원.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가라 했다. 뽑기에 대한 미련과 슬픔을 뒤로 하고 고기 앞으로 가던 중, 주머니 속 겨우 500원짜리가 할 수 있는 위대한 일을 찾았다. 인형 뽑기와 함께 유행하는 양대 산맥. 코인 노래방이다. 500원이면 자그마치 노래를 2곡이나 부를 수 있다. 2곡을 목이 터져라 부르고 나면 스트레스가 시원하게 날아가곤 한다.

(사진:Oleksandr Berezko/shutterstock.com)

그런데 영국인들이 뽑은 최악의 발명품 1위가 노래방 기계라고 한다. 불후의 명곡들을 음치들이 망쳐놓기 때문이다. 부르는 사람은 신날 수 있지만, 듣는 입장에서 고역이기 때문이라나.

노래방 기계는 사실 음치나 박치 사람들을 위한 것에서부터 시작했다고도 할 수 있다. 기계의 발명가는 일본인으로 이노우에 다이스케라는 남자다. 그는 야간업소에서 손님들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는 일을 했다. 특히 박자와 음정을 잘 맞춰 연주하기 때문에 그를 찾아오는 단골 손님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자주 찾던 중소기업 사장이 업소에 방문한다고 연락이 왔다. 꼭 이노우에가 연주해줬으면 한다고 부탁했지만, 그 날은 이노우에의 출장이 잡혀있는 날이었다.

 손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소중히 생각하는 이노우에는 출장 전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는 그 손님이 즐겨 부르던 노래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연주해서 녹음테이프를 만들었다. 덕분에 손님의 회식은 만족스럽게 마무리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노우에는 녹음한 테이프를 5초안에 재생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계는 ‘8주크’라는 이름의 가라오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가라오케’란 단어가 단란주점, 유흥주점의 뜻으로 변질되었지만, 사실 이는 노래방 기계를 의미한다. 가라오케라는 말은 ‘비어있다’라는 뜻의 가라(空;から)와 오케스트라(orchestra)의 일본식 합성어인데, 이것이 역으로 영어권 국가로 수출되면서 영어권에서도 karaoke로 통하며 영영사전에도 등재되어 있다.

가라오케는 역시나 큰 히트를 치면서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나 이노우에는 전혀 큰 돈을 벌지 못했다. 기계에 대한 특허 신청을 안했기 때문이다.

그가 가라오케 개발 후 곧바로 특허를 신청했다면 해마다 1000만달러 (100억원)의 로열티를 받았을 것이라고 한다. 지적재산권을 지키지 못해 억만장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이다. 비록 그는 큰 돈을 벌지는 못했지만, 수고를 인정받으면서 명예를 얻었다.

(사진:Syda Productions/shutterstock.com)

시사주간지 <타임>은 “마오저뚱과 간디가 아시아의 낮을 변화시켰다면 이노우에는 아시아의 밤을 바꿔놓았다”며 극찬했다. 2004년에는 노벨상 수상자들이 모여 기묘한 발명가에게 주는 ‘이그 노벨상’을 받기도 했다.

이노우에 덕분에 인형 뽑기에 대한 미련은 말끔히 사라졌다. 고기 앞으로 갔어도 기분은 풀렸겠지만, 마이크를 잡고 소리치는 것과는 다르지 않나. 고기 먹고 나면 살 찔까 걱정하지만, 노래 부르고 나서는 걱정할 것 하나 없다. 현금이 우리를 조금 불편하게 만들면 어떤가. 노래방을 위해서라면 동전 몇 개 짤랑거리는 소리도 탬버린 소리처럼 즐겁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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