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아이돌도 ‘우울증’을 겪나요?

 

# 병원에 간 A군

 

최근, 한 관계자분이 조용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A군이 병원에 간 것 같더라고요.” 예전이라면 ‘이게 무슨 소리지?’라는 생각을 했겠지만,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잘했네요. 정말로.”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여기서 ‘병원’이란 정신건강의학과를 말합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우울증, 공황장애, 불안증 등이 생겼을 때 방문하게 되는 공간이지요. 개인적으로 저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굉장히 안도했습니다. A군이 병원을 찾아서 정확한 진단을 받고, 필요하다면 약을 처방 받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일반 사람들에게는 매우 당연한 일이지만,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저런 결정을 내리려면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고민했을 겁니다.

 

실제로 아이돌 중에 적지 않은 이들이 우울증을 겪습니다. 한국인들 중 상당수가(전세계 인구의 상당수이기도 하죠.) 다양한 형태의 정신 질환을 겪는다는 보고가 있긴 합니다만, 연예인, 그중에서도 나이가 어리고 일거수일투족에 팬들이 관심을 보이는 아이돌 멤버의 경우라면 아예 ‘문제 해결’ 자체를 꿈꿀 수 없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아무리 그가 유약해진 상황에 처해있다 해도, 병원을 찾았다가 붙을 꼬리표를 먼저 걱정해야 하니까요. ‘나의 이미지가 실추되지는 않을까, 그러면 팬들이 떨어져 나갈지도 모르는데….’ 이처럼 수많은 걱정들이 자신의 건강보다 덜 중요한 다른 것들을 우선시하게 만들고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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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중에 평소에 우울해하는 친구들이 많은가요?” 다들 망설이던 중, 한 관계자 분이 입을 열었습니다. “우울증 아닌 애들 찾기가 더 어려울 거예요.”

 

# “잘 될 거예요”라고 해도 될까?

 

“이번 앨범은 진짜 잘 됐으면 좋겠어요. 더 멋지게 보이려고 외모에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몰라요.” 제가 대꾸했습니다. “음악이 좋으면, 또 열심히 하면 꼭 잘 될 거예요. 그리고 지금도 아주 잘생겼으니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아요.” 웃음기를 잃지 않은 채로 다시 B군이 답했습니다. “사람들이 계속 지켜보고 있으니까요.”

 

처음 회의실에서 대여섯 명 남짓한 아이돌 멤버들과 대면한 순간, 제게 든 생각은 하나였습니다. ‘아, 쉽겠다.’ 그도 그럴 것이, 사회부 수습기자일 때 만났던 사람들은 대체로 경기 불황에 지쳐가는 산업단지 구성원들이나, 방금 전에 일어난 사고에 대해 아무 것도 이야기 해주지 않으려는 경찰들이었거든요. 이런 경험 덕분이었을 거예요. 한동안은 산뜻한 기분으로 매 인터뷰를 마쳤습니다. 제발 한 마디만 해달라고 사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것만으로도 꽤 마음에 드는 근무 환경이었습니다.

 

하지만 B군과 만난 이후, 아이돌과의 인터뷰는 가장 어려운 작업이 되었습니다. 팀마다 처한 상황이 달랐고, 따라서 당장 컴백을 앞둔 이들에게 무조건 “잘 될 거예요!”라고 응원의 말을 건네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상처로 남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별 것 아닌 인사치레처럼 건네는 한 마디. 그러나 이것이 도리어 커다란 부담을 주거나, 정신적인 피로감을 유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죠. 저는 그날, 억지 미소를 띤 B군의 표정에서 일말의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그때부터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마냥 웃고 있는, 힘차게 구호를 외치는 저들의 눈빛에 담겨 있는 건 진짜 ‘생기’인 걸까? 과한 의심일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종종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멤버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전에는 주도적으로 인터뷰를 이어가는 몇몇 멤버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모습이었어요. 반면에 과하게 정중한 태도를 보이거나, 지나치게 명랑한 멤버들을 보면서도 ‘관찰’이란 것을 했습니다. 대학에 다니면서 한 NGO를 통해 약 2년 간 10대 청소년 상담사로 이런저런 활동을 했고, 그 당시 만난 청소년들과 비슷한 또래인 아이돌들을 보면서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거든요. 어느 정도 익숙한 면들이 보이더군요.

