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가둔 숫자, 우리가 갇힌 숫자
우리를 가둔 숫자, 우리가 갇힌 숫자
우리를 가둔 숫자, 우리가 갇힌 숫자
2017.05.22 13:04 by 스타트業캠퍼스

숫자와 상징, 3만 달러면 행복해질까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의 저자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프레임(frame)을 '특정한 언어와 연결되어 연상되는 사고의 체계'라고 정의한다. 프레임은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언어에 연결되어 존재하는 것으로, 우리가 듣고 말하고 생각할 때 우리 머릿속에는 늘 프레임이 작동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서 프레임은 세상을 보는 눈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 JTBC 뉴스 캡처)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만7561달러에 그쳐 선진국의 기준으로 불리는 3만 달러 선에 이르지 못했다. 2006년 2만795달러로 처음으로 2만 달러를 넘어선 이래 10년째 앞자리를 바꾸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가계의 구매력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GNI뿐만 아니라 가계총가처분소득(PGDI)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함에도 우리는 여전히 ‘N만 달러 시대’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다. 선진국의 기준이라는 ‘1인당 GNI’가 3만 달러를 넘게 되면 우리는 과연 선진국민으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될까.

이처럼 숫자는 프레임을 작동시키는 강력한 수단이다. 산업화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출 1억 달러 달성을 기념하는 무역의 날, 성인의 기준이 되는 만 19세 등 수많은 숫자의 관념을 무차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63빌딩, 최고(崔高) 랜드마크 지위를 잃다

드디어 말도 많고 탈도 많던 롯데월드타워가 개장한다. 높이 555m로 세계에서 5번째 높이이자 한반도에서는 단연 1등이다. 롯데월드타워의 개장으로 그간 우리의 인식 속에 오랜 기간 최고(最高)의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해온 63빌딩은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퇴역의 길에 접어들었다. 높은 건물이라고 하면 너무도 당연하게 63빌딩을 떠올리던 시절은 이제 종언을 고했다.

(출처: instagram ID sundaybom)

하지만 과연 그럴까. 일단 가장 기본적인 제원 비교를 해 보자. 롯데월드타워는 거의 모든 면에서 63빌딩을 2배가량의 수치로 압도한다. 심지어 두 건물 사이의 고층 건축물은 10개나 된다. 그럼에도 우리 인식 속의 63빌딩은 여전히 ‘높음’을 상징하는 건물로 자리 잡고 있다.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63빌딩이 개장한 1985년과 롯데월드타워가 완공된 2016년의 경제 규모를 비교해봤다.

85년과 비교해 GDP는 현재 약 20배 이상, GNI는 약 11배 이상 성장했다. 경제 성장과 빌딩 높이의 비례성을 감안한다면 현재 63빌딩의 낮아진 위상은 자연스러운 현상임에도 우리의 인식은 그만큼 변화하지 못했다.

조금 더 세부적인 차이를 알아보기 위해 우리는 실제 63빌딩 내 대표적 장소인 아쿠아리움을 찾았다. 90년대 초·중·고 견학의 1번지이자 주말 가족 나들이의 명소인 그곳이다.

현장에서 만난 직원 이모 씨는 “과거와 비교해 단체 관람객이 다소 줄었다”며 “찾는 이들이 조금씩 늘고 있지만 확실히 예전만큼은 아닌 듯하다”고 밝혔다.

d5

이씨에 따르면 63빌딩은 리뉴얼을 위해 지난 1년 동안의 공사를 거쳐 재개장했다. 관람객들의 국적 분포 역시 내국인보다 외국인들의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다. 또한 과거에는 연중 내내 이어지던 학생들의 견학도 최근엔 방학 기간에 편중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제 63빌딩을 찾는 이들은 가족 단위 내국인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대부분이다. 대학생을 비롯한 젊은 층의 발길은 이미 롯데월드타워 등 다른 랜드마크로 향하는 추세다.

