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예술의 경계에 서다, N1 2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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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예술의 경계에 서다, N1 2LL
2017.05.25 17:29 by 김다영

‘N1 2LL’ 매장에 들어서니 동화 속 선녀님이 다루고 있을 법한 나무 베틀과 어쩐지 무섭게 생긴 니팅머신 여러 대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낯선 겉모습과는 달리, 의외로 우리 일상에 가까운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도구들이다.

N1 2LL 정현진(34‧왼쪽), 임주연(33) 대표

정현진(34)·임주연(33) 대표가 이끄는 N1 2LL은 머신니팅(machine knitting)과 핸드위빙(hand weaving) 제품을 직접 제작·판매하며 수업도 진행하는 수작업 스튜디오다. 다소 독특한 브랜드 이름은 두 사람이 처음 인연을 맺게 된 런던의 우편번호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라고. 런던에서 디자인 리서치를 전공한 정 대표는 핸드위빙을, 니트웨어를 공부한 임 대표는 머신니팅 작업을 맡아 하고 있다.

실로 그리는 그림, 핸드위빙

직물을 짜는 방식은 크게 니팅과 위빙으로 나눌 수 있는데, 니트가 아닌 제품은 대부분 위빙 방식으로 제작된다. 니팅이 실을 'w' 모양으로 짜 나가는 것이라면, 위빙은 씨실(가로 실)과 날실(세로 실)을 수직으로 교차하여 ‘#’과 같은 형태를 띠도록 한다. 청바지, 셔츠, 침대 시트와 같이 천을 잘랐을 때 수직으로 여러 가닥의 실이 나오는 소재라고 생각하면 된다.

정현진 대표가 사용하는 직조기(왼쪽)와 작업 모습

핸드위빙은 가로·세로 실이 교차되는 방식에 따라 여러 종류로 나뉜다. 그 중에서도 정 대표가 다루는 것은 타피스트리(tapestry)와 테이블 룸(table loom·탁상베틀). 타피스트리는 실을 하나하나 들어 올려야하기 때문에 손이 더 많이 가지만, 회화적인 표현이 가능하다. 테이블 룸은 실을 한꺼번에 들어 올리는 방식으로 작업 속도가 빠르고 규칙적인 무늬를 표현하기에 좋다.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개념들. 하지만 유럽에서는 실용적으로 쓰이며 인기가 좋다. 대표적인 타피스트리의 하나인 카페트 문화가 일찍부터 발달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N1 2LL을 처음 론칭한 2015년경에는 국내에 타피스트리를 다루는 이들이 거의 없었지만, 지금은 동네마다 공방이 하나씩 있을 정도로 알려지고 있는 추세다. 보기와 달리 타피스트리의 기본원리는 어렵지 않아서 초보자도 취미로 삼기에 알맞다.

“단순한 동작의 반복이기 때문에 집중과 몰입하기에 좋아요. 클래스에 참여하시는 분들은 잡념이 사라지진다며 좋아하시죠,”(웃음) (정현진 대표)

N1 2LL의 벽걸이 타피스트리 위빙

직물을 다루는 작업 중, 특히 타피스트리는 예술과 일상의 가운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쿠션, 카펫, 코스터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타피스트리 위빙’이라고 하면 장식을 목적으로 벽에 걸어두는 소품을 칭하기 때문이다.

정 대표는 실제로 ‘디자이너냐, 아티스트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그럴 때마다 정 대표는 둘의 경계에 서 있다고 대답하곤 한다, 직접 사용하는 물건을 제작한다는 의미에서는 일상에 가까운 디자이너, 본인의 생각과 느낌을 녹여낸 작품이라는 의미에서는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뚝딱뚝딱 만드는 니트, 머신니팅

일반적으로 ‘니트’라고 하면 스웨터나 목도리 같은 재질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는 사실 하나의 실이 여러 개의 고리로 연결되어 짜이는 모든 직물을 통칭한다. 쉽게 이해하자면 올이 하나 풀리면 주르륵 코가 나가버리는 소재. 스타킹이나 면 티셔츠, 양말 등도 촘촘하게 짜인 니트의 한 종류다.

