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사연: 일탈
일곱 번째 사연: 일탈
2017.05.18 17:12 by 오휘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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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시끄러운 음악이 흐르고 있는 곳에서
어쩌면 포근한 이불 속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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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일탈이라는 말은 그 단어를 듣거나 보거나, 말하는 것만으로도 정말 신이 나요, 저는 일탈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사실, 일탈이라는 게 별건가요? 그냥 일상에서 벗어나 보는 일이잖아요. 사실 저는 뭐랄까, 성격이 참 즉흥적인 것 같아요. 매일매일 반복되는 삶을 너무 지겨워해요. 싫증을 잘 내는 편이랄까. 똑같은 일을 하는 것도 너무 지겹고 재미없어요. 물론 꼭 필요한 건 하지만. 똑같은 패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면 왠지, 조금은 불쌍한 기분이 들기도 해요.

그래서 저는 늘 제 감정에 충실하려고 해요. 한번 사는 건데, 이 감정이라는 것에 충실하며 살아보고 싶은 거예요. 그렇게 안 하면 언젠가 크게 후회하게 될 것 같아요.

제 일탈은 그래요. 대학교를 오래 다니지는 못했지만, 제가 학교생활을 할 때 저희 과는 건물 지하에 있었어요. 그런데 날씨가 너무너무 좋은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끝내주도록 날씨가 좋은 날에 4시, 5시까지 그 지하에 갇혀 있는 건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럴 때면 학생들끼리 자체적으로 휴강을 하고 놀러 갔어요. 술도 마시고, 게임방도 가고, 조금은 죄송하지만, 교수님 이름 부르면서 펀치 기계도 엄청 하고. 마냥 걸어 다니기도 했어요.

때로는 선배들이 기를 잡는 게 너무 싫어서 반항심에 분홍색으로 머리를 염색한 적도 있었어요. 저는 그 머리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또 한 번은 여름이 유난히 덥게 느껴지는 이유가 왠지 머리 때문인 것 같아서 그냥 투블럭으로 밀어보기도 했어요.

빨간색의 무언가가 필요하면 매니큐어를 발랐고 새벽에 산책하고 싶으면 산책을 했어요. 밤에 기타를 치고 싶으면 기타를 칩니다. 오늘 아무런 것도 하기 싫으면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이불 속에 누워있기만 해요. 밤을 새우고 싶으면 밤을 새우고 아침 하늘이 보고 싶으면 커피를 마시면서 아침 하늘을 기다리죠. 그렇게 아침의 새소리를 들으며 잠에 들면, 정말 그때만큼 단잠을 이룰 때도 없어요.

우울해지고 싶으면 나를 나락으로 끌어내리는 노래들을 한없이 들으며 우울감에 잠겨요. 외로운 사람이 되고 싶으면 혼자 쓸쓸한 마음으로 거리를 걸어보기도 하고,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싶으면 술을 실컷 마시고 시끄러운 음악이 흐르는 곳에 가기도 해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춤추고 땀을 흘리면 기분이 정말 좋아져요, 모든 고민이 사라지는 순간이에요.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참지 못하고 피어싱을 했어요, 너무 예뻐서 만족스러웠어요. 또는 마음에 드는 문장으로 타투도 해보고, 과감한 옷도 입어보고…….

그런데 생각해보니, 사실 일탈이라는 것, 별거 없는 것 같아요. 일상 속에서 다 찾을 수 있는 것들인데. 그냥 말로만 일상 탈출, 일탈이라고 부르는 거죠. 그래서 그냥 입 밖으로 '일탈'이라고 소리 내는 순간, 그냥 그 발음만으로도 기분 좋아지게 한다고 할까요? 설명하기 어렵네요. 그러니까 정말 사실 아무것도 아닌데, 의미부여를 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그 의미부여가 정말 커다란 힘이 되어주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제게 말해요, 그렇게 막 사는 게 너무 신기하다고요. 친구들도 그 외의 지인들도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너무 흥미롭고 재미있대요. 어떻게 그렇게 막 사냐면서. 사실 모두가 할 수 있는 것들인데.

어쩌면 일탈은 정말 높아만 보이는 벽일 뿐인 건데, 사실은 정말 약해서 부딪치면 부서지는 벽인 건데, 다들 지레 겁을 먹고 건드려보지도 않더라고요. 그냥 하면 되는데! 저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조금 더 대담해지면 좋겠어요. 일탈은 그 의미 자체로 힘이 되니까요.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고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는 것도 어쩌면 작은 일탈이 될 수 있는 것처럼요. 모두가 일탈을 즐김으로써 삶의 여유가 생기기 시작하면 참 좋을 텐데!

