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몇 살로 대해야 하나요?
발달장애인, 몇 살로 대해야 하나요?
발달장애인, 몇 살로 대해야 하나요?
2017.05.09 16:52 by 류승연

동생이 몇 살이냐는 친구의 질문에 딸이 선뜻 대답을 못했던 일을 되돌아본다. 장애를 가진 동생에 대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치부해 버리기엔 뭔가 놓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다.

그래. 나이. 딸은 동생의 나이가 혼란스럽다. 몸은 아홉 살인데 정신연령은 두 세 살. 한 사람 안에 속한 두 개의 나이. 자신에겐 두 세 살 된 어린 동생인데 다른 사람들에겐 몇 살이라고 말해야 되지? 친구 앞에서 주저함을 보였던 딸의 행동에는 발달장애인의 나이를 몇 살로 봐야 하느냐의 문제가 포함돼 있다.

지적 장애만이 아닌 발달 장애 전반을 거론한 것은 자폐나 자폐 스펙트럼, 뇌병변 등 상당수의 발달장애인들이 인지적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신체 나이보다 어린 정신 연령. 사실 나조차도 혼란스럽다. 우리 아들은 아홉 살일까? 두 세 살일까?

01

특수학교로의 전학을 결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특수교육청에서 학교 재배치 통지서를 받았고, 특수학교 견학을 마쳤으며, 전학날짜는 오는 15일로 정해졌다. 특수학교 새로운 담임선생님과의 사전 면담. 아들의 특성 및 학교생활 전반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 준비물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양치 도구를 준비해야 한단다.

“준비는 해서 보낼 건데 양치질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어요….”

아들은 아직까지 누워서 양치질을 한다. 내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내 다리 위에 아들 머리를 뉘인 뒤 치카치카를 한다. 앉거나 서서 양치질을 하려고 하면 막무가내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게다가 아직 뱉는 법도 몰라 어린이용 치약은 사용 못하고 신생아들이 쓰는 ‘먹어도 되는 치약’으로 양치질을 시킨다.

담임선생님이 우려를 나타낸다. 누워서 양치질을 하는 건 어린 아기들이나 하는 거라고. 비록 아이의 인지는 낮다 해도 실제로는 아홉 살이라고. 생활연령은 인지보다 높기 때문에 부모가 그에 걸 맞는 대우를 해줘야 한다고. 언제까지나 아기 취급하면 아이는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른으로 자라게 된다고.

맞는 말이다. 의심의 여지없이 맞는 말이다. 익히 알고 있던 내용이기도 하다. 나 또한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숱하게 했었으니까. 그런데 이게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현실에선 영 적용하기가 힘들다. 아무리 아홉 살이라는 최면을 걸고 아들을 바라봐도 하는 짓이 영락없는 두 세 살 어린 아기라 곧 무장해제가 되고 마는 것이다.

02

아들은 두 개의 나이를 갖고 있다. 먼저 누구나 알고 있듯 신체 나이는 아홉 살이다. 그것도 키가 큰 초등학교 2학년. 134cm로 쌍둥이 누나보다 10cm 이상이나 크다.

다음으로 정신연령. 인지면에서는 아직 두 돌이 채 안 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 초 실시했던 심리검사에서도 비슷한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두 돌이 뭐야! 어떤 부분에선 아직 돌도 안 지난 것 같다.

그런데 잠깐. 여기서 생활연령이라는 개념이 나온다. 사전적 의미로는 출생 시부터 경과해 온 달력에 의한 연령을 말한다. 즉, 만으로 몇 세 몇 개월을 말하는 것 같다. 아들 같은 경우는 아홉 살이지만 만으로 7세 8개월이다.

하지만 아들의 실제 생활연령은 7세 8개월보다 낮고 두 세 살 어린 아기보다는 높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두 돌 된 조카들과 한 공간에서 비교해보니 아들의 인지는 조카들의 발 밑에도 미치지 못한다. 같은 상황에서 같은 말을 해도 아들 혼자만 못 알아듣고 딴 짓을 한다. 하지만 조카들이 할 수 없는 일을 아들은 할 수가 있다. 큰 키와 힘 센 팔을 이용해 잠겨 있는 창문을 열 수 있다. 상도 펼 수 있다.

두 돌짜리 조카들이 시시때때로 울며 토라지고 떼를 쓸 때도 아들은 점잖게 제 할 일을 한다. 마치 속으로 ‘아직도 떼를 쓰니? 어린 아기들 같으니라고’라는 말을 하는 것 같다. 물론 아들도 한 번 떼를 쓰면 지독하게 쓰지만 아들이 난리가 나는 상황은 몇 가지로 정해져 있는 편이다.

