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로 할 수 있는 것
토마토로 할 수 있는 것
2017.04.04 16:49 by 이민희

떨어지지 않게 토마토를 산다. 입맛 없을 땐 다른 과일과 섞어 갈아먹는다. 푸른 채소가 많을 땐 샐러드 재료로 섞어 쓰기도 하고, 여유로울 땐 한두 개 잘게 잘라 한 시간쯤 끓여 스파게티 만들고 리조또 만들고 한다. 시판용 토마토 소스 쓰는 것보다 훨씬 오래 걸리고 번거로운 데다 맛도 일정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면 공산품의 힘을 빌리지 않고 생토마토를 써서 한 그릇을 채웠다는 성취감 같은 것이 찾아온다. 그밖에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만들어봤는데, 대단할 것은 없지만 이전까지는 이런 융통성조차 없었다. 어쩌다보니 회사를 통해 토마토를 많이 쓰는 사람들을 만났고, 그러다보니 어느 순간 친숙해져 내 식단의 주요 식재료가 되었다.

나는 전 세계 음식을 토대로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에 다녔다. 현지 음식을 잘하는 외국인이 됐든 해외 음식을 잘하는 한국인이 됐든 어쨌든 다양한 요리 열정가들을 만났고, 그들의 음식을 경험한 뒤 레시피 데이터를 구축하는 동시에, 소규모로 팝업 레스토랑을 열기도 하고 쿠킹 클래스도 하고 식재료를 소분해 레시피와 함께 배송하는 상자를 제작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얻은 것은 그동안 존재조차 몰랐던 전 세계 다양한 음식이기도 하지만, 어설프게나마 몇 가지 요리를 집에서 따라해볼 수 있는 용기였다. 그 용기는 점차 발전해 생활이 됐고 나는 자주 망하지만 자주 만든다. 흔한 재료를 일단 손에 쥐는 것이 시작이었다.

토마토 활용법 - 파키스탄

 

02

 

토마토 양파 샐러드는 일에 투입된 뒤 가장 먼저 접하게 된 음식으로, 파키스탄 카라치 출신 사미나 지브란 씨를 통해 노하우를 배웠다. 간단하다. 토마토와 양파를 큐브로 썰고 레몬즙과 소금에 버무린 뒤 다진 고수를 뿌려 마무리한다. 북미에서 즐기는 멕시칸풍 살사 샐러드와 비슷하다. 고기 요리와 딱 먹기 좋은 사이드 메뉴다.

 

03

 

한편 사미나 씨를 통해 토마토 처트니(chutney)란 음식도 접했다. 처트니란 인도 일대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저장 음식으로, 망고에서부터 고수와 민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야채와 과일이 주재료가 된다. 여기에 식초나 소금 그리고 향신료를 더해 절인 뒤 병에 담아 오랜 기간 두고 먹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만드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조리법이 달라진다. 사미나 씨는 식초를 쓰지 않았고, 토마토 소스와 거의 비슷한 형태가 나올 때까지 토마토와 양파를 향신료와 함께 볶았다. 그리고 고기 요리와 함께 먹을 수 있게 준비했다. 따라서 식초와 소금을 아끼지 않은 다른 처트니에 비해 보관성은 떨어지지만 대신 보다 신선한 느낌으로 즐길 수 있다.

 

1893717267_T6i8nIV9__MG_0188

 

그밖에도 사미나 씨는 토마토를 많이 썼다. 양고기를 넣고 커리를 만들 때마다 토마토를 뭉근하게 끓여 농도를 잡고 감칠맛을 끌어올리곤 했다. 서양식 스튜와 비슷한 방식이다. 그러는 동안 그녀가 토마토를 다루는 방법에 눈길이 갔는데, 이따금씩 토마토의 껍질을 벗겨냈다. 한국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십자로 칼집을 낸 뒤 살짝 데치기 마련이지만 그녀는 한 손에 토마토를 들고 다른 한 손에 칼을 쥐고는 사과처럼 깎았다. 데쳐서 벗겨내는 것보다야 과육 손실이 많긴 하지만 어쩌면 데치는 것보다 덜 번거로운 작업이다. 싱그럽고 단단한 토마토를 만났을 때라면 더더욱 깎기 좋다.

토마토 활용법 - 중국

 

04

 

우리가 중국집에서 쉽게 접하는 한국화된 중국음식 말고, 진짜 중국 요리의 세계를 깊숙히 들여다보면 다채로운 야채 활용법을 만나게 된다. 여러 가지 조리법이 있지만 야채를 살짝 볶거나 데치는 일이 굉장히 흔한데, 토마토도 그렇게 즐기는 경우가 많다. 귀주 출신 장린샤 씨는 심지어 볶음국수 로모어빤미펀(肉沫拌米粉)을 만들 때도 토마토를 쓴다. 다진 고기를 중심으로 풋고추, 생강, 그리고 토마토를 잘게 썰어 각각 살짝 볶은 뒤 기름에 볶은 고추가루를 올려 쌀국수와 비벼 먹는 음식이다. 우리에게 비빔국수란 차가운 음식으로 인식되지만 로모어빤미펀은 온기가 느껴지는 국수다. 따뜻하게 먹지만 살짝 볶는 게 핵심인 야채, 특히 토마토와 풋고추 덕분에 어딘가 싱그러운 느낌이 있다.