어쨌든, 그렇습니다. 일탈은 행복 그 자체! 하는 순간만큼은 너무너무 행복한 것! 저는 그렇게 일탈을 정의하고 싶어요. 편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답장 기다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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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걷는 서울 어느 길 위에서 보내는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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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편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단지 글만 읽었을 뿐인데. 읽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만 같은 글이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사전을 찾아봤습니다. 일탈, ‘정하여진 영역 또는 본디의 목적이나 길, 사상, 규범, 조직 따위로부터 빠져 벗어남’이 일탈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라고 하네요. 어쩌면 일탈이라는 것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는 제 행동 자체도 어떤 하나의 고정적인 틀 안에 제가 여전히 묶여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혼자 얼마간을 작게 웃었습니다. 저는 아직 제대로 된 일탈을 하려면 먼 걸까요?

저는 어쩌면 줄곧 수동적인 마음가짐으로 살아온 사람입니다. 외동아들로 태어나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사람과 함께한 시간보다 책이나 집의 돌담 같은 사물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것, 섭섭한 것을 토로하는 것에 익숙해지지 못한 채로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충분한 연습의 시간이 없이 어른이 되어버린 거죠, 불안했습니다.

학교에서 요구하는 것, 직장에서 요구하는 것들에 성실히 임했습니다. 당연하다는 듯 내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원하는 것을 줬습니다. 나는 내가 꼭 그래야만 하는 거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계속해서 물을 담아낼 수 있는 컵은 없듯, 나의 억눌러온 본심들도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수단이 바로 글이었던 것 같아요. 글을 쓰는 행위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었습니다. 글 속에 만든 가상의 인물들이 되어 내가 하지 못했던 말과 행동을 맘껏 했습니다. 그러면 한결 마음이 후련해졌습니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며, ‘고작 글 쓰는 게 일탈이라고? 그것참 재미없는 일탈이군.’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스무 살 스물한 살 당시 제 나름의 가장 최선의 일탈은 바로 글쓰기였던 것 같습니다.

서른에 가까워지고 있는 오늘날, 나는 그 글쓰기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 책을 몇 권쯤 낸 작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글쓰기를 일탈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일탈보다는 일상에 가까워져버린 거예요.

대신 요즘은 내가 지금보다 조금은 더 아름다웠을 때, 그러니까 청소년기를 거쳐 갓 어른이 됐을 때 하지 못했던 일들을 조금씩 해가며 다시 나름의 일탈을 즐기고 있습니다. 광화문의 서점에 홀로 가서 제가 만든 책을 쓰다듬으면, 나는 이제야 비로소 혼자만의 힘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어른이 됨을 느낍니다. 서점을 나서서는 종종 경복궁의 돌담길을 걷곤 합니다.

돌담길의 주변으로는 시끌벅적 견학을 하러 온 학생들,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 연인들처럼 온갖 사람들이 있고, 저는 홀로 그 길을 씩씩하게 걷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엔 특별해 보이지 않겠지만, 저는 그렇게 홀로 걷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에너지를 충전 받는 기분을 느낍니다. 광화문의 서쪽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서촌이 나옵니다. 나는 서촌의 카페나 주점에 홀로 들어가, 커피를 한잔하거나 맥주를 홀짝거리는 것을 즐깁니다. 커피콩과 그것을 볶는 정도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진다는 것을 코와 입으로 공부하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 카페의 커피 맛의 차이를 나름대로 연구해보는 것이 좋습니다. 술집에 혼자 들어가기 전의 두려움이 즐겁습니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얻어낸 술 한 잔이 참 맛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나만의 방법으로 일탈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말해놓고 나니 참 볼품없고, 밋밋하고 재미없는 것 같지만, 말씀하셨잖아요.

“오늘의 일을 내일로 미루고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는 것도, 어쩌면 작은 일탈.”

편지를 보내주신 분과 제 일탈의 내용은 다소 다를 수도 있지만, 위의 말씀에 있어서는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같은 일탈을 즐기고 있는 거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제 일탈을 하면서 여유를 찾고, 행복감을 느끼고 있으니까요.

언젠가 제 일탈이 다시 일상 쪽에 더 가까워지고 따분해질 때쯤, 당신이 알려준 일탈의 방법들 중 하나를 따라 해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해봅니다. 또는 언젠가 정말 따분한 날에, 우리가 일탈처럼 마주치기를 바라보기도 합니다. 분명 즐거울 겁니다. 편지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나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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