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참 안전인’
영웅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참 안전인’
영웅은 가까이에 있습니다, ‘참 안전인’
2017.05.19 13:39 by 최현빈

“빗물이 순식간에 목 언저리까지 차올랐어요. 바로 앞에선 사람이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었어요.”

박춘식(48·울산)씨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습니다. 차근차근 상황을 떠올리는 박씨의 얼굴에선 여전히 당시의 급박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난 10월, 남부지방은 태풍 ‘차바’로 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특히 울산은 시간당 124mm가 넘는 폭우가 내렸는데요. 인근 태화강이 함께 범람하면서 주변 지역이 모두 침수되는 물난리를 겪었습니다. 당시 축협(울산시 중구 유곡지점)에서 근무하고 있던 박씨는 물에 떠내려가는 승용차 운전자를 직접 헤엄쳐 구하는 용기를 보였습니다. 그로부터 약 반년 후, 박씨를 다시 만날 수 있었습니다. 희망브리지와 국민안전처가 함께 마련한 ‘참 안전인 시상식’에서 말입니다.

지난 4월 말 열린 참 안전인 시상식에서 박춘식씨가 송필호 전국재해구호협회장의 축하를 받고 있다.

지난 4월 26일, 정부서울청사(서울 종로구)에서 열린 ‘참 안전인 시상식’은 재난안전 현장에서 투철한 희생정신을 바탕으로 국민의 생명을 보호한 용감한 국민으로서 사회의 귀감이 되는 재난영웅을 발굴·시상하는 무대로, 벌써 6회째를 맞고 있습니다.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 송필호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이뤄진 이번 시상식에선 총 4명의 재난 영웅들이 수상의 영예를 안았습니다. 지자체와 언론기관, 국민 추천으로 정한 후보자를, 공적심의위원회가 최종 평가하여 선정한 것이죠.

앞서 소개한 박춘식씨와 함께 지난 10월, 서울 오패산터널에서 벌어진 총격사건 용의자를 검거하는 데 도움을 준 김장현(45)·이동영(34)씨, 그리고 위급한 화재현장에서 주민들을 대피시키다 고인이 된 양명승(당시 60세)씨가 그 주인공입니다. 수상자들에겐 상패와 기념메달, 상금 100만원이 전달됐습니다.

(왼쪽부터)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과 수상자 이동영씨와 고 양명승씨(배우자 대리 수상), 김장현씨, 박춘식씨, 송필호 전국재해구호협회장

목까지 물이 차오르는 상황

침착함이 가장 중요합니다

태풍 ‘차바’ 때 울산은 폭우로 태화강이 범람하며 가장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사진: 연합뉴스)

지난해 10월 5일, 박춘식씨는 날씨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습니다. 폭우가 내리면서 건물 1층에 물이 차오르기 시작한 것인데요. 침수를 직감한 박씨는 직원들을 급히 2층으로 대피시킵니다. 모든 직원의 안전을 확인한 박씨는 다시 1층으로 내려왔습니다. 감전으로 인한 2차 사고에 대비해 누전차단기를 내리기 위해서였죠. 인근 태화강이 범람하면서 불어난 물은 어느새 가슴팍까지 차올랐습니다. 전기를 차단한 박씨는 2층으로 올라가려는 찰나, 급류에 떠내려가는 승용차 한 대를 발견합니다.

“설마 안에 사람이 있을까 싶었어요. 유리창이 옅었던 게 천만다행이었죠.”

천천히 떠가는 승용차. 유리창 안으로 어렴풋이 운전자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박씨를 알아본 운전자가 “사람 살려!”라고 외쳤습니다. 나오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수압으로 인해 문이 잠긴 것으로 보였지요. 박씨는 침착하게 사무실로 뛰어 올라가 대걸레 자루를 들고 내려왔습니다.

승용차 앞까지 헤엄쳐 간 박씨는 문을 열어보려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허사였죠. 급속히 차오로는 물과 더욱 당황하는 운전자. 운전자를 차에서 꺼낼 방법을 고민하던 박씨는 차가 앞쪽으로 살짝 기울어진 것을 포착하고 뒷문 쪽으로 향했습니다. 간발의 차이로 뒷문을 살짝 연 박씨는 운전자에게 대걸레를 내밀어 잡도록 한 후 급류를 빠져나오는 데 성공합니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도 인명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상황. 박씨는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침착함을 유지한 것이 가장 중요했다”고 말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함부로 구하려 해선 안 된다’는 말을 잘 지킨 셈이지요. 박씨는 “그때 운전자분을 요새도 마주치곤 하는데 그때마다 정말 고맙다는 이야기를 듣는다”고 했습니다.

총성이 울리는 위기상황

힘을 준 것은 ‘용기’입니다

같은 해 10월 19일엔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습니다. 서울 강북구 오패산터널에서 한 남성이 경찰관과 시민에게 사제총기를 난사한 것인데요. 김장현씨와 이동영씨는 인근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자리가 무르익어가던 중, 바로 앞에서 ‘빵!’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지만, 잇달아 나는 굉음에 본능적으로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고 합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간 현장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경찰관이 쓰러진 채 피를 흘리고 있었고, 피의자로 보이는 남자는 달아나고 있었지요. 김씨는 곧바로 다른 경찰과 함께 피의자를 쫓아갔고, 이씨는 쓰러진 경찰관에게 심폐소생술을 시작했습니다.

YTN 뉴스 보도 화면. 갑작스러운 총격사건에 수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빠졌습니다.

김씨는 풀숲에 숨어있는 피의자를 발견, 곧바로 달려들어 제압했습니다. 상대가 총기를 소지한 상태였지만 김씨는 “두렵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막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회상했습니다.

한편, 이씨는 계속해서 경찰관에게 심폐소생술을 실시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안 되어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이후 사건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김씨와 이씨도 조명을 받았지만 둘의 마음은 편치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그때 조금만 더 일찍 나왔으면 그 경찰관을 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며 먹먹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웃을 위한 희생,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지난 3월 18일엔 서울시 노원구에 위치한 한 아파트에서 화재사고가 있었습니다. 지하 기계실에서 화재가 발생해 온 아파트에 연기가 퍼진 것인데요. 전기가 끊어지고 엘리베이터도 작동하지 않는 위급한 상황에서 주민을 살린 건 한 명의 경비원이었습니다. 당시 화재를 빠르게 알아챈 양명승씨는 계단을 오르내리며 주민들에게 화재를 알렸습니다. 모든 주민들은 안전하게 대피했지만, 양씨는 안타깝게도 계단에서 심장마비로 목숨을 잃고 말았지요.

고 양명승씨의 배우자 최현순씨가 당시의 심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웃을 구하다 고인이 된 양명승씨. 배우자 최현순씨는 양씨에 대해 “항상 주변을 돌보며, 이웃을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기억합니다. 최씨는 이어 “말수가 많은 사람은 아니었는데 정말 많은 주민들이 남편을 추모하기 위해 다녀갔다”고 말했습니다. 가슴이 더욱 먹먹해지는 순간이었지요.

용기를 내어 이웃의 생명을 살린 ‘참 안전인’. 이들은 하나같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오래된 전설 속 주인공을 일컫는 단어인 ‘영웅’. 어쩌면 영웅은 엄청난 힘으로 인류를 구하는 이들이 아닌, 우리 주변의 이런 이웃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필자소개
최현빈

파란 하늘과 양지바른 골목을 좋아하는 더퍼스트 ‘에디터 ROBIN’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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