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에 신고할 거예요.
교육청에 신고할 거예요.
2017.06.07 17:00 by 시골교사

“너, 지금 뭐라고 했니? 다시 한번 말해봐. 그래, 신고할 테면 해!”

담임을 맡으면서 빚어낸 사고였다.

복직 후, 주어진 업무는 중학교 2학년 2학기 담임이었다. 선생님들도 웬만하면 피해가고 싶어 하는 중학교 2학년 담임, 거기다 2학기에! 중학생이라는 시기는 한바탕 몰아치는 회오리바람처럼 본인은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까지 정신없게 만든다. 몸과 마음의 성장 속도가 함께 가지 않으니 본인은 본인대로 힘들고, 지켜보는 사람들은 그 모습을 참고 기다려 주어야 할 뿐이다. 게다가 곧 닥칠 결정, 즉 특목고 내지는 자사고와 일반고, 그리고 실업계와 인문계를 놓고 내려야 할 결정이 아이들을 더 힘들게 한다. 주변에서 거는 기대가 클수록 아이들이 떠안아야 할 부담은 더하고 말이다.

거기다 중학교 과정의 수업내용과 방법은 초등학교와는 많이 다르다. 양이 많아지는 데다 내용에 깊이가 생긴다. 수업 방법 역시 초등학교에 비해 학생 참여형 수업이 적은 편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일부 학생들 가운데 공부에 대한 흥미를 잃는 학생도 생기고,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왕왕 발생한다.

아이들도 힘들지만 그런 아이들을 대하는 교사 역시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아이들은 자기 말만 하며 본인이 원하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온종일 묻고 또 묻는다. 또, 도덕적이지 않은 말과 행동에 대한 인지도가 낮아 교사지도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방금 쓰레기를 버리고도, 욕을 그 자리에서 내뱉고도, 자기가 무슨 말과 행동을 했는지 모르고 잘 인정하지도 않는다. 도움이 필요하면서도 도와주면 간섭이라 생각한다. 감정표현이 격하고 기복이 심하고, 아주 작은 실수로 크게 상심하거나, 다른 사람의 눈에 띄고 싶어 과장된 행동을 한다. 때론 또래의 시선이나 평판에 목숨을 걸기도 한다.

(사진: shutterstock.com/Rawpixel.com)

물론 이런 시기는 어느 시대든 존재했고 다들 겪어온 과정이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정도가 심하고 조절 역시 쉽지 않다는 점이 예전과 다르다. 그 이유를 굳이 꼽자면 가정교육의 부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산업화가 일궈낸 핵가족화와 여성 교육수준의 향상, 학력지상주의와 지나친 사교육으로 인한 무한경쟁 교육 등으로 가정이 본래의 고유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그 변화에 적응하고자 부모와 자녀 간에 대화할 시간과 여유가 양쪽 모두에게 이젠 없다.

밥상머리 교육은 사라진 지 오래이다. 가족이 한 상에 둘러앉을 기회조차 적다. 온 가족이 모두 각자의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밤늦도록 학원과 과외로 움직이고, 부모는 부모대로 주어진 업무와 과외비를 벌기 위해 밤늦게 귀가한다. 아이들은 학교가 파하고 학원 시간에 쫓겨 그사이 편의점이나 분식집에서 홀로 밥을 먹는다. 아침에도 식구들이 함께 둘러앉을 시간이 없다. 늦은 밤까지 학원과 과외 활동으로 지쳐 돌아온 아이들을 아침시간 단 5분이라도 더 재우려는 엄마 마음 때문이다.

한술 더 뜨자면 배움에 지친 아이들,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자녀들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지 않나 싶다. 아이들이 학원에서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는지, 성적은 올랐는지가 부모와 자녀 간의 주된 관심사이다. 성적만 오르면 모든 게 용서되는 분위기도 만만치 않다.

거기다 길거리 훈육 역시 언제부터인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을 놓고 예전만큼의 어른들의 훈육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만큼 어른들의 권위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도 더는 아니라는 것이다.

스마트하다는 정보화 시대는 가정에 무엇을 남겼는가? 남아있던 가족 간의 대화 기회마저 빠르게 빼앗아 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자란 아이들이 섞여 있는 학교와 교실 안은 어떠한가! 학생들 간의 다툼과 분쟁의 빈도는 잦고, 그 형태도 복잡하여 생활지도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또한 중학교 교실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의지가 불타는 소수의 아이들과, 자기가 무얼 좋아하는지 이제 막 고민을 시작한 아이들, 또 일찌감치 공부는 내 길이 아니라고 포기한 아이들이 섞여 있어 수업 진행 역시 쉽지 않다.

(사진: shutterstock.com/Choen photo)

이렇게 달라진 한국의 교육상황과 분위기를 전혀 몰랐던 때에 중간담임을 맡으면서 빚어낸 사고의 전말은 이러했다.

청소시간에 청소지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지도를 잔소리로 알아들은 아이가 내게 욕설을 내뱉었다. 교직 생활을 통틀어 처음 겪는 일이었다. 순간 모욕감과 함께 분노가 치밀었고, 아이에게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하고 말았다. 아이는 신고하겠다는 표현을 했고, 나 역시 해 볼 테면 해보라고 호통을 쳤다.

담임교사는 아이들의 긍정적 변화에 보람을 느끼고 아이들의 반응에 행복해한다. 담임교사와 아이들의 궁합이 잘 맞으면 1년이 보람과 행복으로 이어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한 해가 마무리될 때까지 서로 힘들다. 더구나 2학기에 담임이 교체되면 학생과 교사, 서로가 힘들다. 이미 옛 담임에게 적응되고 길들여진 아이들과 새롭게 적응시키려는 새 담임 사이에 눈치와 알력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한번 틀어지면 한없이 평행선으로 가는, 그런 관계가 발생할 수 있다.

내게 주어진 2학기 담임 업무의 결국이 그러했고, 그 결과는 괴로움과 자괴감뿐이었다.

그 사건 이후 담임반 아이들과 틀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어긋난 만남은 교직 생활 전체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다. 퇴근 시간이 되면 단 1초도 학교에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퇴근길의 가을 노을을 바라보며 ‘아이들에게 이런 대접 받자고 어렵게 공부하고, 다시 복직을 했나?’하는 회의와 함께 ‘내 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되나?’ 하는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렇게 눈물과 한숨으로 한 학기를 마무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끄러운 시간들이다. 대한민국의 중학교 아이들을 조금만 더 이해했더라면 그런 일은, 그런 상황은 만들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호된 신고식을 치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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