 

05

 

토마토를 좀 더 익히기도 한다. 중국 대련 출신 장연 씨는 중국식 가지 볶음 홍샤오치에즈(红烧茄子)를 만들 때 파프리카와 피망 등 여러 가지 야채를 더해 색깔을 살렸는데, 그 가운데에는 토마토도 있었다. 간단하지만 꽤 맛있는 요리다. 소금을 뿌려 수분을 빼고 숨을 죽인 가지와 함께 형형색색 야채를 같이 볶은 뒤 물이나 전분물로 농도를 더한다. 야채만 볶으면 풋내가 맛을 압도할 수 있으니 중국산 조미료를 적당히 넣어 감칠맛을 살린다.

 

06

 

그런 토마토는 물에 빠지기도 한다. 지단시홍슈탕(鸡蛋西红柿汤)이라는 요리가 있다. 지단(鸡蛋)은 계란이고 시홍슈(西红柿)는 토마토다. 즉 계란과 토마토로 만드는 국물요리다. 계란 풀어 살짝 끓인 뒤 토마토, 생강, 쪽파, 그리고 약간의 조미료를 더해 빠르게 조리한다. 똑같은 재료를 써서 그만큼 후다닥 만드는 색다른 요리로 시홍스차오지단(西红杮炒鸡蛋)을 꼽을 수 있다. 일전에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중국 출신 장위안이 시범을 보인 바 있는 토마토 계란 볶음이다. 서양식 에그 스크램블과 비슷하다.

토마토, 내가 경험한 요리의 시작

 

07

 

그밖에도 토마토를 쓰는 동료들이 많았다. 토마토는 올리브와 함께 지중해 식단을 구성하는 대표적인 재료이기도 한데, 이탈리아 음식을 하는 이현승 씨는 뽈로 알라 카차토라(pollo alla cacciatora)를 선보인 바 있다. 뼈를 발라내지 않은 닭을 부위별로 잘라 양념과 함께 오래 푹 끓인다. 색깔부터 생김새까지 닭볶음탕과 비슷하지만 맛이 다르다. 양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안 맵다. 한국 사람이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쓸 때 이탈리아 사람들은 토마토를 써서 붉은빛을 낸다. 스페인 음식을 하는 신소영 씨가 소개했던 빠에야에도 토마토가 들어간다. 생쌀을 토마토 소스와 섞어 볶은 뒤에 물 대신 해물육수를 붓고 각종 해산물과 함께 밥을 짓는다.

어쨌거나 이 모든 요리들을 지켜보면서 토마토의 다양한 쓰임새를 알았다. 이 모든 이국 요리가 매번 내 밥상에 올라오진 않지만 토마토 1kg만 사도 양이 제법이라 이따금씩 비빔국수의 재료로 쓰고 탕요리에 넣고 볶음요리에 넣어보면서 아직도 잡히지 않는 요리의 감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가장 신선할 때는 그냥 먹고 물러갈 때쯤이면 스튜 상태로 만들면서 요리조리 굴려보니 대저토마토나 체리토마토처럼 조금 비싼 토마토는 그 자체로 달콤해 요리의 재료로 쓰는 것보다 생으로 먹는 것이 더 낫다는 걸 알았다. 데치고 끓이는 요리에 쓰려면 맛이 심심한 토마토일수록 좋다. 약 2년간 토마토를 계속 보고 만지면서 얻은 깨달음이다.

1년 넘게 진행해왔던 코너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어찌어찌 하다보니 2년의 회사생활이 끝났고, 이제는 회사와 연결된 전 세계의 ‘별별 음식’을 말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문득 토마토 생각이 났다. 토마토는 회사에서 만난 요리의 시작이자 이제는 집에서 더 많이 접하는 생활로 발전했을 만큼 내게 상징적인 식재료다. 여전히 토마토를 쥐고 있기 때문에 회사와 작별했어도 당분간 요리 얘기를 조금 더 할 수 있을 것 같다. 진정한 고수는 요리로 말을 대신하지만 난 아직 말로 요리하는 단계라 쓸 것이 좀 있다고 믿는다. 이제는 회사 바깥에서 발견하고 경험한 음식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자본과 인력, 인지도 부족으로 애를 먹는 스타트업에게 기업공개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단숨에 대규모 자본과 주목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 파트너와 고객은 물론, 내부 이...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현시점에서 가장 기대되는 스타트업 30개 사는 어디일까?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