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긴 대로 살겠습니다
생긴 대로 살겠습니다
2017.05.19 15:45 by 지혜

윤여림 쓰고, 이유정 그린 ‘서로를 보다’

김장성 쓰고, 오현경 그린 ‘민들레는 민들레’

또 며칠을 앓아누웠다.

어머니 말씀대로 아직 젊은 것이 만날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다.

타고 나길 허약한 몸이기도 하지만 아이를 낳은 후에 눈에 띄게 체력이 떨어졌다. 출산은 아이와 더불어 면역력까지 세상으로 밀어내는 일인가 싶다. 오한이 나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누워 있다가, 누워있는 몸을 향해 혀를 끌끌 찬다. 다들 저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는 만날 왜 이럴까.

사주를 본 적이 있다. 세 번. 그저 그랬다. 7, 8년 전 홍대역 앞 천막 안에서 본 사주가 마지막이다. 앞으로 사주를 볼 일은 없을 것이다. 궁금하거나 답답한 일을 생전 처음 만난 사람에게 묻기가 싫어졌고, 나의 사주를 풀이한 세 분의 충고와 조언이 거의 비슷해서 더 이상 별다른 흥미가 생기지 않는다. 무엇보다 약간의 기대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좋은 점은 하나도 없는 사주라 기분 나쁘다.

사주에 따르면 나는 나무인데, 아름드리 커다란 나무가 아니라 가느다란 꽃나무이다. 꽃 한 송이라도 활짝 피우면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을 텐데 나무를 키울 물과 볕이 부족하다. 그러니 몸도 마음도 약할 것이고 성공운도 재산운도 거의 없다고 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사주를 풀이해준 아저씨는 지나치게 솔직했다. 내가 묻는 말마다 다 안 된다고, 하지 말라고 했다. 부디 남편을 잘 만나야 한다는 자존심 상하는 충고도 이때 들었던가.

(사진:Ori Artiste/shutterstock.com)

삶을 대하는 올바른 방식은 오직 노력이라 믿었던 스물 몇 살이었다. 사주 따위야 이쪽 귀로 듣고 저쪽 귀로 흘려보내고 그럴듯한 삶을 살려면 해야 할 일들을 했다. 배낭을 메고 장시간 비행을 거쳐 한 달이 넘는 여행을 하거나 창밖 이국적인 풍경을 감상하며 영어를 배웠다. 넓고 훌륭한 인맥을 쌓아야 하니, 사람들과 두루두루 잘 지낼 수 있는 활발하고 유순한 성격을 연습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어딘가에 도착해서 저녁 늦게까지 공부를 하거나 일을 했고 더 나은 자리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했다. 유행하는 프랜차이즈 맛집에서 찍은 사진처럼, 남들과 비슷한 사진들을 청춘의 증거로 남기고 나는 장렬히 앓아누웠다.

그럴듯한 삶의 조건들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동안, 내 몸에서는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났다. 힘들다고 털어놓으면, 자기 관리를 하라는 조언이나 다들 정신력으로 버티는 거라는 충고를 들었다. 모두 달리는 그 길에서 나는 매번 뒤처졌다.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들을 앞서 선두에 서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아저씨의 솔직한 말들이 떠올랐다. 나는 정말 아무것도 못하는 약한 가지의 꽃나무일까.

 

 

생긴 대로 살지 못한다면,

<서로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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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생명들은 저마다 타고난 삶과 삶의 방식이 있다. 치타는 바람처럼 초원을 달리고 올빼미는 달처럼 어둠 사이를 가르며 프레리도그는 함께 집을 짓고 지킨다. ‘생긴 대로’ 사는 그들의 몸짓은 저마다의 기운으로 생생하다. 그 뒤로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이 뒤따라 나온다. 안전하고 배부른, 그럴듯한 공간이지만 그곳에서 스스로의 생김새는 잊혀진 지 오래다. 표정조차 사라진 그들의 무기력한 몸짓은 어쩌면 우리의 모습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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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긴 대로’ 살아 본 적이 있던가.

사주처럼, 나는 정말 약한 가지의 꽃나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타고난 내가 아니라 질문이었다. 스스로의 생김새에 대한 어떤 고민도 없이, 비슷한 질문을 했고 비슷한 답을 구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그럴듯한 학벌에 직업과 직장, 넉넉한 돈으로 살 수 있는 집과 차, 그리고 세상과 사람들의 인정을 향해 열심히 달려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달리는 몸들은 모두 다른데.

이제는 다른 길로 걸어보고 싶다. 내 몸에 알맞은 방향과 속도대로, 생긴 대로.

가깝고 조용한 곳에서 느긋하게 쉬는 여행을 할 것이다. 활발하고 유순한 성격이 아니지만 익숙한 몇 사람들과 나누는 친밀한 대화에는 문제없으니 괜찮다. 아침은 게으르게 열고 밤은 부지런하게 닫겠다. 운동으로 몸을 가꾸는데 좀 더 힘을 쏟을 것이다. 훌륭한 엄마 대신 충분한 엄마가 되겠다.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표를 두지 않겠다. 돈 대신 시간을 넉넉히 벌어 마음껏 즐길 것이다. 그렇게 나답게, 아프지 않겠다.

 

 

생긴 대로 살겠다는 다짐,

<민들레는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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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표지를 열면 가장 먼저 보이는 면에 서로 다른 얼굴들이 보인다. 우리는 이렇게 다르니까, 너는 너대로 살면 된다는 우렁찬 응원을 듣는듯해서 기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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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는 셀 수 없이 많은 꽃이 있지만 민들레는 민들레이다. 싹이 트고 잎이 나도, 꽃이 피고 꽃이 져도, 여기서도 저기서도, 혼자여도 둘이어도 민들레는 민들레답다.

  

‘생긴 대로’ 살겠다고 호기롭게 다짐하지만 분명, 그럴듯한 삶이 부러울 때가 오겠지. 부러움이 앞서면 질투도 따라오고 그러다 보면 초라한 생김새를 자책하기도 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나만의 주문을 외우며 다시 씩씩하게 걷겠다. 자, 민들레는 민들레!

  Information

<서로를 보다> 글: 윤여림 | 그림: 이유정 | 출판사: 낮은산 | 발행: 2012.10.10 | 가격: 12,000원

<민들레는 민들레> 글: 김장성 | 그림: 오현경 | 출판사: 이야기꽃 | 발행: 2014.04.28 | 가격: 10,000원

 

/사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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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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