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발달 순이 아니잖아요!
행복은 발달 순이 아니잖아요!
행복은 발달 순이 아니잖아요!
2017.05.16 15:57 by 류승연

특수학교 입학 첫 날. 마음이 아리다. 울어대는 젖먹이를 어린이집에 억지로 떼어놓고 회사에 출근하는 워킹맘의 심정이 이럴까?

아들이 입학한 특수학교는 언어치료와 놀이치료를 받고 있는 복지관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아침부터 학교가 아닌 복지관 가는 방향으로 가는 차를 타니 어리둥절한 아들. 도착하니 분위기를 살피려는지 일단 차에서 안 내리고 버틴다. 어찌어찌 겨우 내리게 하니 복지관 입구가 아닌 저번에 한 번 견학 가 본 특수학교 쪽으로 재빠르게 도망을 친다.

“그래그래. 바로 그 쪽이야.”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아들의 손을 잡고 특수학교로 뛰어간다. 들어갈 때까지만 해도 기분 좋았던 아들. 복도를 지나 교실 문 앞에 멈춰 서자 뭔가 잘못됐다는 걸 느낀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자고 하자 안 가겠다고 버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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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상황 파악이 되기 전의 아들을 달래서 교실 안에 들어서자 갑자기 얼굴 가득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엄마 손을 꼭 붙든다. 낯선 이곳에 엄마도 같이 들어오란다. 나를 붙드는 아들의 손에 필사적인 힘이 가해진다.

“안 돼. 동환아. 엄마는 가야 해. 잘 하고 와”. 선생님들께 인사를 하고 나오려 하자 “우왕~”그러며 결국 울음보가 터진다. ‘나는 누구? 여기는 어디? 당신들은 누구? 엄마! 어디 가! 날 버리고 가는 거야?’

아마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우리 아들의 속마음일 게다. 날 따라 뛰쳐나오려는 아들을 담임선생님이 온 몸으로 막아내며 외친다. “어서 가세요. 어머니”.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다. 복도 가득 퍼지는 아들의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도망치듯 달려 나오는데 마음이 쓰리다.

“다 너를 위해서야. 동환이가 네가 행복해지기 위해서야”라고 스스로를 설득하듯 되뇐다. 특수학교로 전학하면 아들이 전보다 행복해지는 거 맞겠지? 맞죠?

지난 주 일반학교로의 마지막 등교 날. 특수학급 엄마들과 커피를 마시며 얘기를 나눴다. 각각 4학년과 6학년인 자폐와 뇌병변 아이의 엄마들은 친구문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친구가 뭔가요? 먹는 건가요?”라는 단계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을 지나 고학년이 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이들이 친구를 찾게 된다는 게 엄마들의 얘기였다.

일반학교에서 친구를 만들어 준다는 건 불가능하진 않지만 힘든 일이었다. 이들의 관계는 친구라기 보단 돌보미와 대상자의 관계쯤 된다. 마음이 착한 비장애 아이들이 장애를 가진 같은 반 친구를 동생처럼, 귀여운 애완동물처럼 아끼고 보살펴주는 것이다.

아들도 마지막 날 친구들의 편지를 한 아름 받았다. 편지에는 어서 빨리 병이 나아 말을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응원이 한 가득 실렸다. 고마운 아이들. 편지는 내가 잘 간직하고 있다가 10년쯤 지나서 동환이가 복잡한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을 때 꼭 읽어주도록 할게.

유난히 아들을 잘 챙겼던 두 꼬마 신사가 있었다. 두 녀석에게는 작은 메모를 써 붙인 선물을 따로 했다. 손을 꼭 잡으며 그동안 고마웠다고 인사하니 매우 쑥스러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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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렇게 아들을 위해주는 고마운 친구들이지만 그들에게 아들이 진정한 의미의 친구는 아니다. 그보단 귀여워하는 존재, 돌봐주고 싶은 존재다. 딱지치기를 할 때 함께 하자고 부르고 역할놀이를 할 때 끼어주고 싶은 친구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특수학교에 가면 친구를 사귈 수 있다. 비슷한 정신연령을 갖고 비슷한 행동 양상을 보이는 동등한 관계의 친구들이 포진해 있다. 물론 신체나이에 비해 정신연령이 어린만큼 이들이 서로 사회적인 관계를 맺고 친구 사이로 발전하기까진 시간이 걸리겠지만 어쨌든 이들은 동등한 관계에서 각자의 역할을 하며 친구관계란 것을 맺을 수 있게 된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아주 단순한 질문.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사는 것. 그것이 행복의 제 1순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돈은 많은데 가족끼리 불화하는 사람보다 작은 집에 살아도 가정이 화목한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느끼듯이, 고 스펙을 자랑하지만 동료들과 삐걱대는 사람보다 작은 회사에 다녀도 동료들과 잘 어우러지는 사람이 더 행복하다고 느끼듯이, 개인을 둘러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개인의 행복 여부를 결정한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특수학교에 전학간 아들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행복한 장애인으로 커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아직 어떤 식으로 교육이 이뤄지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은 있다. 바뀐 교과과정에 따라 장애 아이들의 특수교육도 일반 아이들의 교육과정에 맞춰 국어, 수학, 통합, 창체 등의 과목을 공부한다는 점이다.

