뽀뽀 꾹 참기 프로젝트
뽀뽀 꾹 참기 프로젝트
뽀뽀 꾹 참기 프로젝트
2017.03.07 16:57 by 류승연

뽀뽀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야 한다.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예뻐하는 마음을 티 내지 말아야 한다. 아들의 행동 수정을 위해서다. 올 1년 우리 가정에 내려진 특명이다. 아무 때나 예뻐하지 않기! 잘 지켜져야 할 텐데….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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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학을 했다. 환경이 바뀌었다. 2학년 교실은 1학년 때 다니던 교실 바로 옆이다. 아예 다른 장소에 있는 새로운 곳으로 바뀌었으면 모를까 바로 옆 교실이라는 건 큰 난관이었다. 아들은 새 교실로 들어가지 않고 이전 교실로 들어가겠다고 떼를 부렸다. 복도에 주저앉아 힘으로 버텼고, 예전 교실 문을 열겠다고 잉잉거렸다. 보조 선생님 혼이 쏙 빠졌다. 특수반에 내려가니 특수반 선생님마저 바뀌어 있다. 그나마 보조 선생님과 공익근무요원이 그대로라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더 힘든 날이 될 뻔했다.

새로 부임한 특수반 선생님은 열의가 있는 분이다. 첫날부터 부지런히 특수반 아이들의 담임들을 일일이 찾아가 상담을 하고 협조를 구했다. 이튿날부턴 학부모 개별 상담도 시작했다. 내가 제일 먼저 호출당했다. 우리 아들이 요주의 인물 1호기 때문이다.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자 전날 아들을 보며 느낀 점을 담담히 말씀하신다. 알고 보니 요놈. 첫날 특수반에서 난리를 친 모양이다. 에휴~ 한숨이 푹푹.

01

전날 선생님이 4학년 형에게 책을 읽어주었단다. 아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뿔이 났단다. 질투심을 느낀 거다. 새로 온 선생님이 형만 챙겨준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선생님에게 매달리더니 아들의 특기인 주저앉기가 나왔다. 잠시 뒤엔 다음 단계인 드러누워 울고 불기 신공이 펼쳐졌다.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자세를 낮춘 선생님. 마침 그때 마구잡이로 버둥거리던 아들의 발이 선생님의 안경을 강타했다. 안경이 공중부양을 했다. 다음날 엄마가 호출당할 수밖에 없었다.

집에서는 어떠냐고 묻는 선생님. 생각해보니 집에서도 그렇다. 집에서는 난동을 부리지 않는다. 사실 그럴 필요가 없는 게 언제나 엄마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혀있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딸을 안고 있으면 아들은 다가와 품에 안겨있는 딸을 밀어내고 내 무릎에 자기가 올라오곤 했다.

사랑받는 것이 익숙한 아이였다. 우리 아들은. 스스로 원해서 장애아로 태어난 것이 아니기에 우리 부부는 아들이, 아들의 인생이 늘 불쌍했다.

사춘기가 되면 친구들끼리 한 집에 모여 야한 동영상을 보며 낄낄거리고, 대학생이 되면 불꽃 같은 사랑을 하며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고, 사회에 나가서는 까칠한 상사와 여우 같은 동료 때문에 속도 썩어보고. 그러면서도 나홀로 배낭여행을 하고 자신의 힘으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즐거움도 느껴보고. 그러다 결혼이라는 것도 하고 자식도 낳아보고.

자신이 원한 게 아님에도 그 모든 걸 할 수 없게 된 중증 장애인으로 사는 삶이 불쌍해서 우리 부부는 아들에게 아낌없는 사랑만 주었다. 하지만 사랑받는 것에만 익숙한 것이 집 밖에 나가 사회생활을 하는 데 문제를 일으키면 그때부턴 교정을 해야 할 나쁜 행동이 됐다. 행동수정을 할 필요가 있었다.

학교에서의 훈육만으로는 바뀌지 않을 터였다. 집과 학교의 협력이 동시에, 일관성 있게 이뤄져야 행동수정이 된다. 관심은 너만의 것이 아니다. 사랑과 관심은 타인과 나눠야 하는 것이다. 사랑을 받는 데도 기다림이 필요하다. 아들은 이런 것들을 배워야 했다.

이를 위해 나는 아들 앞에서 딸에게 더 많은 애정표현을 하기로 했다. 아들이 달려와 방해를 해도 “지금은 누나 차례야. 너는 기다려”라는 걸 인식시켜 주기로 했다.

02

특수반 선생님이 또 하나 우려하는 건 아들의 언어 문제였다. 특수반 교사로 20년 넘게 재직하며 만난 모든 장애 아동 중에 우리 아들이 가장 예후가 안 좋단다.(ㅠㅠ) 말 한마디 못하고 상호 소통이 안 되는 아이는 처음이라고.

문제는 ‘자발어’였다. “아빠” “엄마” 등의 자발어만 학령기 이전에 할 줄 알아도 천천히 말문이 트일 수 있는데 우리 아들처럼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심리적으로 말을 하려는 마음의 문을 완전히 닫아버릴 수도 있다고. 그러면 평생 말을 할 수 없게 된다고.

