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고백: 나는 아직도 두렵다
아빠의 고백: 나는 아직도 두렵다
아빠의 고백: 나는 아직도 두렵다
2017.03.15 13:36 by 류승연

문득 궁금해졌다. 장애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서의 삶은 어떤 것일까? 맨날 보는 남편이고 아이들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나눈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고 무엇을 향해 나아가는지도 알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남편의 ‘진짜’ 속마음을 진지하게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저 일반 가정의 아빠들보다 더한 가장의 무게에 짓눌려 산다는 것 정도만 느끼고 있을 뿐이다. 나는 알고 싶었다. 장애 아이의 아빠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건지. 엄마로서의 삶과는 어떻게 또 다른지. 더 속속들이, 더 깊이. 그래서 부탁을 했다. “이번 주 ‘동네 바보 형’은 자기가 한 번 써 봐.” 이어지는 글은 아빠의 이야기다.

 

어디서부터 설명을 할까. 나를 닮아 머리가 무지하게 큰아들 녀석은 이상하리만치 발달이 늦었다. 걱정하는 우리 부부에게 양가 할머니들은 “늦는 아이들이 있다”며 안심을 시켰다. 하지만 웬걸. 머리가 무거워 발달이 늦은 줄 알았던 아들은 지적장애 2급의 장애인. 끝내 장애 확진을 받던 날 “그럼 인제 어쩌지?”란 생각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우선 슬퍼해야 했다.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면 정신이 폭발해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그 날 하루는 아내도 허락했다. 술을 진탕 마시고 들어와 곯아떨어졌다. 기억으로는 아내가 바가지를 긁지 않은, 만취 다음 날의 유일한 아침이었다.

 

눈을 떴다.

오늘부터 난 쌍둥이 아빠가 아닌 장애 아이의 아빠다.

 

나보다 훌쩍 큰 아들과 “날도 더운데 요 앞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씩 하고 갈까?”라고 하거나 “엄마랑 누나 몰래 오늘은 남자끼리만 뭉치는 거다” 등의 대화를 주고받을 일은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대신 난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아들을 위해 기저귀를 사다 날랐고, 시간이 나는 대로 아들의 등교와 치료실 순방을 위해 운전기사 노릇을 했다. 때로는 힘이 넘치는 아들을 적절히 제압하기 위한 보안관도 되었으며, 길 한가운데서 드러누운 아들에게 “어부바”라고 말하며 등을 내줘야 했다.

 

그래서 힘들었냐고? 전혀! 내 눈에는 그저 작고 예쁜 어린아이였다. 지적장애로 인해 나타나는 ‘증상’, 그 자체가 나에겐 애교로 보였다. 언제나 어린 아기만 같은 우리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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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아이가 커가면서 시작됐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키가 훌쩍 크기 시작하면서 남들과 다른 행동은 타인에게 혐오의 대상이 됐다. 그 눈빛들. 난 그 눈빛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

 

24시간 아들을 밀착 보호하는 아내는 그런 눈빛에 익숙해져 있었다. 똑같은 부모이긴 하지만 아들과 모든 일상을 함께 하지 않는 나에겐 모든 게 생경했다. 처음엔 충격이 왔고 다음엔 분노가 왔다. 가끔씩 아들이 특이행동을 보일 때마다 경멸의 눈빛으로 스쳐 지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불같은 화를 이기지 못하고 그들이 듣게, 아니 일부러 들으라고 그들을 향해 막말을 내뱉곤 했다.

 

그때마다 아내는 참으라며 옆에서 안절부절못한다. 이 정도에 그렇게 반응하면 앞으로는 어쩔 거냐고. 맞는 말이다. 그런 눈빛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마라톤 경주에서 이제 겨우 초반 5km를 달려왔을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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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난 두려웠던 것인지도 모른다. 장애 아이를 키워야만 하는 가장으로서의 두려움을 길에서 마주치는 일반인들에게 쏘아댔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나는 지금도 때때로 두렵다. 지금은 내가 두려움을 느끼지만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아들이 두려움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나를 더 두렵게 한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 날. 옆을 지나가던 2학년 형 둘이 “저 병신새끼 또 왔네”라고 했던 것. 같은 반 친구가 “바보 왔다”라고 외친 것. 그런 말들이 어떤 의미인지를 아들이 알게 될 그 시간을 마주하게 될 것이 두렵다. 분명한 건 아내가 나보다는 더 용감하다는 것이다. 개미 한 마리도 손으로 못 만지는 여자지만 엄마는 여자보다 강하다는 게 맞는 말인 것 같다.

