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 사회에 안녕을 고하다!
일반인 사회에 안녕을 고하다!
일반인 사회에 안녕을 고하다!
2017.04.11 17:26 by 류승연

“아아~ 아악~ 아갸갸갸갸갸갸갸~ 까르르르르르”. 기분이 좋을 때의 아들은 ‘아갸갸갸’라는 옹알이를 아주 길고도 힘 있게 쭈욱 뽑아낸다. 한 세트로 뜀뛰기도 이어진다. 깡총 깡총 깡총 깡총. 그냥 뛰지 않는다. 꼭 머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뛴다. 숨이 찰 때까지 머리를 한껏 흔들어대고 나면 다시 또 까르르르 웃는다. 마냥 신이 난 요 녀석. 공유 말마따나 “속도 없구나”. 피식.

특수반 선생님과의 세 번째 상담. 결론부터 말하면 아들을 특수학교로 전학시키기로 했다. 이유는 ‘아들을 위해서’다. 졸업은 못하더라도 4~5학년까지만이라도… 일반인들과 어울려 지낼 마지막 기회였는데…. 나는 울컥. 특수반 선생님과 실무사 선생님은 눈물이 그렁.

01

지금 학교에서 아들은 행복하지 않았다. 아이의 의욕이 없다 보니 통합교육의 의미도 찾을 수가 없었다. 1학년 때는 가능했던 ‘착석’마저 도루묵이 되어 버렸다. 교실 뒤 맨바닥에 축 처져 누워있기 일쑤라고.

지금 아들에게 필요한 건 뭘까? 더욱 철저한 통제를 통한 착석 연습? 기지도 못하는 아이에게 달리기 연습을 시키는 것과 같은 매너 교육? 뽀뽀를 꾹 참고 예뻐하는 마음을 숨겨가며 바른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엄격한 훈육?

나를 되돌아본다. 어느새 이리 조급해져 있었던가. 언제부터 난 아이의 속도보다 한참을 앞서나가는 욕심쟁이 엄마가 되어 있었던가. 내 아이의 마음 하나도 못 보고.

조급한 엄마가 혼자서 달려나가고 있을 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아들의 마음을 들여다봐준 건 특수반 선생님들이었다. 아들의 심리적인 문제에 주목했다. 심리적인 문제는 착석보다 중요한 것이었다. 심리적인 문제가 풀려야 아들의 ‘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겨나고 그래야 착석도 자발어도 가능해진다고.

2학년을 마치고 전학을 가기로 했다. 남은 기간 아들의 학교생활은 ‘행복해지기’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전학을 결정하고 지역 내 특수학교와 특수교육청에 문의를 했다. 이런. 전학 시점이 한참이나 빨라질 듯하다. 4월 말, 5월 말, 6월 말 얘기가 나온다. 여차하면 1학기 종업식도 못하고 떠날 판이다.

분명 엄마인 내 선택으로 전학을 가는 건데 쫓겨나는 듯한 이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우리 아들은 왜 이곳에서 행복하지(적응하지) 못하게 된 것일까? 장애아들만 모여 있는 곳에 가면 행복해질 수 있는 건가? 그것만이 유일한 해법인가?

03

가슴 두근대던 입학식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학교에서 지낸 모든 시간들. 결국 이렇게 일반 사회로의 진입이 실패할 거였으면 그동안 마음고생이나 하지 말 것을. 내 눈물 돌리도.

혹시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만약이라는 것 말이다. 만약 현재의 환경이 보다 호의적이었다면 아들은 전학을 가지 않아도 되었을까? 교사와 학부모, 학생들 모두 장애에 대한 이해가 넓게 형성돼 있었다면 우리 아들은 행복한 장애아로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을까?

물론 마음이 어린 아들을 동생처럼 잘 챙기고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예뻐라 하는 고마운 친구들도 많이 있었다.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태도로 행동이 느린 아들을 챙기던 아이들이다.

작년 어느 날, 하교를 기다리며 교실 안을 들여다보니 친구 몇몇이 아들을 의자에 태워서 교실 뒤를 이리 밀고 저리 밀고 다닌다. 자동차라도 탄 듯 아들은 좋아서 까르르르. 아들의 웃는 모습에 친구도 까르르르. 다 같이 모여 까르르르. 보고 있는 나도 까르르르.

내 아픔에 공감을 하고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고마운 엄마들도 있었다. 앞서 ‘배신(?)’ 비스름한 경험을 먼저 당했던 터라 마주 내민 그 손을 내가 강하게 잡지 않았을 뿐.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는 엄마들도 분명 있었다.

