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특수교사의 고백
어느 특수교사의 고백
어느 특수교사의 고백
2017.04.18 17:18 by 류승연

‘동네 바보 형’을 연재하면서 소통의 폭이 넓어지는 걸 느낀다. 비슷한 처지의 장애 아이를 둔 엄마들에게 연락이 오기도 하고, 특수교육계 관련 종사자들의 얘기도 듣게 된다. 작가를 꿈꾸는 지적장애 청년이 메일을 보내오기도 하고, 장애와 관련이 없는 일반인들의 고백도 듣게 된다.

그중 인상 깊었던 글귀 하나. 현직 특수학급 선생님이었는데 자신도 학교 내에서 언제나 저자세로 굽히고 들어간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고. 문제는 이런 의견이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개 숙인 죄인’은 엄마들의 몫이 아니었던가? 특수교사들도?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지점이었다.

궁금했던 난 아들이 다니는 학교의 특수교사에게 물었다. “선생님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으세요?” “아이고~ 말도 마세요. 우리도 이미 속이 곪을 대로 곪았어요.”

왜 부모도 아닌 그들의 속이 곪아가는 걸까? 그들도 ‘교사’라는 제도권 내의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쓴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특수교사다.

(사진:Zanariah Salam/shutterstock.com)

여러 경로를 통해 들려오는 이야기. 일반 학교 특수학급에 재직하는 선생님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단다. 언제나 미안한 마음, 죄송한 마음으로 새 학기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특수반 아이들이 배정된 일반 학급의 담임을 만나 “죄송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로 한 해의 업무를 시작한단다.

직장이라는 게 돈을 버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성취감과 자존감을 쌓기 위해 다니는 곳이기도 한데…. 상황이 이렇다면 특수교사란 직업도 참 힘들겠구나 싶다.

더 자세한 상황이 알고 싶었던 난 아들 학교의 특수반 선생님을 열심히 꼬드겼다. “특수반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고우신 얼굴을 사진으로 내보내지 않겠다는 조건 아닌 조건이 붙고 나서야 살짝 열어 보여주신다. 특수교사의 마음을.

선생님이 특수교사를 시작했던 20여 년 전만 해도 장애 아이들과의 통합수업을 완강하게 거부하는 교사들이 있었다고 한다. 하긴 90년대를 생각해 보면 당시 사회적 분위기라는 게 짐작이 간다. 당시에 일찍부터 통합교육을 시작했던 특수교사들은 일일이 학교 측에 연구결과를 들이밀며 왜 통합교육이 이뤄져야 하는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지금은 장애인 인권 법들이 쏟아지면서 더 이상 통합교육을 부인하는 교사들은 없어졌지만 그래도 일반 교사들의 마음과 가치가 통합교육에 중요한 작용을 하기 때문에 장애아 부모들이 그렇듯이 자신들도 학교 내에서 자세를 낮추는 습관이 생겼다고.

다만 통합교육은 일률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게 선생님 생각이다. 아이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적용돼야 한다고. 지금의 우리 아들처럼 통합교육이 별 의미가 없는 아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기 초 개별화회의(일반 담임, 특수교사, 학부모가 모여 갖는 3자 회의)가 중요하다.

통합교육은 장애아이나 비장애 아이 모두의 사회성을 길러준다는 의미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한다. 특히 참고 기다리고 규칙에 따르는 법. 장애 아이들은 통합교육을 통해 이런 것들을 배울 수 있기에 특수교사들은 일반 담임들에게 고개를 숙여가고, 백 번 천 번씩 반복훈련을 통해 장애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단다.

하지만 제도적 변화가 뒤따르지 않으면 통합교육의 환경은 갈수록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한다. 물론 90년대에 비하면 반으로 줄었지만 아직도 한 반의 아동 수가 너무 많은 데다 학교에서 갈수록 ‘시험’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수반 아이들을 잘 돌봐주세요”라는 부탁까지 하는 게, 일반 학급 담임들에게 너무 과중한 짐을 지우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고백한다.

(사진:Creativa Images /shutterstock.com)

특수교사로서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인가도 궁금하다. 선생님은 답변은 “매 순간!”이다. 학부모와 학교, 일반 담임 중간에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상황에 놓이면 “정말 이 직업을 갖고 있어야 하나?”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고.

순간 뜨끔하다. 학교에서 서운한 일이 있으면 특수교사에게 투정하듯이 어리광을 부리곤 했는데 앞으로 남은 시간동안은 자제, 또 자제해야지.

특히 특수반 아이들에게 작은 문제라도 발생하면 특수교사 혼자서 짊어지는 책임의 무게가 엄청나단다. 그래서 더욱 단단해지기 위해 선생님 역시 노력하는 ‘투사’가 되어가고 있다고.

물론 특수교사로서의 직업이 힘들기만 한 것은 아니다. 힘든 만큼 그 안에서 느끼는 보람도 크다. 10년 전 제자가 길에서 알아보고 “선생님~”이라고 불렀을 때의 놀람. 보통의 학생들에겐 너무도 당연한 일인 “출근하는 길”이라는 말에 터져 나오는 기쁨. “잘 자라주었구나~” 이 때 느끼는 뿌듯함은 부모만의 몫은 아니라고.

심지어 오래 전 한 제자는, 특수교육청에 직접 수소문해서까지 전화를 걸어와 “결혼을 해서 아들을 낳기까지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꼬꼬마 장애 아이가 늠름한 성인으로 자라 제 몫의 삶을 사는 모습을 볼 때, 그 순간 느끼는 보람은 특수교사들이 아니면 알지 못하는 것이리라.

앞으로의 교육 방향과 관련, 선생님은 특수학교가 다양하게 생겼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한다. 일반학교에 다니기에는 힘들고 특수학교로 가기에는 아쉬운 친구들이 있는데 이런 아이들이 즐겁게 체험하며 생활할 수 있는 학교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사진: Chinnapong /shutterstock.com)

마지막으로 선생님은 희망도 걸어본다. 요즘은 사람들의 인식도 많이 바뀌고 있으니 점점 좋아지지 않겠냐고. 결국은 모두가 함께 살아가야 할 세상이고, 누구나 행복해지기 위해 살아가고 있지 않으냐고. 선생님의 바람대로 모두가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는 그런 날이 언젠가는 오기를 소망해 본다.

아, 선생님이 앞서 당부하셨던 한 가지가 있다. 아이의 학교생활은 특수교사와 부모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기에 일반 학급 교사들의 의견도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장애 아이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특수교사와 학부모만이 사회적 약자인 것처럼 오해의 여지가 생기면 안 된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긴 초등학교 교사로 정년퇴직한 친정엄마를 통해서도 장애 아이를 맡은 일반 교사의 어려움을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있다. 친정엄마는 본인의 사랑하는 첫 손주가 ‘느린 아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제비뽑기로 장애 아이를 맡게 되자 한숨부터 쉬었던 터였다. 기회가 되는대로 일반 교사들의 속앓이도 들어보기로 마음먹는다. 그것이 우리 아들이 일반학교를 떠나기 전에 해야 할 나의 마지막 과제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성장의 상징, 상장’…스타트업들의 도전사는 계속된다

    자본과 인력, 인지도 부족으로 애를 먹는 스타트업에게 기업공개는 가장 확실한 대안이다. 단숨에 대규모 자본과 주목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래 파트너와 고객은 물론, 내부 이...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현시점에서 가장 기대되는 스타트업 30개 사는 어디일까?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