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는 인도가 없다
인도에는 인도가 없다
2017.02.28 15:50 by 성서빈

처음 인도에서 ‘쇼킹’했던 건 ‘걸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걸을만한 곳이 없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긴 하다.

한국에서는 참 많이도 걸었다. 언제나 지하철 타러 오르락내리락. 지하철에서 대학교 건물까지도 뚜벅뚜벅 많이 걸었고. 서울의 남산에서부터 삼청동까지 걷는 것도 우스웠다. 하루에 만 보 걷기는 일상이었는데…

인도에 오니 가는 데마다 오랜 공사로 길이 파헤쳐져 있거나 보도블록이 깔려 있지 않은 곳이 태반이었고, 노상방뇨의 흔적이 가득하고 사막에서 날아온 모래더미까지 쌓여 있어 걷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다. 지금은 익숙해져서 무뎌졌지만 길 곳곳마다 널브러져 있는 큰개들도 하나의 이유를 보탰다. 어찌나 걷기가 어려운지 ‘걷지 않는 일상’이 익숙해질까 봐 겁이 날 정도였다.

인도의 8월 날씨는 대략 이렇다. 게다가 아주 건조해서 빨래를 해서 탁탁 털어 널면 대략 십분이면 말라있다. 옥상의 물탱크는 달아올라서 낮에는 물이 뜨거워 샤워를 할 수 없다. 화장실에 갔다가 무심코 손을 씻으려고 찬물을 틀면 손을 데기도 한다.
인도는 집에 들어오는 햇빛을 막으려고 집 앞에 큰 나무를 많이 심는다. 저 나무들 뒤로 모두 3층 정도의 건물들이 있다. 동네에 나무들이 많아서 길을 걷기만 해도 공원 같다.

인도는 날이 참 덥다. 3월은 이미 인도의 여름이 시작되고 있는 때. 한낮의 햇볕을 받으면서 움직이는 것은 머리카락 수분의 증발과 갈증, 타는 피부를 감수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도인들은 더운 여름에도 두빠따(스카프)를 해서 피부와 머리카락을 보호하고, 이른 아침과 늦은 저녁에는 공원에서 산책을 하거나 조깅을 하는 것으로 평상시 운동량을 보충한다.

날이 더워서 그런 걸까? 인도는 거리에 탈 것이 넘쳐난다. 사람이 끄는 자전거인력거(사이클릭샤), 오토바이삼륜차(오토릭샤), 버스와 택시, 메트로(지하철) 등. 보통 집에서 나와 버스나 지하철을 탈 수 있는 곳까지는 자전거인력거를 타고, 가까운 마켓이나 마실 나갈 때에 오토릭샤를 탄다. 좀 먼 출퇴근길이나 쇼핑몰, 아이를 데리고 외출할 때에는 택시를 부른다. 집 앞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곳 정문까지 데려다 주는 이들 덕분에 결코 10미터 이상 걷는 일이 없다. 물론 건물이 크면 그 안에서 많이 걷겠지만 말이다.

내가 탄 오토는 기사가 아들과 함께 타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면 어릴 때 오토바이를 운전하는 아버지의 옆구리를 꽉 잡고 무섭고도 신났던 기억이 난다. 이들도 그런 기억을 쌓고 있다고 생각하면 가슴이 훈훈해진다.

오토릭샤의 추억

출퇴근은 보통 오토릭샤(이하 오토)를 타는데, 우리 동네에서 학당까지 편도 요금이 50루피(약 850원)였다. 항상 퇴근할 때에는 학당 앞에 늘 대기하고 있는 오토 중에서 골라 탔는데, 자주 타다 보니 오토왈라(기사)와 안면도 트게 되었다. 학당에서 나오면 자기 오토를 타라고 서로들 ‘마담, 마담! 오토, 오토!’하고 외친다. 그 중에 하도 자주 타서 친해진 왈라는 당연히 자기 오토를 탈거라고 생각해서 늘 승리의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손짓하곤 했었다.

