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인 게 뭐 어때서?”
"장애인인 게 뭐 어때서?”
"장애인인 게 뭐 어때서?”
2017.05.02 16:49 by 류승연

“엄마, 그러니까 지금 뽀로로가 정면대결을 하지 않아서 저렇게 된 거지?”

4~5살이면 졸업했어야 할 뽀로로를 수 천 번 반복 시청하는 남동생 때문에 의도치 않게 시리즈 전편을 달달 외우게 된 초등학교 2학년 딸래미. 어느 날인가 TV를 보다말고 ‘정면대결’에 대한 얘기를 꺼낸다.

루피가 크롱에게 주라며 뽀로로에게 케이크 한 조각을 맡기고 갔는데 루피의 케이크가 너무 맛있었던 뽀로로는 그만 크롱의 케이크를 먹어버리고 만다. 일단 사고는 쳤으니 문제는 뒷수습. 혹시나 이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뽀로로는 크롱과 루피를 못 만나게 하려고 온갖 애를 쓰지만 결국 모든 사실이 드러나고 만다.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거짓말하지 말자” 정도의 교훈을 얻었을법한 이 이야기에서 딸이 찾아낸 것은 ‘정면대결’이라는 삶의 태도였다. 그 얘기를 듣자마자 내 얼굴엔 미소가 활짝. 바로 얼마 전 남동생 문제로 진지한 대화를 나누다 ‘정면대결’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배웠는데 그 의미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찌하여 ‘정면대결’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었느냐… 딸은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없다. 치료실과 장애인 체육대회, 동생의 유치원과 학교 등에 동행하며 지적 장애, 자폐, 뇌병변 등 여러 종류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다양하게 봐온 덕이다.

딸에게 동생은 다르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 그냥 자연스러운 한 사람의 존재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러기에 친구들 모임에 엄마가 남동생을 데려와도 창피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친구들과 함께 남동생의 감시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엄마~ 동환이가 또 바지 벗으려고 해”

“이모~ 동환이가 쉬 마렵대요”

바지를 내리려 하는 건 쉬가 하고 싶다는 신호다. 나는 동네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다가 아들이 바지를 내리려 한다는 첩보를 입수하면 냅다 뛰어가 화장실로 데려갔다. 딸 뿐만 아니라 딸 친구들도 아들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기에 거리낄 것이 없었다.

01

그랬던 딸이었는데, 그랬던 나였는데, 우리를 둘러싼 상황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건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부터다.

일단 나부터. 아이들이 어릴 때는 내가 받아들여지면 내 아들도 받아들여졌는데 초등학교에선 그렇지가 않았다. 내가 받아들여지면 나만 받아들여졌다. 한 발 더 나아가 나를 받아들이고 싶어도 아들 때문에 그럴 수 없다는 고백까지 듣게 됐다.

“나는 자기가 참 좋아. 함께 하고 싶은데 자기한텐 혹이 달려 있잖아”. 장애인인 내 아들을 혹 취급하는 관계라면 내가 먼저 사양이다. 내 아들은 혹이 아니라 보물이거든.

나는 그렇다 치는데 딸에게서도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어느 날인가 키즈카페에 가서 학원 친구를 만났다. 동생을 소개하는 데 주저하는 모습을 처음으로 발견한 것이다.

“얘는 누구야?” “내 동생이야”

“그런데 왜 말을 못해?” “장애가 있어서 그래”

“몇 살인데?” “………”

몇 살이냐는 질문에 아무 대답도 못하던 딸이 나를 돌아보며 도움을 청한다.

“엄마~ 몇 살이라고 말해야 해?”

“아홉 살이잖아. 동환이는 아홉 살이야. 수인이 쌍둥이 동생이라 나이가 같아. 하지만 장애가 있어서 마음 속 나이는 아직 두 세 살이야. 그래서 아직 말을 못하는 거야.”

내가 나서서 친구에게 설명을 해 주자 그제야 딸은 안심한 듯 다른 대화를 이어 나간다. 딸이 동생을 소개하는 데 있어 주저함을 보인 건 처음이었다. 말도 못하고 행동도 이상한 동생에 대해 처음으로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02

초등학교 2학년. 딸도 머리가 커 간다. 자신은 편견 없이 동생을 받아들일지라도 모든 친구들이 그렇지는 않다는 걸 눈치채가고 있는 것이리라. 나와 내 남편이 겪고 있는 외부의 시선을 내 딸도 감내해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딸을 불렀다. 장애인의 날을 앞두고. 아마 학교에서 장애 이해 교육이 이뤄질 것이기에, 그 때 동생 때문에 속으로 수치심을 느끼거나 위축감을 느끼게 될까봐 미리 얘기를 해 두는 게 낫겠다 싶었다.