왜 특수학교의 교과내용이 일반 아이들을 따라갈까? 장애 아이 교육의 근본 목표가 일반인 사회에 편입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지만 글쎄… 나는 의문이 든다.

어차피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는 학교라는 사회 안에서 장애 아이들을 흡수한다. 교육목표가 ‘일반인 사회로의 편입’이 되어야 하는 건 맞는데, 이를 위한 방법론은 철저하게 특수교육에 근거한 독자적 절차를 따라야 하지 않을까? 교육부 관계자들의 생각은 다른 건가?

초등학교 2학년 딸이 국어 시간에 시를 배우고 수학시간에 식의 변환을 배우고 있을 때 장애인은 아들은 노래를 통한 발화연습을 하고, 자리를 정돈하는 법, 혼자서 밥을 골고루 먹는 법, 친구와 함께 노는 법 등 사회성 기술을 익히는 게 낫지 않을까?

사회 안의 개인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인지가 높을수록 유리하긴 하다. 하지만 인지는 조금 낮더라도 평온한 성격을 갖고 스스럼없이 남과 어울리는 행복한 장애인으로 키우고자 하면 안 되는 걸까? 특수교육의 목표가 그렇게 맞춰지길 바라면 나는 아이의 발달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 나쁜 엄마가 되어 버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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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쩌면 우리 장애아 부모들은 자식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비장애인 자식을 대할 때보다 더한 교육적 성취를 강요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비장애인 자식이 다니는 학원 개수보다 장애인 자식이 다니는 치료실 개수가 더 많기 일쑤다. 비장애인 자식들은 집에 와서 책을 읽든 놀이를 하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여가시간을 존중해 주지만 장애인 자식들은 집에 와서도 ‘교육’의 연속이다.

숟가락으로 퍼 먹던 밥을 어쩌다 손가락으로 집어 먹으려 하면 따끔히 일침. 엄마가 동화책 읽어주는 시간에 드러누워 딴 짓이라도 하면 또 따끔히 일침. 어제는 알았던 한글 단어를 오늘은 까먹고 모르겠다고 하면 또 따끔히 일침.

비장애인 자식이 TV를 보는 건 휴식의 차원이라 용인하지만 장애인 자식이 TV를 보면 ‘팝콘 브레인’이 될까봐 전전긍긍하며 못 보게 한다.

물론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다. 비장애인 자식이야 학원을 보내는 게 더 뛰어난 사람을 만들기 위해서지만, 장애인 자식은 치료에 열을 올리고 혹독한 교육을 시키는 게 남들과 조금이라도 같아지게 하기 위해서니까 말이다.

하지만 말이다. 나는 인지가 조금 더 높아진 대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고 자란 장애인보다 비록 발달은 더 느려도 마음이 행복한 장애인으로 내 아들이 컸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드시 모든 장애인이 경증이 되어야만 하는 건 아니다. 경증의 장애인만 받아들일 수 있고 중증의 장애인은 배척당한다면 그건 사회의 문제이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분명 사회 복지도, 사람들의 인식도, 아주 조금씩이지만 어쨌든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하고는 있으니까 엄마인 나는 아들의 인지를 높이기 위해 혹한 교육을 몰아치는 것보다 평안한 마음을 지닌 행복한 장애인이 되는 걸 목표로 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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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특수학교 둘째 날인 오늘, 아들은 어제보다 더 행복해 보인다. 교실에 들어갈 때 떼를 쓰지도 않고 엄마와 인사를 하는데도 따라 나오지 않는다. 예쁜 담임선생님 옆에 찰싹 붙어서 어서 가라는 듯 엄마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다. 짜식. 벌써부터 여자 외모 보는 눈은 있어서는. 누가 아빠 아들 아니랄까봐.

아직은 내 아이가 어려서 현실을 모르고 꿈을 꾸는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비참한 현실의 벽 앞에 무릎 꿇기 전까진 일단 행복해지는 데 초점을 맞추련다. 비장애인에게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면, 장애인에게 행복은 발달 순이 아닐 게다. 아직은 그리 믿는다. 난.

/사진: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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