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낮의 서울숲. 한적한 바깥 분위기와 달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공원 한 편에 자리 잡고 있는 레스토랑, ‘비스트로 하이브(bistro hive)’의 직원들이다. 매일 점심시간이면 주변 직장인, 아이와 함께 찾은 엄마 등 수많은 손님들이 밀려들어 정신없이 바쁘다.
“이 곳에선 ‘서영 엄마’가 아닌, 제 이름으로 불릴 수 있어서 좋아요.”
비스트로 하이브에서 일하고 있는 몽골 이주여성, 어드너(32) 씨의 말이다.
언더스탠드에비뉴 '맘스탠드'는 ‘비스트로 하이브’와 브런치 카페 ‘브리너(BRINNER)’에서의 일자리 창출을 통해 다문화 및 한부모 가정 여성을 위한 사회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한국인 남편을 따라 2009년 6월, 몽골에서 이주해 온 어드너 씨. 그녀는 ‘8살 딸과 5살 아들의 엄마’라고 밝게 웃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어드너씨가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한 건 2016년, 언더스탠드에비뉴 맘스탠드가 처음 문 열었을 때부터였다. 성동구로부터 받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다문화 여성을 위한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침 ‘이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랐으니 일을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던 차였다. 한국에 온 후 7년 동안 집에서 아이만 보던 그녀가 제2의 조국에서 첫 직업 활동을 시작한 것이다.
보건 안전, 소방 교육, 고객 서비스, 위생 교육 등 기초적인 것부터 하나하나 배워나갔다. 새로운 일을 배우며 또래 젊은이들과 함께 어울리는 것이 가장 즐겁다는 어드너 씨. 그녀는 “이 곳에서 일하기 전, 평범한 전업주부로 지냈었기에 꼭 ‘신데렐라’가 된 것 같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맘스탠드에는 몽골 말고도 중국, 베트남, 러시아, 필리핀에서 온 엄마들도 있다. 친구도 생기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이다.
첫 직장이었던 만큼, 비스트로 하이브는 그녀에게 무척 의미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어드너 씨는 ‘서영이 엄마’가 아닌, 그녀의 이름으로 불린다.
“시댁에서는 저를 ‘서영아’라고 부르기도 해요. 서영이는 제 딸의 이름이죠. 하지만 이 곳에서 일하며 제가 하나의 독립적인 주체란 걸 알게 됐어요.“(어드너 씨)
일을 시작 한 후 그녀의 하루는 크게 달라졌다. 매일 집에만 있던 예전과는 달리, 아침 10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해서 간단한 교육을 받고,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한다. 오후 3시에 퇴근을 하면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데려온다. 얼마 전에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 챙길 것이 더욱 많아졌다. 이제 학부모가 되었으니 ‘더 잘해야지, 더 신경을 써주어야지’하는 마음에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스스로를 격려한다.
무엇보다 가장 크게 변한 건 자신감이다. 정식으로 직업 교육을 받고, 일까지 하다 보니, 요리에 대한 욕심도 자연스럽게 생겼다. 요리학원을 다니며 앞으로 더욱 체계적으로 요리를 배워보고 싶다고.
“조리할 때, 팬에 기름을 두르면 불이 크게 피어오르는데, 그걸 보면 기분이 좋아져요. 깨끗이 비워져있는 접시를 볼 때면 힘이 절로 나기도 하죠.”
자신이 만든 음식을 손님들이 남기지 않고 맛있게 먹어줄 때 어드너씨는 큰 기쁨을 느낀다. 채소 손질, 설거지, 칼 다루기, 튀김 등의 과정을 차근차근 거쳐 마침내 불 요리를 하게 된 그녀는 이제 비스트로 하이브 대부분의 메뉴를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녀는 "몽골을 떠나올 당시 이상하게 별로 걱정이 되지도, 겁이 나지도 않았다"고 말한다. 푸른 꿈만 상상하며 조국을 떠나왔지만, 7년간 집에만 틀어 박혀 있다보니, ‘내가 생각했던 건 이게 아닌데…’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하지만 다문화 여성이 한국에서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미취업 상태에 있는 결혼 이민자 여성 중 85% 정도가 취업을 희망하고 있지만, 실제로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이들의 수는 많지 않다고 한다. ‘제대로 된’ 일자리의 공급이 거의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어드너씨는 "대부분 식당의 허드렛일인데다, 제대로 된 대우를 기대하기도 힘들다"면서 "언더스탠드에비뉴에서 전문 교육을 받고, 취직까지 성공한 건 무척 운이 좋은 경우"라고 한다.
다문화 여성의 취업은 ‘단순히 금전적 수입을 얻는다’는 것 이상의 의미다. 경제활동을 통해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인정받고, 지역사회에 보다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돕기 때문이다.
다문화에 대한 인식이 많이 개선됐다고는 하나, 그녀는 아직까지 한국 사람들의 색안경낀 시선을 느낄 때가 많다. 어드너씨는 "딸이 놀이터에서 새 친구를 사귀어 함께 놀고 있었는데, 아이의 엄마가 내 말투를 듣더니 안색이 안 좋아지며 황급히 아이를 데리고 줄행랑을 친 적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고국 몽골에 대한 편견도 종종 마주한다. 몽골에서 왔다고 하면 그저 넓은 초원과 사막이 전부인 미개한 국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녀가 살던 ‘울란바토르’같이 번화한 도시는 큰 건물과 자동차가 많아 실상 한국과 크게 다를 게 없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택시 기사에게 ‘몽골에도 자동차가 있냐'는 황당한 질문도 받았다.
“나중에 동생과 함께 가게를 차리고 싶어요. 몽골에서 요리사로 일하고 있는 동생은 몽골식 요리를, 저는 한국식 요리를 만드는 거죠.”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지금 직장에서의 하루하루는 그녀가 가진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다. 특히 비스트로 하이브가 세계 각국의 다양한 퓨전음식을 만드는 레스토랑이란 건 큰 도움이 된다. 어드너씨는 "다양한 국가의 새로운 조리법을 배울 때마다 신이 난다"면서 "다음 달부터 정식으로 요리학원도 알아볼 계획"이라고 했다.
/사진: 김다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