차를 고르고 흥정하고, 위치를 설명하는 지리한 시간을 건너뛸 수 있다는 장점과 샛노란색오토가 인도에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기에, 단골오토를 자주 이용했다.(친해진 기사가 더 비싸게 받는 다는 게 이 훈훈한 이야기의 함정이지만) 하지만 영사관에서는 매일 똑같은 시간과 경로로 움직이는 건 외국인을 목표로 하는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고는 조언하기도 한다.

한번은 주말 수업을 하러 학당에 출근하는 길이었다. 일요일이기에 아침에 다니는 오토가 좀 적었다. 이런 날은 10루피를 더 줄 생각을 해야 오토를 빨리 잡아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흥정하다가 지각하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조금 기다리니 하얀 민소매(일명 난닝구)를 입은 오토 왈라가 십대 아들을 옆에 태우고 다가왔다. 주말이니 학교에 안 간 아들을 태우고 다니는 것 같았다. 평소 50루피면 갈 길을 70루피를 달라고 한다. 그럼 60루피에 가자고 넉살 좋게 흥정을 시작했는데, 아들 보는 앞에서라 그런지 아주 단호하게 ‘오늘은 일요일이야, 마담’이라며 타든지 말든지 상관 않겠다는 뺀질뺀질한 얼굴을 내보인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졌다, 5분 흥정하느니 그냥 10루피 더 주자’ 싶어서 70루피에 오토를 탔더니 이 아저씨, 아들을 쓱 한번 바라보고 출발한다. 아니나 다를까, 아들이 아버지를 보는 눈빛에 존경이 가득 담겨 있는 것이 아닌가. 아버지의 어깨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고 그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이 함께 한 출근길 내내 이 부자의 모양새가 너무나 보기 좋았다.(내릴 때 아들한테 10루피 팁 준 건 안 비밀)

사실 인도에서 살며 낯선 인도인들을 바라볼 때에 따뜻한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느낀다기보다는 어떤 이미지가 덧입혀진 ‘인도인’으로 보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오토왈라 부자와 같은 사람들을 보고 나면 갑자기 ‘아,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이지’하며 잔뜩 긴장한 마음이 눈 녹듯 풀어진다.

인도의 여름하면, 망고지요. 망고 먹으러 인도에 다시 갈 생각까지. 왜 배낭여행자들이 겨울에 오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예요! 농담반 진담반.

학생들을 기억하며

잘 모르고, 그래서 더 낭만적인 기대도 없이 일하러 온 인도. 살면서 인도망고에 반했고, 타지마할과 황금사원에 반했고, 패브릭 천 제품들에도 반했고, 천연 화장품에도 반했다. 그러나 그것들이 내가 함께한 사람보다 더 기억이 나랴. 인도에 와서 만난 나의 친구들, 동료들, 학생들. 그들은 순간순간 나의 스승이 되어 주었다. 어려운 상황에서 “No problem!”을 외치는 마음을 이젠 조금은 이해한다 해야 할까.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을 만나고 그들이 차츰차츰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는 것 또한 나에게 큰 깨달음과 보람을 주는 일이었다. 국내의 환경보다 원어민이 귀한 외국의 상황에서 인도 학생들은 더욱 한국인 선생님들을 반기고 적극적으로 공부하고자 하였다. 한국어 수업뿐만이 아니라 사물놀이를 같이 하고, 함께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어 채널을 운영해 보기도 하고, 전 인도 한국어 말하기 대회를 준비하기도 하면서 학생들과 교류하던 시간은 나의 인도 뉴델리 시절을 아주 찬란하게 메워주고 있다.

짧다면 짧은 2년의 기간 동안 경험한 인도의 다양한 모습들을 모자란 글로나마 남기려고 해 보았지만 생각만 앞섰던 5개월이었던 것 같다. 모쪼록 다음번에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라며…

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헤어지는 것은 언제나 마음이 아프지만, ‘간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고, 만나면 헤어지게 마련이라’ 울지 않겠어요.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안녕히! 사랑하는 여러분! 

 

/사진:성서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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