 

내 아들이 장애인이라는 걸 받아들이고 나자 아빠로서 포기해야 할 것들도 생겨났다. 단순하게는 취미생활이라고 하는 것들을 포기했다. 외벌이로 아들의 치료비까지 감당하려면 아빠인 내가 취미생활을 할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직업적 성공을 포기했다. 내가 일하는 분야는 이직이 잦은 곳이다. 소속된 회사의 영향력이 무엇보다 강하게 작용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 바닥에서 성공을 하려면 얼마만큼의 경력이 모인 후 영향력이 큰 회사로 점프 점프를 해가야 했다.

 

이직을 결심하고 선택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나는 성공의 법칙과는 정반대로 나아갔다. 회사의 영향력보단 돈을 한 푼이라도 더 주는 곳으로 옮겨 다녔다. 나라고 왜 큰물에서 놀기 싫고 이왕이면 목에 힘주며 살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부부의 노후준비는 대비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장애인인 아들까지 평생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은 이 집의 가장인 내가 져야 할 몫이었다. 나의 최대 효용가치는 돈을 십만 원이라도 더 많이 벌어오는 것이었다. 그것이 나 자신을 포기하는 대신 가족 모두를 살리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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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만으로 7년, 장애 아이의 아빠로서 살았다. 아내가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아들의 엄마로서만 살아온 것처럼 나 역시 내 꿈을 포기하고 돈을 버는 기계로서만 살았다. 그것이 장애아인 아들과 나머지 가족을 위하는 길인 줄 알고 있었다.

 

중간 과정을 생략하고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은 아니다. 아내가 그랬듯 나도 장애 아이의 부모라는 것에 너무 얽매여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장애 아이의 아빠’로만 살아온 것이 여러 면에서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기까지 눈물 없인 들을 수 없는 장대한 스토리가 있지만 일일이 다 풀어내자면 밤을 새워도 모자라니 생략하겠다.

 

어쨌든 수많은 과정을 거쳐 불혹을 넘긴 지금에서야 다시 내 꿈을 찾기 위해 맨땅에 헤딩부터 하고 있다. 장애 아이를 키우는 것은 장기전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인생을 길게 보기로 한 후에 내린 결정이다.

 

앞으로 40년을 더 산다고 가정하고 그중에서 2~3년만 기꺼이 내 꿈을 위해 투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당장 한두 푼을 더 벌기 위한 돈을 쫓는 기계로서가 아니라,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에서 성공을 해 더 많은 경제적 부와 평안함을 우리 가족이 누리게끔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매달 들어가야 할 치료비가 있는 장애 아이의 아빠로서는 쉽게 내리기 힘든 결정이었다. 하지만 장애 아이의 아빠가 아닌 40대에 들어 인생의 갈림길에 선 중년의 남성이라면 얼마든지 도전해 볼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뛰어들었다. 장애 아이의 아빠가 아닌 그냥 배 나온 평범한 중년의 아저씨로서. 인생 2막으로의 도약을 꿈꾸며.

 

가끔은 아들이 미워질 때도 있었다. 왜 장애를 안고 세상에 나와서…. 평범한 아이였다면 네 엄마도 그렇게 잘하던 일을 계속했을 테고, 자신의 이름을 버리지 않아도 됐을 거고, 스스로의 행복을 찾아도 되는지 마는지 고민하지도 않았을 거다.

 

나 역시 아내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나눠주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몇 년쯤 앞당겨 시작해 볼 수 있었을 거다. 무엇보다 쌍둥이로 태어난 누나는 공주대접만 받으며 도도하고 귀한 아가씨로 자랄 수 있었을 거다. 이 모든 게 아들 때문에, 너 때문에 바뀌어버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족 모두의 인생을 바꿔버린 아들놈 때문에 가족 모두가 그 어디에서도 누리지 못할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는 순간이 많다.

 

“화가 복이 된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우리 아들이 그런 케이스인 것 같다. 아들 ‘때문에’ 벌어진 모든 일이 이제는 아들 ‘덕분에’로 서서히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그렇게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남들과는 달라도 나한테는 최고로 예쁘고 사랑스러운 내 새끼니까.

 /사진: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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