헉 소리가 절로 났다. 유창하진 않아도 어른이 되면 스스로의 요구사항을 말할 수는 있을 거라는 기대로 5~6년째 언어치료를 받고 있다.

아주 더디지만 조금씩 발전하고는 있었다. 전에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자기 손으로 내 손을 직접 가져가 원하는 것 위에 올려놓곤 했는데 이제는 자기 손으로 가리키려는 흉내를 가끔씩 내고 있었다. “주세요”라는 말은 못하지만 양 손바닥을 포개 앞으로 내밀 줄은 알게 되었다.

집에서도 말을 한 적이 없냐고 묻는다. 없다. 그런데 사실 있기도 하다. 이게 참 미스터리한 부분이다. 아들은 모방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5~6살쯤 내가 하는 말을 정확하게 곧바로 따라 했던 몇 번의 사건이 있었던 것이다.

산책을 나갔을 때 “우리 아들 재밌어?”라고 묻자 “아들”이라고 말했다. 내 팔을 할퀴어서 “할퀴면 안 돼”라고 했더니 “할퀴어”라고 말했다. “동환아~ 이마트 가자~”했더니 “이마트”라고 말했다. 그런 식의 경험이 몇 번 더 있다.

이렇게 곧바로 내 말을 정확하게 따라  할 때의 아들은 내가 알던 아들이 아니다. 평상시 애기 목소리가 아닌 들어본 적 없는 저음의 아주 작고 묵직한 목소리다. 낮게 읊조리듯 내 말을, 어려운 발음을 마치 되뇌이듯 정확하게 따라 하는 것이다.

처음 들을 땐 소름이 돋았다. 모르는 낯선 남자의 영이 빙의라도 된 것인가 생각했다. 놀란 마음을 누르며 “동환아, 지금 뭐라고 했어? 따라 한 거야? 다시 해봐”라며 열심히 앞서 말했던 단어를 말해도 아들은 다시 원래의 우리 아들이 되어 딴짓을 했다.

혹시 이게 그것? 사실 말을 할 줄 아는데 말을 할 필요가 없어서 심리적으로 문을 닫아버리고 말을 안 한다는 그것?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어떻게 하면 되느냐고 묻자 집에서 한 걸음씩만 더 나아가라고 한다. 물을 달라고 할 때 아이가 아무리 찡찡대도 곧바로 주지 말고 스스로 자발적인 언어적 표현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물을 주라고. 그렇게 스스로 자발적인 표현이 나오고 나서야 마음껏 예뻐해 주라고. 평소에 사랑을 듬뿍 주고 살았더니 언제나 사랑받는 게 당연하고, 말을 안 해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아이가 되어 버렸다는 얘기였다.

굳이 언어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아들의 모든 행동수정을 위해 집에서 해야 하는 일이 이것이었다. 바른 행동을 했을 때만 예뻐해 주기. 잠시 한눈을 팔 때마다 옷을 홀라당 벗어 던지는 아들. 시원하게 알몸뚱이로 노는 게 재미있어서다. 하루에 열 번도 넘게 옷을 벗고 그때마다 나는 다시 입힌다. 이것도 일이다.

03

그래서 다짐을 하게 됐다. 앞으로는 아무 때나 예뻐하지 않으리라. 보고만 있어도 눈에서 하트가 뚝뚝 떨어지지만 아무리 뽀뽀하고 싶어도 꾹 참았다가 자발적인 의사표현을 하고 바른 행동을 보일 때만 ‘보상’처럼 사랑을 주기로 했다. 그럼 아이는 ‘보상’을 받기 위해 언젠가는 자신의 행동을 바꾸려는 마음을 먹으리라.

그런 생각으로 시도해 보기를 2~3일.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사랑하는 마음 감추기가. 눈 깜짝할 새 보면 나도 모르게 아들을 껴안고 있고, 잠시 정신을 차려보면 아들한테 뽀뽀를 하고 있다. 남편도 마찬가지. 자신도 모르게 아들에게 뽀뽀를 하다 화들짝 놀라며 “안 돼! 이러면 안 돼!”를 반복하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게 뭔 잘못이겠냐만은 더 이상은 안 된다. 단호함이 필요할 때다. 거리두기에 나설 시기가 왔다. 아들을 위해서다. 올해 안에 자발어가 나오지 않으면 평생 말을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아니 된다. 단어라도 좋으니 말은 하고 살아야 한다. 그래야 장애인으로 사는 삶이 손톱만큼이라도 나아질 수 있다.

물론 10살 넘어 말문이 트인 아이들도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 안에 어떻게든 “아빠” “엄마” “밥” “물” “쉬” 등의 다섯 단어는 끌어내 보려 한다. 집과 학교에서의 공동 노력, 치료실에서의 반복학습이 한 몸처럼 어우러지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리라 믿는다. 일단 뽀뽀 꾹 참기부터 시작이다. 해 보자. 한 번!

/사진: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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