머신니팅은 편직기(실로 뜨개질한 것처럼 짜는 기계)를 이용해 니트 소재의 직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핸드니팅(뜨개질)에 비해 시간과 품이 덜 들고, 일률적인 퀄리티를 유지할 수 있어 실용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많은 분들이 진입 장벽이 낮다는 이유로 핸드니팅에 관심을 가지곤 해요. 하지만 머신니팅은 얇은 실까지 사용할 수 있어 실용적인 패션에 접목시키기에는 더 용이해요.”(임주연 대표)

임주연 대표의 편직기(왼쪽)와 니팅 작업을 하고 모습

그는 특히 원피스, 조끼, 에코백, 목도리 등 일상에서 자주 착용할 수 있는 니팅 작업을 선호한다. 패션디자인·니트웨어를 공부하며 니트는 ‘몸’에서 흐르고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임 대표는 의류뿐만이 아니라 실생활과 밀접하게 맞닿아있다는 머신니팅의 특성을 살려 쿠션, 테이블 매트 등 각종 라이프스타일 소품도 제작하고 있다.

만약 원하는 제품이 있다면 재료와 디자인을 정해 주문제작을 할 수도 있고, 클래스를 통해 직접 만들어볼 수도 있다. 스스로가 참여할 수 있는 맞춤제작이라는 장점 덕에 N1 2LL의 머신니팅 클래스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수강생들이 많이 찾는다.

제품의 특성에 따라 상이하지만, 정 대표가 긴팔 스웨터를 만드는 데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이틀 정도. 다만 결과물이 한 번에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더 오래 걸리는 경우가 많다. 샘플 작업을 통해 세탁 시 원단이 줄어드는 비율을 계산하고, 피팅을 계속 하면서 만들어야하기 때문이다. 초보자의 경우, 인테리어 소품을 만드는 초급 과정을 수료한 후 간단한 원피스나 조끼 만들기에 도전할 수 있다.

머신니팅을 이용해 제작한 옷과 소품

머신니팅의 장단점에는 서로 맞닿는 지점이 있다. 바로 작업자의 숙련도와 제품 퀄리티가 높아질수록 결과물이 기성품과 닮아간다는 것. 임 대표는 “그렇기 때문에 작품에 개성과 색깔을 입히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며 “재료, 색 조합, 디자인 등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고 말했다.

개성은 살리고 힘은 합치고

이와 같이 핸드위빙과 머신니팅은 실을 이용해 면을 만들어낸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직조 방식이나 결과물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 밖에도 작업에 있어 스타일이나 취향 등 다른 점이 많은 두 사람은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며 함께 나아가고 있다.

“각자 독립적으로 작업하다보니, N1 2LL은 ‘공간 쉐어’라는 느낌이 강해요. 앞으로 저희와 함께 나아갈 작업자들을 더 모으고 싶어요. 사람이 많아지면 더욱 다채로운 색을 낼 수 있으니까요.”(정현진 대표)

클래스 정보는 블로그(http://blog.naver.com/n12ll)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혼자 조용히 집중해서 진행하는 이들 작업 특성상, 외부와의 교류가 많지 않다. 때문에 클래스를 운영하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두 사람에게는 큰 즐거움이다. 수강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기분을 환기시키고, 때로는 영감을 얻기도 한다.

특히 핸드위빙이나 머신니팅은 대중이 쉽게 접할 수 없어 생소하게 느껴지는 분야인데, 이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오는 이들은 배움에 있어 매우 적극적이다. 작업실이 연남동에 위치했을 때에는 인천, 동탄, 경기도 광주에서 매주 오는 수강생이 있었을 정도라고.

“클래스를 통해 흔치 않은 취미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한 분이라도 더 생긴다는 것이 좋아요. 독특한 분야다보니 오시는 분들과 성향이 잘 맞는 경우도 많죠.”(임주연 대표)

언더스탠드에비뉴 N1 2LL 매장

N1 2LL은 원래 폐쇄적인 작업실 형태로 운영되어왔지만, 얼마 전 서울숲에 위치한 언더스탠드에비뉴에 입주했다. 이제 고객의 피드백을 바로바로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기쁘다고. 또 지금까지 제품 판매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는데, 이번 기회를 통해 앞으로 둘의 비중이 균형을 이루길 바라고 있다. N1 2LL 제품은 오프라인 언더스탠드에비뉴, 온라인 네이버 스토어팜에서 구입할 수 있다.

/사진: N1 2LL 제공, 김다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