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진짜 최초의 파라오인가?
누가 진짜 최초의 파라오인가?
2017.03.20 18:28 by 곽민수

원전 3100년경에 탄생한 고대 이집트 문명은 이후 30세기가 넘는 기간 동안 번영하며 근동 및 지중해 전역에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위대한 문명을 일궈낸 것은 우리와 같이 실제로 살아 숨 쉬던 사람들이었죠. 새롭게 연재를 시작하는 <고대 이집트 인물열전>에선 그 위대한 문명을 가꾸어가던 이들 가운데 중요한 인물들을 만나보며 고대 이집트의 역사를 훑어보려고 합니다. 오늘 처음으로 만나보실 인물은 고대문명이 시작되던 ‘최초의 시간’에 활약하던 주인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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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세기의 역사가 마네토(Manetho)는 고대 이집트 역사를 30개의 왕조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가 사용했던 편년체계는 그 용이성 때문에 현대의 이집트학자들도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번 회에서 이야기를 나누어볼 인물이 바로 이 편년체계의 가장 앞자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마네토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의 첫 번째 왕조(초기왕조 시대 제 1왕조)는 메네스(Menes)라는 인물에 의해서 이집트가 최초로 통일되며 시작되었습니다. 메네스는 나일강 상류지역의 상(上)이집트와 나일강 하류, 그러니깐 삼각주 지역의 하(下)이집트를 통일하고 그 두 땅의 경계인 멤피스에 새롭게 통일 이집트의 수도를 건설하였다고 합니다. 현대의 이집트학에선 그 시기를 대략 기원전 31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 추정은 왕들의 재위 연수, 방사성탄소연대 측정법, 고고천문학 등 지금까지 알려진 고고학-문헌학적 자료들을 모두 짜깁기하여 얻어낸 결과입니다.

고대사나 고고학 연구는 이처럼 거의 모든 정보가 조각조각 단편적으로만 존재하기 때문에, 사실 대부분의 유력한 학설들이 거의 누더기 상태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멤피스 유적 전경. 오늘날의 멤피스에서는 이집트 문명 초기 시대의 유적들은 찾아보기 힘들고, 대부분 신왕국 시대, 그것도 주로 람세스 2세의 유적들만이 쉽게 관찰됩니다.

사실 메네스의 이름은 그가 살던 시대의 유물이나 기록을 통해서는 분명하게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왕국 시대 18왕조의 파라오인 세티(Seti) 1세가 왕위에 있던 시기의 기록인 ‘아비도스 왕명표’와 같이 후대의 기록에 종종 등장하였죠.

여기에서 ‘최초의 파라오’에 관한 학문적 논쟁이 시작되고, 그 논쟁 속에서 일부 연구자들은 ‘메네스’ 혹은 ‘메니’라는 호칭이 누군가의 이름이 아니라, 최초로 통일을 이룬 영웅적 파라오에게 붙여진 특별한 칭호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세티 1세의 신전에 기록된 아비도스 왕명표. 좌측 상단에 붉은색 상자로 표시된 부분이 메네스의 이름입니다. 신성문자로는 ‘mni’라는 발음으로 쓰여 있습니다.

메네스와 더불어 ‘최초의 파라오’로 여겨지는 후보는 두 명이 더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한 명의 이름은 ‘전갈왕(Scorpion King)’이고 다른 한 명은 나르메르(Narmer)입니다. 그런데 이들 후보들은 모두 서로 다른 인물일 수도 있지만, 또 모두 동일인일 가능성도 충분히 있습니다.

전갈왕과 나르메르에 관한 고고학적 증거는 1897년 영국인 이집트학자 제임스 퀴벨 (James Quibell, 1987-1935)에 의해서 이집트 남부의 히에라콘폴리스(Hierakonpolis)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고대에는 네켄(Nekhen)이라고 불렸던 히에라콘폴리스는 오랫동안 이집트의 최남단 경계였던 아스완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매의 머리를 하고 있으면서, 파라오의 왕권을 상징하는 ‘호루스’ 신이 수호신으로 있는 도시였죠.

매의 머리를 한 호루스 신. 제 3중간기 (기원전 1069-664년경). 청동.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퀴벨은 이곳 히에라콘폴리스의 고왕국 시대와 중왕국 시대의 신전터에서 아마도 후대인들이 무엇인가 의례와 관련된 목적을 갖고 의도적으로 매장한 초기왕조 시대의 유물들을 다량 발굴하였습니다. 아쉽게도 자세하지 않은 발굴 기록 때문에 정확한 출토 정황은 알 수 없지만,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들 가운데 몇 점은 ‘최초의 파라오’ 후보들 가운데 두 명인 전갈왕과 나르메르의 역사적 실체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유물들 가운데 하나가 ‘전갈왕의 곤봉 머리(Mace Head)’라고 불리는 유물입니다. 곤봉 머리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크기가 사람 머리만한 이 유물이 실제 곤봉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대신 이 물건은 아마도 의례용이나 기록용으로 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곤봉 머리의 한쪽 면에는 아래 사진에서 보시는 것처럼 의복을 잘 갖춰 입고 있는 파라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파라오는 상이집트를 상징하는 백색 왕관을 쓰고 괭이 모양의 도구를 손에 들고 있는데, 이것은 관개(灌漑·농사를 짓는 데에 필요한 물을 논밭에 댐)와 관련이 있는 의식을 주관하는 장면인 것 같습니다.

파라오의 바로 앞에는 일곱 개의 꽃잎이 달려있는 꽃과 전갈이 새겨져 있는데, 이 상징들은 이 왕의 이름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발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오늘날의 이집트학자들은 이 왕을 그냥 ‘전갈왕’이라 부릅니다. 이 전갈왕은 상당히 조악하고 오해의 여지가 많은 방식이기는 하지만, 유명한 프로레슬링 스타 ‘더 락’의 주연으로 출연한 2012년 작 헐리우드 B급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전갈왕의 곤봉머리. 영국 옥스포드 애쉬몰리언 박물관 소장.
영화 ‘스콜피온 킹’ 포스터 (사진:네이버 영화)

곤봉 머리의 다른 한쪽 면은 보존상태가 매우 불량하기 때문에 어떤 그림이 묘사되어 있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학자들 가운데 일부는 이 손상된 면에 하이집트의 붉은 왕관을 쓰고 있는 파라오가 그려져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만약 그러했다면 그 전갈왕은 분명히 이집트 최초의 통일과 깊은 관련이 있는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또 만약 저 상이집트 왕관을 쓰고 있는 파라오가 이 곤봉 머리에 그려진 유일한 파라오의 모습이었다면 전갈왕은 이집트가 통일되기 이전에 상이집트에 대해서만 영향을 갖고 있던, 네메스나 나르메르의 선조였을 것입니다.

이번 회는 여기서 마무리를 짓고, 또 다른 ‘최초의 파라오’ 후보인 나르메르와 그의 팔레트(이집트 역사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유물입니다.)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서 계속 이야기해 보죠.

 

/사진: 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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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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