나날이 발전하는 기술과 환경 속에 롯데월드타워 역시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다른 랜드마크로 대체될 것으로 보이지만, 과거 63빌딩이 가진 만큼의 상징성을 갖게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만큼 63빌딩이라는 타이틀 아래 축적된 역사의 깊이는 쉽게 바꿀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고, 사람의 인식이란 것 역시 단기간에 전환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d5

지구 온난화를 무시한 식목일

올해도 꽃봉우리에 초록빛이 맴돌고 계곡의 물소리가 귀를 즐겁게 간지럽히는 봄이 찾아왔다. 봄의 대표적인 행사는 단연 식목일이다. 좁게는 나무와 꽃을 심어 봄의 분위기를 고취하고 넓게는 점점 줄어드는 녹지를 조성하고 관리하는 기념일이다.

하지만 매년 4월 5일로 지정된 식목일의 일자를 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속적인 지구 온난화로 현재의 식목일은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사단법인 자연보호중앙연맹은 식목일을 지금보다 보름 이상 앞당긴 3월 15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100만 시민 서명운동까지 돌입했다.

묘목사를 운영하고 있는 나무생각의 정대환 대표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남쪽 지방에선 2월 말부터 시작해 4월 말까지 전국적으로 나무를 심는다”며 “식목일은 크게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식목일은 무려 70년 전인 1949년 대통령령에 따라 공휴일로 지정됐다. 당시와 현재의 기후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주무 관청인 산림청은 행정력과 홍보비용 낭비를 이유로 식목일 변경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현재의 식목일을 기념일로 받아들이고 지역과 기후에 따라 나무 심기를 재량껏 실시하면 된다는 설명이다.

s2

그러나 이 역시 4월 5일이라는 특정 날짜 혹은 숫자에 대한 굳어진 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내 주는 명징한 사례다. 70년이 지나는 동안의 변화를 애써 무시하고 행정력이라는 핑계를 제시하는 자체가 변화에 대응할 의지가 없음을 나타내준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학교에서 식목일이라는 기념일을 배운다. 단순한 기념일로 치부하기엔 그 안에 담긴 역사와 의미가 절대 적지 않다. 시기에 맞지 않는 식목일을 통해 나무 심기를 학습하게 될 학생들이 관념에 갇힌 어른들의 사고를 배울지 모른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내 나이가 어때서?

(출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차기 대선이 5월 9일로 예정된 가운데 정치권을 넘어 사회 전반에서 선거연령 조정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이는 현행 만 19세까지만 부여하고 있는 투표권의 연령 기준이 합당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과연 만 19세라는 기준은 어떠한 이유로 정립됐고 바뀌지 않는 것일까.

선거권 연령은 합리적인 정치적 판단 능력을 갖췄다고 간주되는 연령 기준이다. 하지만 만 18세면 군입대와 결혼, 공무원 임용 등이 모두 가능한 현실에서 과연 만 19세 미만 선거권 제한 기준이 합리적인지는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출처: SBS 뉴스)

“대학생이지만 ‘빠른년생’이라 투표를 할 수가 없어요"(최창열, 대학생)

올해로 대학생이 된 최군은 이번 대선에 투표용지를 받지 못한다. 의무는 존재하되 권리는 행사하지 못하는 점에 최군은 불만이 많다.

“노인 복지 예산은 감축되지 않지만, 청소년 예산은 팍팍 줄어드는 모습이 투표권 없는 저희들의 현실을 보여주는 모습 아닐까 싶어요”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인 황모 씨는 선거연령 하향 조정이 제도적 보완과 함께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황씨는 초등학교 때부터 선거를 배우고 자치법정까지 학습하는 요즘의 청소년들을 믿고 현실에 참여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선거권 하향 조정이 청소년들로 하여금 정치에 더 관심을 갖게 만들고 민주주의와 바른 시민의식을 함양하는 촉진제가 될 것이란 주장이다.

정치권에서도 이미 여러 차례 선거연령 하향 조정에 관한 필요성과 정당성이 논의되는 중이다.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선거연령 하향은 이미 세계적인 추세”라며 “다른 법들과 기준을 맞춰야 한다”고 밝혔다. 표 의원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선거연령이 만 19세 이상인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34개 OECD 회원국 중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32개국은 18세 이상이면 투표가 가능하고, 오스트리아는 16세 이상으로 가장 선거연령이 가장 낮다. 

바른정당 소속의 남경필 경기지사는 “제도를 먼저 개편한 후 선거연령을 낮추는 방안도 합리적이지만 언제 법을 개정하고 만 18세들이 투표할 수 있겠나“라며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무엇보다도 이처럼 합리성을 의심받는 ‘만 19세’라는 기준이 아직까지도 사회 통념으로 강하게 남아있는 것이 선거연령 하향 조정을 막는 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특정 나이를 기준으로 성인과 미성년을 분리하는 무의식 속에 청소년들을 우리 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노인은 몇 살부터?