 

아마 절반쯤은 걱정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부끄럽게도, 호기심이었을 거예요. 왜 잘 나가는 아이돌이건, 어려운 시기를 겪고 있는 아이돌이건 간에 하나 같이 비슷한 말투를 쓰고, 비슷한 표정으로 웃고 있는 거지? 저 친구는 신나게 이야기하다가, 엘리베이터를 타자마자 크게 한숨을 쉰 것 같은데? 혹시 내가 그들의 감정에 무례한 일을 저질렀나? 온갖 생각이 들었지만, 저는 그들과 개인적으로 연을 맺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 것도 알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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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스타도 예외는 아니다. 저스틴 비버는 월드투어 중 정신적으로 부담이 되어 해외 팬미팅을 갑자기 취소하거나 슈퍼카를 몰고 새벽에 과속을 하는 등의 행동을 보였다.(사진: Debby Wong/shutter.com)

 

# 아이돌도 ‘우울증’을 겪는다

 

어느 날엔가 슬쩍 말을 꺼냈습니다. “아이돌 중에 평소에 우울해하는 친구들이 많은가요?” 다들 망설이던 중, 한 관계자 분이 입을 열었습니다.

 

“우울증 아닌 애들 찾기가 더 어려울 거예요. 물론 성격에 따라 상황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좀 다르거든요. 그래서 각자 차이는 좀 있지만, 이 직업이 원체 외로운 직업이니까요.”

 

그가 꽤 길게 덧붙였습니다.

 

“아무리 회사 스태프들이 있고, 친구들이 있다고 해도 외로울 수밖에 없어요. 특히나 인기가 떨어지는 순간부터는 주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정말 많은 변화를 겪게 되거든요. 그러니 진심을 터놓을 데가 별로 없어요. 잘 나갈 때는 주변에 사람들이 많죠. 하지만 점차 그들이 서서히 멀어지고 있다는 게 느껴지고, 일은 없어지고…. 연습할 때나 무대에 설 때는 멤버들도 있고 하니 잘 못 느끼죠. 하지만 혼자 남겨지면 어떤 생각이 들겠어요. 인기가 없는 애들은 더하고요. 어떤 선배들은 후배들에게 미리 이런 상황에 대해 조언해주기도 해요.”

 

‘가면 우울증’이란 것이 있습니다. 소아 및 청소년들이 많이 겪는 종류의 우울증입니다. 연구에 의하면, 다수의 소아청소년들은 성인에 비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인식이 늦습니다. 또 여러 가지 상황에서 비롯된 감정들과 관련해 능숙한 자각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편이고, 이에 자신이 우울하다는 것을 잘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면 우울증은 청소년기부터 20대 초반 성인에 걸쳐서 많이 나타납니다. 누가 봐도 우울증 같지 않은 그런 우울증이기 때문에, 상대와 깊게 대화를 나누거나 잘 관찰하지 않으면 쉽게 알아차리기 어려워요. 처음에는 신체적으로 어딘가 아파서 신경이 예민해진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정작 진료를 받고 보면 그게 신체 증상이 아니라 ‘신체화 증상’이었다는 걸 알게 돼요. 정신적으로 영향을 받아서 신체적인 증상화가 이루어진 거죠.” (청소년 보건교사 K 씨)

 

하지만 이미 방송이나 지면 인터뷰를 통해 다수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털어놓은 것처럼, 공통적으로 데뷔 및 성공에 대한 압박을 느끼며 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다수 아이돌은 이런 상황에 놓이더라도 자신들이 겪는 심적인 고통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여 연습에 매진하기 때문에 고통을 체감할 새가 없습니다. 때문에 훗날 이것이 자기 상실이나 정신 착란 같은 상태를 야기하면서 약물, 도박, 비정상적인 연애 패턴 등 여러 가지 불안정한 해소 수단을 추구하는 쪽으로 흘러가기도 합니다. 가수를 포기하고 마는 안타까운 경우가 생기기도 하고요.

 

하지만 우리 사이에서도 뛰어난 ‘회복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갈리는 것처럼, 아이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개인별로 세심한 관찰이 필요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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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돌이 말했습니다.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부터 커다란 공허함이 찾아와요”

 

# ‘아이돌’이니까 괜찮아요?

 

C군은 “무대에서 내려오는 순간부터 커다란 공허함이 찾아온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이돌들이 무대 위에서만큼은 최소한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렬한 환호와 강하게 내리쬐는 조명을 받는 동안만큼은, 현실에서 마주하는 온갖 고민을 잊을 수 있을 테니까요. 자신을 괴롭히는 모든 우울과 강박적인 환경으로부터, 이 직업을 선택한 자신에 대한 원망으로부터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순간인 것은 아닌지. 실제로 마이클 잭슨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을 무렵, 한 인터뷰에서 “행복하세요?”라는 질문이 나오자 그는 “한 번도 행복해본 적이 없다”고 답했다고 해요.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는군요. “공연을 하는 동안에만 비교적 해방감이 드는 것 같다.”

 

이는 성공 지향적인 기질을 지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고통이기도 하죠.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는 병원에 가든, 친구를 만나서 털어놓든 카메라나 녹음기가 따라붙지 않으니까요. 예를 들어, 내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조퇴를 했는데(혹은 간신히 연차를 냈는데) 그 모습까지 주변에서 뚫어져라 관찰하고 있는 상황이랄까요.

