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야, 너는 왜 존재하니?
평가야, 너는 왜 존재하니?
2017.08.02 16:26 by 시골교사

“엄마, 이번 OO과목 평균이 얼마인지 아세요? 30점대예요.”

고3짜리 큰아이가 시험을 잘 못 보았나 보다. 본인이 못 본 시험을 과목 평균으로 퉁치려 한다.

“평균이 그 정도면 너만 못 본 것은 아닌 게지?”

아이의 점수를 듣고 욱하고 올라오던 기분이 평균점수에 금세 누그러진다. 마음이 후해져 아이의 결과를 그냥 넘기려 한다. 하지만 뭔가 개운치 않으면서 찜찜하다. 이 기분은 뭐지?

큰아이는 성실하다. 학원을 안 다니는 덕에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날마다 새롭게 여기며 공부한다. 그리고 꼼꼼하다. 판서는 물론이고 선생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열심히 받아 적는다. 그렇게 적은 내용을 나름 공들여가며 열심히 공부한다. 그런 아이의 성격과 성실함을 아는 엄마의 입장에서 30점대의 평균과 아이의 점수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더구나 딸아이가 고3이다 보니 본인이나 부모 입장에서 성적에 더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고2 때 이과계열을 선택했다. 수학을 국어보다 좋아한 것도 이유이지만, 국어 실력이 부족한 아이가 글보다는 숫자로 논리를 전개하는 게 나중을 위해 낫겠다 싶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보내면서 아이의 성적은 뒤처졌다. 특히 과학 과목을 어려워했다. 과학 성적은 수학 성적에 비례한다고 하지만, 받아오는 등급은 수학보다 못했고, 점수대는 형편없었다. 그래도 어느 정도 점수를 받아와야 배운 내용에 대한 이해 여부를 확인할 수 있으련만, 그 정도의 점수로는 ‘공부한 거 맞아?’라고 되묻고 싶을 정도였다.

어느 날, 큰아이도 성적이 고민되었는지 00과목 공부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내게 묻는다. 문과생이었던 난들 알 턱이 있나? 해결책 대신 아이의 공부량을 의심하며 이렇게 대꾸했다.

“네가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해서 그런 것 아냐? 아니면 문제 유형을 제대로 파악 못 했던지.”

그때까지도 교과 시간에 배운 내용만 정확히 익히면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다고 믿어 왔다. 내용에 대한 이해 여부는 문제지 한 권으로 확인하면 족하고 말이다. 그렇게 늘 믿어온 공부방법을 아이에게 다시 한번 주지시키고, 다음번 시험결과를 기대해 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00과목을 가르치는 동료 교사에게 공부 방법을 물어보았다. 선생님 왈, 이과생들의 00과목 수업도 영어, 수학처럼 수업을 중간 수준에 맞춰 진행한다고 한다. 내용을 너무 어렵게 하면 많은 아이들이 못 알아듣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등급 구분을 위해 문제를 어렵게 낼 수밖에 없다고 답해 주었다.

결국, 수업시간에 다룬 내용만으로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을 아이가 고3이 되어서야 알게 된 셈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아이에게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만 충실하라고 했으니, 참으로 순진하고 순진했다. 어리석어도 한참 어리석었다.

바보 같은 엄마는 여기서 생각을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참고서 몇 권 들이대며 더 열심히 하라고 채근하지도 않는다. 대신 이런 생각을 덧붙여 본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만으로 등급을 가릴 수 없다, 그래서 가르친 수준 이상의 문제를 출제하여 평가한다? 그러면 배움과 평가 사이에서 생기는 이 괴리감은 뭐지? 학교공부만으로 좋은 내신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다른 방법으로 더 많은 양을 채워야 한다는 의미인가?'

학교 교육에는 정해진 교육과정이 있다. 주어진 수업일수 안에서 학생들이 배워야 할 교과와 시수, 그리고 핵심성취기준을 정해놓고, 그것을 중심으로 가르치고 평가하게 되어 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주어진 수업일수와 수업시수 안에서 다뤄진 양과 수준만큼만 학교에서 평가하고 있나? 수능시험의 난이도는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양과 수준을 제대로 고려하고 있는 것일까?

독일에서도 더 많이, 더 미리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고등학생들에게 부여한다. 학생 중에 지적 호기심이 많거나, 머리 좋은 친구들은 대학 강의를 들을 기회를 준다. 학점을 챙길 기회를 미리 주는 셈이다. 단, 그들이 대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다른 학생들과 함께 평가하지는 않는다. 더 많이, 더 미리 배운 내용은 고등학교 교육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이 좀 공평해야 하지 않을까? 미리, 또 더 많이 배운 것을 평가한다면 학생들이 공부해야 할 양은 그만큼 늘어나고 시험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며, 사교육에 매달리는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정규교육과정의 수준과 양을 벗어난 평가가 지속되는 한, 학교 교육 현실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에구에구! 그런 줄도 모르고 교과 시간에 배운 내용만으로 족하다고 말한 엄마의 조언은 참으로 헛되고 헛되었다.

“엄마, 나는 머리가 나쁜가 봐요. 해도 안 돼요.”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내비친 말이었다. 더구나 대학입학이라는 하나의 결승점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실은 올게 왔구나, 싶었다. 이런 벽에 부딪힐까 봐, 또 그런 생각을 가질까봐 마음 졸였던 게 사실이다.

평가의 목적 중 하나는 변별력이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여 자기 수준을 아는 것! 그 결과를 보고 부족하면 반성하고, 넘치면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기회로 삼는 것, 그게 바로 시험이 주는 매력 아닌가?

하지만 우리는 평가를 교과 내용이해 정도 이상으로 이해하고 그것에 지나치게 집착한다. 평가를 상대와 비교하는 수단으로 바라본다. 잘한 친구와, 못한 친구를 구분 짓는 잣대로 활용한다.

다시 한번 00과목 시험결과로 돌아가 보자. 교과 평균 30점대의 점수 결과를 놓고 학생 스스로 자기 노력에 대해 정당하게 평가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많은 학생들이 교과 이해에 대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을까? 오히려 많은 아이들이 큰 아이처럼 해도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하지 않을까?

옆에서 공부하는 것을 지켜본 엄마의 입장에서 이런 말을 들으니 속상했다. 학교공부가 아이에게 성취감보다는 좌절과 낙담, 거기다 부정적인 자존감까지 갖게 하니, 차라리 학교를 그만두고 검정고시를 보게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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