이렇듯 아들의 나이가 두 개, 아니 세 개다 보니 딸은 물론 나조차도 아들을 몇 살로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가 많다. 우리 가족은 아들을 정신연령에 맞춰 대하고 있다. 딸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아들이 변기에 앉아 힘을 주면 온 가족이 들고 일어나 칭찬세례를 퍼붓는다. 어쩌다 벗은 옷을 빨래바구니 속에 갖다 놓기라도 하면 “아이고~ 이 놈이 사람 노릇 하네~”라며 잔치 분위기가 이어진다.

모두가 아기 취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종종 “동환이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낮은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곤 한다.

03

나도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아들이 지적장애 확진을 처음 받았을 때만 해도 대한민국 최초의 지적장애인 출신 서울대 박사로 키우겠다는 말도 안 되는 목표를 세웠으니까.

앞서 자폐 아이를 키운 선배가 한 말이 있다. 유치원 때는 장애 1등급이었는데 엄마의 노력으로 초등학교 6학년 땐 전교 학생회장까지 한 아이가 주변에 있단다. 그 얘길 듣고 나도 욕심을 부렸다.

“1등급 장애인이 6년 후에 전교 학생회장을 할 수 있으면 2등급 장애인인 우리 아들은 15년 후에 서울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을 것이다. 박사학위까지 뒷바라지해서 훗날 지적장애인 출신 서울대 박사로 노벨상까지 따게 만들어야지.”

당시만 해도 장애를 엄마의 노력에 의해 고쳐지는 병쯤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게다. 장애는 ‘완치되는 병’이 아니라 평생 지니고 살아야 하는 ‘하나의 특성’일 뿐인데 말이다. 어느 순간부터 이런 현실을 깨닫고 이런 일 저런 일을 겪어 나가며 아들에 대한 욕심을 하나씩 내려놓게 되었다. 아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현실 기반 위에서 해야 할 일을 찾고 목표도 세웠다. 그런데 내려놔도 너무 내려놨나 보다. 이번엔 너무 아기 취급하고 있는 걸 발견한다. 언제나 그렇듯 중용이 가장 어렵다.

몇 살로 대해야 하느냐는 건 중요한 문제다. 그에 따라 아이에게 행하는 교육법이 달라진다. 무엇보다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기대치가 달라진다. 제 나이에 걸 맞는 대접을 하게 되면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스스로 한 일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에게 지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접근하게 되면 아이의 속도가 따라가지 못하는데 부모가 혼자 앞서 나가게 될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 아이는 과부하에 걸리고 결국 부모도 아이도 지쳐 모두가 불행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인지적 연령에 맞춰 작은 행동에도 그저 반가운 마음으로 지내다보니 발달 측면에서 큰 발전이랄 게 없다. 어려운 문제다. 부모를 처음 해보는 입장이라 어렵고, 장애 아이의 부모는 더더욱 처음이라 더 어렵다.

가끔 장애아 엄마들이 아이에 대해 설명을 할 때 ‘아픈 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곤 한다. “우리 아이가 아파서…”. 지금 다니고 있는 일반학교에서의 장애 이해 교육도 ‘아프다’는 관점에서 행해졌는지 친구들이 아들에게 보낸 짧은 편지엔 너나 할 것 없이 “나는 너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어”라는 말이 쓰였다.

나는 ‘아픈 아이’라는 말에 조용히 반대 표를 던지는 바이다. 우리 아들은 아픈 병에 걸린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신체가 아픈 것도 아니고, 마음이 아픈 것도 아니다. 그저 생각 회로가 남들과 같은 속도로 돌아가지 않을 뿐이다. 어딘가가 아픈 병자가 아니라 느리게 커 나가는 마음이 어린 사람일 뿐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 아들은 몇 살일까? 아홉 살일까? 두 세 살일까? 아니면 아홉 살 보단 낮고 두 세 살보단 높은 중간쯤의 어떤 나이일까? 나는 이 아이를 몇 살로 대해야 할까? 참 어려운 문제다.

/사진: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1년 사이 가장 주목할만한 초기 스타트업을 꼽는 '혁신의숲 어워즈'가 17일 대장정을 시작했다. 어워즈의 1차 후보 스타트업 30개 사를 전격 공개한 것. ‘혁신의숲 어워즈’...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서로 경쟁하지 않을 때 더욱 경쟁력이 높아지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