우리나라에서 노인을 규정하는 연령은 만 65세로 설정돼 있다. 이 나이를 기준으로 각종 복지 정책이 시행되고 퇴직 정년이 설정된다. 이 때문에 우리는 만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통칭한다. 하지만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는 시점에 다다른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 만 65세라는 기준을 고수해도 될지는 의문이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2015년 654만명으로 집계된 노인 인구는 2025년 1000만명, 2065년에 1827만명까지 급격하게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노인을 부양할 생산 가능 인구는 2016년 3763만명을 기준으로 계속 감소해 2065년에는 2062만명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노인연령 기준을 상향 조정하고 그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사회 성장을 꾀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이유다.

실제로 2012년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65세 노인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59.1%의 응답자가 노인연령의 기준을 70세라고 봤다. 젊은 대학생들을 상대로 2015년 국가경영전략연구원에서 조사한 결과에서도 응답자 중 66.4%가 노인연령 기준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이와 관련해 사단법인 대한노인회 분당지회 이덕은 사무국장은 “우리 사회가 고령화 사회에 진입함에 따라 더 이상 65세 이상의 사람을 노인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며 “심지어 65세 이상의 노인들조차도 스스로를 노인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실제 ‘노인’에 해당하는 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3월 29일 오후 기자는 서울 종로에 위치한 탑골공원을 찾아 몇몇 노인들을 직접 만나봤다.

d3

“나? 70살”

어르신의 연세는 생각보다 많았다. 60대 초반으로 보였지만 대한민국 기준으로 이미 노인이었다.

“나는 아직 젊어. 일자리만 있으면 일하고 싶은데 없어서 못하는 거야!”

예상이 다시금 빗나갔다.

“노인 연령을 70세로 올리건 75세로 올리건 상관없어.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나는 아직 일을 하고 싶다는 거야. 할 수만 있다면“

진정한 복지는 일자리라는 하소연. 기자가 만난 5명의 노인들은 모두 이와 같은 주장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이 같은 실정에서 만 65세라는 임의적이고 해묵은 기준으로 설정되는 노인 복지정책이 성공을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리고 이는 진작부터 변화가 필요한 기준임에도 낡은 관념을 탈피하지 못하는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에서 기인했다는 분석도 뒤따른다.

Summary (Wrap-up)

숫자는 우리 삶에 있어 지극히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우며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가든 숫자가 있고, 숫자가 존재한다. 상대에게 설명을 하거나 이해를 돕는 도구인 동시에 함축된 상징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우린 지금까지 63빌딩이 랜드마크의 지위를 내준 것부터 온난화에 따른 식목일 변경을 위한 노력, 선거연령 조정에 관한 성찰, 그리고 노인 나이 기준의 재설정에 대해 고민해봤다.

시대 흐름을 나타내는 하나의 지표, 즉 거울이라고 할 수 있는 숫자는 그렇기에 더더욱 시대정신의 변화에 발맞춰야 하는 의무를 갖는다. 21세기 4차 산업혁명의 중심에 자리한 우리들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갈수록 도태되고 좁아지는 시야에 대한 끊임없고 지속적인 경계다. 과거의 성찰을 토대로 현재를 점검하고 다가올 미래를 내다보는 것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우리에게 숫자의 관념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그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스타트업을 꿈꾸고 준비하는 이들로서는 이미 클리쉐(Cliche)로 굳어버린 관념 속의 숫자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와 미국의 실리콘밸리 역시 이 같은 작은 차이를 간과하지 않은 데서 출발했고, 결국은 성공을 이뤘다. 이처럼 관념 속의 숫자에서 벗어나 시대의 흐름을 간파하는 클리쉐킬러가 되길 기대해본다.

/글: 권용희·박정민·서우성·장준수·정영광·황선현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자본과 인력, 인지도 부족으로 애를 먹는 스타트업에게 기업공개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단숨에 대규모 자본과 주목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 파트너와 고객은 물론, 내부 이...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현시점에서 가장 기대되는 스타트업 30개 사는 어디일까?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