아이들은 부모의 태도를 그대로 따랐다. 장애 이해 교육이 사실은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에게 먼저 되어야 하고, 내가 ‘동네 바보 형’을 쓰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곳에서의 1년 2개월을 되돌아본다. 아들이 행복하지 못했던 시간보다 엄마인 내가 행복하지 못했던 시간이 더 컸다. 어느 정도였냐면 지난해 아들의 퇴학을 위한 교육부 진정 움직임을 전해 듣고는 한동안 ‘죽음’이라는 생각에서 헤어 나오기가 매우 힘들었다.

충격은 곧 분노가 됐고 그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나는 내 존재를, 목숨을 걸고 학교 전체와 맞서 싸우겠다고 다짐을 했다. 언론을 이용해 장애인 인권 문제로 사건을 키워 사회적 논란을 끌어내는 형태로 끌고 갈 계획을 세웠다. 일이 커지면 학교 측도 나서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주동자가 누구인지도 명명백백해지겠지.

그렇게 독기를 세우다가도 한순간에는 모든 걸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아들에게, 우리 가족에게 앞으로 무슨 희망이 더 있을까. 자다가도 울고, 설거지를 하다가도 울고, 세수를 하다가도 울었다. 아들을 데리고 함께 죽는 것만이 유일한 해결책 같았다.

04

마침 그즈음 아들이 탈장 수술을 하게 됐는데 수술 날 아침 나는 마음속으로 아들에게 말을 걸었다. “동환아, 그냥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해도 괜찮아. 엄마는 동환이를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하니까 이제 괜찮아. 그냥 깨어나지 않아도 돼”

사랑하는 자식이 죽기를 바라고 그런 자식과 함께 나도 죽어 없어지기를 바라는 나날들.

모든 걸 덮고 가기로 한 건 여동생의 한 마디 덕분이었다. 나는 죽어도 되니까 모든 걸 걸고 맞서 싸우겠다는 내게 여동생은 매사에 그렇게 전력을 다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전력을 다하지 않아도 돼…. 어깨에 힘을 빼도 돼…. 조금 더 편하게 살아도 돼…. 그 말에 한참을 오열하고 나서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든 것을 덮고 가기로 했다. 그렇게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나가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애초에 ‘동네 바보 형’은 장애와 관련이 없는 일반인들을 위해 쓰였다.

장애인은 미지의 세계에서 온 괴생명체가 아니라는 것. 장애아를 키우는 가정 역시 특별한 집단이 아니라 당신들과 똑같은 삶을 살고 있는 이웃이라는 것. 단지 인생이라는 큰 게임에서 ‘장애’라는 복권에 랜덤으로 먼저 당첨되었을 뿐이라는 것. 그런 것들을 우리 아들의 이야기를 통해 알리고 싶었다.

나는 ‘좋은 장애아 엄마’가 아니었기 때문에 장애아 가족들에게는 해줄 만한 얘기가 없었다. 장애인 자식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 부모들에 비하면 나는 정보, 특수교육에 관한 지식이 턱없이 부족했고 그들만큼 부지런하지도 못했다. 변명이라면 변명이랄까. 쌍둥이 독박육아, 그중 한 놈은 장애아. 아이들을 ‘생존’시키는 것만도 힘에 부쳐 끙끙댔다. 아들을 위해 내가 한 유일한 일은 그저 무한대로 사랑한 것뿐이었다.

02

하지만 이제는 한 가지 정도 장애아 엄마들에게 해 줄 얘기가 생긴 것 같다. 미취학 장애 아이를 둔 엄마들에게.

장애 아이를 일반학교에 보내려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녔던 학군 안에서 보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 아이의 상태를 알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 엄마들이 단 몇 명이라도 있으면 일반 아이들의 사회 속에 장애 아이를 편입시키기가 한결 수월하다.

나 역시 딸이 다니는 학교에 특수반이 있어 그곳에 아들을 보냈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고민을 하고 있을 터였다. 넓고 깊게 구축된 ‘아줌마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아들을 일반 아이들 속에 편입시키고 마음고생도 덜 했을 터였다.

학군 밖에 있는 일반학교. 아는 사람도 한 명 없는데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지도 않아 평소에도 얼굴을 마주할 일이 없으니 우리 아들은 언제나 이방인 신세가 됐다. 이건 매우 불리한 조건이었다. 장애아에게는 더더욱.

학교 입학을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예비 동환이들은 나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각자의 방법으로 일반인들의 사회 속으로 녹아 들어갈 방법을 잘 찾기를 바란다.

나? 나도 다시 힘을 내야겠지. 특수학교로의 전학이 세상의 끝은 아니니까. 오히려 맞춤교육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까. 일반학교에서의 마지막을 정리하며 특수학교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준비해야지. 언젠가 말했듯 난 엄마니까, 직진밖에는 할 수 없으니까.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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