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프롤로그: 왜 하필 ‘아이돌 전문 기자’가 되었나

 

종종 사람들이 저에게 묻습니다. “왜 연예부 기자가 된 거야?” (남이야 무슨 일을 하든 말든 자기가 웬 상관이래?) 감사하게도, 당장에 입장 바꿔 불편하게 생각해주신 분들도 있겠지만, 사실 이 질문은 제 이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꼭 던지는 질문입니다.

 

저는 원래 사회부 수습기자였습니다. 2년 정도 소위 ‘언론고시’라고 불리는 불안한 생활을 했고, 스물다섯 살에 첫 직장에 들어갔어요. 그곳에서 약 5개월 동안 수습기자 생활만 하다가 그만두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습니다.

 

경찰서, 병원 응급실, 소방서, 장례식장, 그리고 수십 년 만에 들이닥친 폭우가 쓸고 지나간 폐허의 흔적, 시위대가 버티고 있는 회사 근처 골목길, 축제 행렬, 선배가 사준 짜장면과 낚지볶음, 술에 찌든 상태로 나갔던 아침 산책, 3평 남짓했던 자취방. 이런 것들이 그 짧은 시절, 그마저도 작게 남은 단편들입니다.

 

현실의 사회부 기자는 영화와는 조금 달랐다. (출처: 영화 )
현실의 사회부 기자는 영화와는 조금 달랐다. (사진: 영화 <모비딕>, 쇼박스 제공)

 

그랬던 제가 뜬금없이 연예부 기자가 된 이유라면, 사실 ‘급해서’였습니다. 죽겠다고 하면서도 놓지 못했던 ‘언론고시’ 이력을 죄다 날리면서도 무엇이 그리 급해서 갔는지, 당시에는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명쾌하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음악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음악 잡지들은 다 폐간했고, 대중가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온라인 매체밖에 없더군요. 그래서 지원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회사 안에 있을 때보다 프리랜서 생활을 하고 있는 요즘 음악 관련 글을 훨씬 더 많이 쓴다는 점이지만요.

 

음악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음악 잡지들은 다 폐간했고, 대중가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곳이 온라인 매체밖에 없더군요.

 

 

자, 이제 두 번째 질문이 날아옵니다. “근데 왜 하필 아이돌이야?” 사실 첫 번째 질문에서 이 질문까지 올 확률은 절반 정도밖에 안 됩니다. 이유가 궁금해서 여러 방면으로 생각을 좀 해보았는데요. 질문을 하는 의도든 하지 않는 이의 의도든 두 가지 정도로 나뉘더군요. 1) 아이돌에 관심이 없거나 아이돌을 싫어한다. 2) 내가 당연히 ‘빠순이’인 줄 안다. 1)번의 경우는 “배우 △△△ 말이야, 진짜 그랬대?”라는 질문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고요. 그럼 저는 정형화된 대처를 합니다. “나는 배우 담당이 아니어서 잘 몰라.”

 

보이그룹 하이라이트 쇼케이스(출처: instagram @highlight_heart_hae)
보이그룹 하이라이트 쇼케이스(출처: instagram @highlight_heart_hae)

 

이어서 (좋게 말해) 까칠한 분들은 “너 어린 남자애들 좋아서 그거 하는 거지?”라고 묻거나, “걔네 다 만들어진 애들이잖아. 그걸 취재랍시고 하는 이유가 뭐야?”라고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죠. 전자의 경우에는 일단 대답할 가치가 없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대꾸는 해줘야 하니 뭐라고 말은 하죠.

 

다만 상대의 성별, 연령대, 직업마다 대처법이 다르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후자에게는 보통 이렇게 대꾸합니다. “너도 회사에서 하라는 일 하잖아.” 깊이와 성찰 따위 없는 답변이라고요? 맞습니다. 상대의 질문과 제 대답 안에 들어있는 수많은 함의에 대해 설명을 늘어놓자면 이 지면을 다 쓰고도 남을 테니, 그 기회는 다음 턴으로.

 

문제는 2)번(내가 당연히 ‘빠순이’인 줄 안다) 사례인데요.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성별을 달고 일을 하는 아이돌 전문 기자가 당연히 ‘빠순이’일 것이라는 추측. 기괴한 혐오 현상 중 하나인 ‘빠순이 혐오’를 떠올리면 이런 편견이 이해가 되지 않는 바는 아닙니다만, 간혹 어떤 분들은 기자도 ‘직업’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계신 것 같아요.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택하지는 않잖아요. 대체로 ‘잘하는 일’을 택하거나, 어느 순간에 운이 좋아서 합격한 직장에 들어가거나. 그도 아니면 들어가고자 하는 회사의 복지 시스템이 마음에 든다거나, 칼퇴근이 당연시되는 환경이 최고라는 생각이 들거나. 이처럼 굉장히 다양한 사례가 혼재하니 성급한 일반화는 역시 불편합니다.