 

그런데 유독 아이돌이 겪는 우울증에 대해서는 쉬쉬하는 분위기입니다. 왜일까요? 이는 그들이 어리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돌만이 지닌 특유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각시켜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가 바로 아이돌의 ‘셀링 포인트’니까요. 이런 까닭에 저는 종종 아이돌을 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풀어서 “‘ideal(이상적인)’한 ‘doll(인형)’으로 여기는 것 같다”고 얘기하기도 합니다. 현실에서 매일 예쁘게 웃는 사람을 찾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고, 이에 아이돌이라는 존재에게서 끊임없이 ‘인형’처럼 웃어주기를 바라는 건 아닌가 싶을 때가 있거든요.

 

“사실 D군은 꽤 심각했어요. 팬들도 눈치 챌 정도였고요. 우울증이 있는 사람이라면 왠지 매일 틀어박혀 있을 것 같죠? 아니에요. D군은 전보다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다니더라고요. 혼자 있는 시간이 너무 무서웠고, 계속 마음 한 구석이 허전했던 거죠.”

 

관계자들이 조심스럽게 건네준 멘트에는 화려한 세계의 이면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기본적인 의식주에 제한이 가해질 때 오는 갑갑함, 정상적으로 애착 관계를 형성하기 힘든 환경이 주는 불안, 엄격한 선후배 관계에서 느끼는 두려움, 치열한 경쟁 구도 하에서 느끼는 성공에의 강박, 어제까지는 자신을 둘도 없이 아껴주던 팬들이 다른 그룹이나 멤버를 좋아하게 될지 모른다는 초조함. 여기에 개개인의 가정사까지 얽히면 더욱 다양한 사례가 나옵니다. 일례로, 심한 우울증을 앓은 한 아이돌 멤버의 경우에는 집안에서 ‘가장’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실패에 대한 두려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을 때 따라올 가난까지 모두 그의 몫이었던 거죠. 그가 스무 살을 갓 넘긴 때였다고.

 

“아이돌은 돈을 많이 버니까 괜찮아.”

“자기들이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잖아.”

 

그렇다면 돈을 못 벌고 있는 아이돌들에게는 “너희가 선택한 길”이라고 말하면 될 것이고, 크게 인기를 얻었다가 점차 하락세를 걷는 아이돌들에게는 “돈을 많이 벌었으니까 괜찮은 거 아니니?”라고 말해주면 되겠지요.

 

하지만 인간이라면, 내가 누구든, 어떤 직업을 가진 이든 간에 나의 아픔을 해결해 줄 방법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마련입니다. 하물며 이제 막 20대에 접어든, 혹은 그 언저리에서 나이를 먹어가는 아이돌들이 돈을 많이 벌고, 자신이 선택한 일이라는 점 때문에 이런 상황을 한없이 견뎌내야 하는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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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ID 하니는 심리상담사라는 꿈이 있어서 무명 시절을 버틸 수 있었다.(출처: MBC <세바퀴>)

 

종종 걸 그룹 EXID 멤버 하니가 방송에서 했던 말을 떠올리곤 합니다. “아이돌 친구들을 위한 심리 상담가가 되고 싶어요. 제가 너무 힘들었거든요.” 아이돌도 직업인이고, 그렇다면 그들을 위한 ‘정신 건강 프로그램’ 또한 필요하지 않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이 글을 쓰면서 자체적으로 인터뷰 소감을 기록해둔 종이를 몇 번 뒤적여 보았습니다. 얘기 도중에 갑자기 울음을 터뜨린 친구가 있었고, 그날 제가 느낀 당혹스러움을 기록해둔 내용이 눈에 띕니다. 그가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랍니다. 건강하게요.

 

※참고문헌

 

「정신건강과 정신분석」 이유섭 저, 무지개사
「정신분석적 진단 성격 구조의 이해」Nancy McWilliams 저, 정남운·이기련 공역, 학지사
「스타는 미쳤다」 Borwin Bandelow 저, 엄양선 역, 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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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소개

아이돌話

한국에는 이미 수백 명에 이르는 아이돌이 있다. 전체 인구 수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는 숫자이나, 사회적으로 이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여러 모로 적지 않은 상황.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편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그들을 소비하지만, 보이지 않는 이면에는 마음 쓰이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이에 아이돌들이 성공 궤도에 진입하기 위해 어떤 치열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그 과정에서 어떤 심리적 고통을 겪는지, 또 어떤 고민을 하는지 등 관계자들의 말과 소소함 경험을 빌어 몇 번의 기록을 남겨보려 한다.

필자 소개

현재는 자타칭 ‘아이돌 전문 기자’. 일간지 사회부 수습 기자로 기자 일을 시작했다. 음악이 좋아서 얼결에 연예부에 발을 담갔고, 아이돌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좋아서 거기 숨은 수많은 메시지들을 찾아 다닌다. 그리고 어쨌든, 될 수 있는 대로 성선설을 믿는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