“가끔 동환이 때문에 창피할 때도 있니?”.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 길 한 가운데서 떼를 부리며 드러눕거나 할 때 조금 창피하단다. “그래. 동환이가 장애인인 게 어디 가서 자랑할 일은 아니야. 하지만 창피한 일이라고 해서 숨기고 살아야 할까?”

딸의 유치원 친구들을 예로 들었다.

“동환이에 대해 숨기지 않고 처음부터 다 얘기하고 같이 다녔더니 지금은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지? 그런데 만약 맨 처음에 동환이가 창피하다고 장애가 있는 걸 숨겼으면 어땠을까? 동환이를 할머니 집에 맡겨두고 우리만 친구들 만나러 다녔으면 어땠을까? 그러다가 길에서 친구들이 동환이를 보게 됐는데 장애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이상하다고 흉 봤을거야”.

“그래. 하지만 지금은 어때? 아무도 동환이를 흉보지 않지? 왜 그럴까? 창피하다고 숨기지 않고 처음부터 당당하게 말했기 때문이야.”

숨기고 싶거나 피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해서 숨거나 피하지 않고 정면에서 헤쳐 나가는 것. 이런 걸 정면대결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살면서 딸에게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 순간 창피하다고 용기를 안 내고 피하게 되면 나중에 더 힘들어진다는 점을 강조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세상은 바뀌지 않으니 그 세상 속에 어떤 식으로 맞설 것인가의 문제다. 정면대결이라는 건. 나 혼자 장애에 대한 편견이 없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 속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의 문제다. 정면대결이라는 건.

진지하게 듣던 딸. “맞아”라고 맞장구치더니 자기가 더 한 발 나아간다. “동생이 장애인인 게 뭐 어때서? 자기들이 장애인을 안 키워봤으니 몰라서 그런 것뿐이잖아. 이렇게 귀여운 걸. 장애인이 마음이 어려서 얼마나 귀여운데”

씩씩한 딸을 보고 있으니 안심이 된다. 그리고 얼마 뒤 뽀로로에서 정면대결의 좋은 예를 찾아낸 것을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난다. 잘 이해했구나 싶어서.

04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사람들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오픈해야 할까? 숨겨야 할까? 물론 상황마다 건 건별로 다르지만 대체적으로는 한 가지 태도를 유지한다. 완전 오픈을 하거나, 숨길 수 있을 때까지 숨기거나.

나는 전자다. 처음부터 오픈을 했다. 장애 확정을 받기 전부터 아이가 다르다는 걸 주변에 알렸다. 무슨 신념이 있어서가 아니다. 숨기면 약점이 되지만 스스로 드러내면 더 이상 약점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어서다. 한 마디로 아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오픈을 한 셈이다.

돌이켜보면 결과적으로도 이편이 나았다. 여러모로. 다행히 남편도 이 부분에 있어선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물론 오픈을 한다는 게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나에 대해, 내 아들에 대해 잘 알기도 전에 미리 선을 그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는 뭐 “잘 가시오~”하고 보내주는 게 답이다.

오픈을 한다고 해도 처음부터 마음까지 단단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꼴 저런 꼴을 격어 나가며 점점 단단해진다. 그 사이사이마다 흘려야 하는 남모를 눈물도 한 바가지다.

나와 남편이 지나왔던 길을 이제 우리 딸이 가려고 하고 있다. 초등학교 2학년. 슬슬 머리가 커가기 시작할 나이. 뭘 좀 알아가기 시작할 나이. 다행히 초반 출발은 순조롭다. 사춘기쯤에 한 번 고비가 오지 않을까 예상은 해 본다.

나도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딸이 말했듯 “장애인인 게 뭐 어때서?..” 사람들이 장애인을 키워보지 않아서 모를 뿐이다. 얼마나 귀여운지,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으쌰. 기합을 넣는다. 정면대결이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누구든.

03

/사진: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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