 

북콘서트
지난 2월에 있었던「아이돌 메이커」 북토크 현장. 왼쪽부터 박희아 기자, 장성은 디자이너, 미묘 아이돌로지 편집장

 

종종 제가 쓰는 기사, 칼럼, 비평에 칭찬이 쏙쏙 들어가 있으면 “이 기자 얘네 팬이야?”라는 소리가 쏟아지는데,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이것은 ‘직업’입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애정이 있는 그룹의 콘텐츠를 좀 더 유심히 보고 들을 수는 있어도, 그 애정의 기반에는 이들이 보여주는 음악과 퍼포먼스에 대한 관심이 깔려 있어요. 그리고 “멋지다” 내지는 “의미 있다”고 평가할 만한 요소가 있다는 전제가 언제나 함께합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습니다. 기자로서 짚어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여러 차례 고민하고, 최대한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전달만 합니다. 해당 그룹이 지닌 매력이나 문화적 가치에 대한 최종적 판단은 기사나 비평을 읽는 독자 여러분이 내리시면 됩니다.

 

제가 연예부 생활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아이돌 전문 기자’를 택한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음악과 콘셉트가 지닌 특별한 요소들을 뛰어넘은,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사회부 기자가 되기를 꿈꿨는데, 이게 웬걸. 연예부에서 보낸 3년이란 시간 동안 더 많이 ‘사람’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 같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꿈을 꾸는 인간’에 대해서요. 아이돌이 바로 그 지점에 놓인 이들입니다. 아주 파랗고, 생생한 기운이 도는 특유의 에너지들을 지닌 ‘꿈을 꾸는 인간’들.

 

「아이돌 메이커」 북토크는 전시와 토크가 어우러진 행사였다. 앨범 속 인물은 샤이니의 종현.
「아이돌 메이커」 북토크는 전시와 토크가 어우러진 행사였다. 앨범 속 인물은 샤이니의 종현.

 

사회부 수습기자 시절에는 주로 ‘분노하는 인간’이 기존의 시스템을 얼마만큼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해 매일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정반대의 온도를 지닌 ‘꿈’과 ‘노력’이라는 단어를 매일같이 마주합니다. 극도로 평범하면서도 형이상학적인 단어. 순간순간 제가 굉장히 느슨한 인간이 된 것은 아닌지 경계하게 될 정도로 따뜻한 단어지만, 그 단어를 내뱉는 여러 쌍의 눈이 빛나는 것을 보면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연예계의 부침(浮沈)이란 섬뜩할 정도로 일순간에 반복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들은 살아있습니다. 취업준비를 하면서 저를 포함해 아주 절실한 이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꿈’이라는 단어를 두고 이토록 순수하게, 때로는 순진하게 접근하는 사람들은 흔치 않았습니다.

 

연예부에서 보낸 시간 동안 ‘사람’에 대해 고민하게 된 것 같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꿈을 꾸는 인간’에 대해서요. 아이돌이 바로 그 지점에 놓인 이들입니다.

 

 

저는 선배 기자들보다 연차도 한참 낮고, 당연히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적은 숫자의 아이돌들과 대면했습니다. 그래서 감히 이런 이야기들을 털어놓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우스울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 미숙함과 미미한 연차 덕분에 제가 이 연재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어요. 아직까지 제게는 ‘꿈’이라는 단어를 자신 있게 내뱉는 그들이 그리 철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은 않거든요.

 

선배들은 종종 말합니다. “나중에는 누가 누군지도 몰라.” 다행히 아직까지 저는 만났던 이들 중 ‘누가 누군지 모르는’ 정도에 이른 것 같지는 않습니다. 고맙게도 이들을 좀 더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넉넉한 시간이 주어졌고, 덕분에 ‘아이돌’이 아닌 ‘아이돌 산업’을 파고들며 이들과 주변인들의 삶 속에 여러 가지 이면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관찰한 세계의 이면을 10회에 걸쳐 하나씩 풀어갑니다. 예고 드리자면, 하나도 자극적이지 않을 겁니다. 재미없으면 어쩌죠.

 

/사진: 스페이스아트1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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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소개

아이돌話

한국에는 이미 수백 명에 이르는 아이돌이 있다. 전체 인구 수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 숫자이나, 사회적으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러 모로 적지 않은 상황.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들을 소비하지만, 보이지 않는 이면에는 마음 쓰이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이에 아이돌들이 성공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어떤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심리적 고통을 겪는지, 또 어떤 고민을 하는지 등 관계자들의 말과 소소함 경험을 빌어 몇 번의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필자 소개

현재는 자타칭 ‘아이돌 전문 기자’. 일간지 사회부 수습 기자로 기자 일을 시작했다. 음악이 좋아서 얼결에 연예부에 발을 담갔고, 아이돌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좋아서 거기 숨은 수많은 메시지들을 찾아 다닌다. 그리고 어쨌든, 될 수 있는 대로 성선설을 믿는 편이다.

  • 종팔

    기대된다. 아이돌과 그 팬들에 대한 편견에 지쳐 머글들과 소통하길 포기하고 우리만의 세계 안에서 벽 치고 지낸 지가 오래인데.. 그 안에서 찾은인간다운 모습에 대한 이야기라니 매우 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