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저 나중에 뭐할까요?”
‘왜 자기의 꿈을 나한테 묻는 거야?’ 어이가 없었다. 오히려 그런 아이가 답답했다.
나는 내 꿈을 놓고 혼자 엎었다, 뒤집었다를 반복했고, 누구의 강요나, 조언 없이 내 길을 정했다. 또 그 꿈을 이루기 위해 혼자 고민하며 노력했다. 물론 부모님이 자율적인 선택을 하도록 일부러 기회를 주신 것은 결코 아니다. 부모가 자녀의 진로문제에 시시콜콜 관여할 정도의 여유나 관심이 없던 시대였고 거기에 내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냥 살면서 때마다 재미와 흥미, 내지는 성취감을 느끼면 그것이 바로 꿈이 되었고, 남들에게 그것을 ‘꿈’이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자의든, 타의든 그렇게 방치된(?) 삶이 오히려 행복했다. 누구의 간섭 없이 혼자 꿈꾸며 상상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결국, 주어진 환경 속에서 교사를 꿈꿨고, 노력하다 보니 그 꿈이 어느새 현실이 되어 버렸다. 그런데 왜 우리 아이한테는 그런 유전자가 없는 것일까?
한참 후에 아이가 또 이렇게 묻는다.
“왜 엄마는 나한테 이런, 저런 다양한 경험을 시켜주지 않았어요? 그랬으면 내 직업을 찾는데 이렇게 헤매지 않을 것 아녜요?”
단순한 물음을 떠나, 이제 엄마 탓을 하기 시작한다. 꿈이 없는 게 엄마 때문이란다. 어이가 없을 뿐이다. 새끼들 적응시키느라 혼자 속 끓이며 마음고생한 게 전부인 엄마한테 어디다 대고 탓을 하는지… 엄마라는 이름으로 돌아오는 원망에 억울할 뿐이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아이의 꿈 이야기
“엄마, 나 나중에 선생님 될래요.”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 아이가 들려준 꿈이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직업군이 그것밖에 없는 아이에게 쉽게 나올 수 있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때 평생 후회할 말을 아이에게 하고 말았다.
“엄마가 행복해 보여? 엄마가 학교에서 아이들과 이렇게 힘들게 지내는 것을 보고도 선생님 하고 싶니?”
그때는 교직 생활에 재적응 하느라 한참 힘든 시기였다. 사춘기 아이들을, 또 예전 같지 않은 아이들을 옛날 방식으로 훈육하겠다고 맞서다 감정의 골은 깊어지고, 힘은 힘대로 들고, 보람보다는 밀려오는 자괴감으로 하루하루 버티기가 버거운 무렵이었다.
하필 그 타이밍에 뭐가 그리 좋아 보였는지 아이는 교사가 되겠다고 나섰고, 그런 아이에게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로 아이의 꿈을 뭉개버리고 말았다. 그때 이후 아이는 더 이상 교사에 대한 꿈은커녕 그 어떤 꿈도 말하지 않았다. 결국, 선생님이란 꿈이 내게 들려준 큰 아이의 처음이자 마지막 꿈이 되어버렸다.
엄마, 제 장래희망이 뭐예요?
아이가 크면 클수록 잘하는 게 도드라진다면, 그것으로 엄마의 큰 걱정은 덜어진다. 아니, 그보다 더 이상적인 일은 없을 것이다. 아이가 잘하는 것을 놓고 큰 그림을 그려볼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라면?
한국에 돌아와서 큰아이를 지켜보면서 답답했다. 아이가 아주 잘하는 게 눈에 띄지 않았다. 먼저는 말과 글이 어눌하니 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였고, 그것으로 성취감을 맛볼 기회를 잃은 아이는 어느 분야든 본인 스스로 적극적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다. 그런 일련의 사이클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엄마 마음은 조급해지고 불안해졌다. 아이가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조차 이런 불분명한 현상은 지속되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의 성적은 모든 교과에서 향상되었고 평균적으로 잘하는 편에 속하였다. 하지만 성적의 고른 향상과 교과 평균을 가지고 아이의 특화 분야를 가릴 수는 없었다. 그것만으로 아주 잘하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선 긋기는 불충분했다.
“엄마, 죄송한데요. 진로 희망란에 뭐라고 적어야 해요?”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연중행사마냥 반복되어 돌아오는 생활기록부상의 진로희망과 희망 사유란을 채우는 일은 아이와 내게 큰 짐이었다. 특히, 고등학생이 되어서 이렇게 물어올 때는 더더욱 답답했고, 그동안 잠잠했던 아이의 장래에 대한 걱정들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특화된 모습이 눈에 띄지 않는 데, 무슨 희망직업을 적으라고 해? 그것도 구체적으로? 왜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니고 필수항목일까?’
‘지금까지도 본인에게 맞는 적성을 못 찾고 고민 중인 아이는 얼마나 답답하랴! 또 그런 채근 속에서 때마다 겪는 스트레스는 얼마나 크고?’
‘정말 나중에 이 아이는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최적일까?’ 등등.
결국, 미안하다는 말로 운을 뗀 아이를 바라보면서 마음이 착잡하기만 했다. 하지만 엄마인 나도 뾰족한 답을 줄 수는 없었다. 솔직히 아이에게 직업을 추천하는 일은 쉽지 않다. 직업이 수만 가지라고는 하나, 그 직업에 대한 구체적인 상황과 전망을 모르는 데다, 결혼 후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데 적합한지의 여부까지 고려하면 추천할 직업 폭은 더욱 좁아진다. 미래사회에는 어떤 직종이 새롭게 생겨나고, 전망은 어떠하다고 말은 많으나, 그런 불확실한 신종 직업 세계로 아이를 떠밀 만큼의 용기 또한 없다.
이런 고민을 하다가 다시 아이에게 책임을 돌려본다. 인생을 걸고 꿈꾸어야 하는 주체는 본인이 아니던가? 왜 부모가 이 일에 나서서 이렇게 고민을 해야 하는 걸까? 힘들어도 자기 인생이고 자기가 책임지고 개척할 삶이 아닌가? 도대체 우리가 크던 때와 지금의 아이들 간에 무슨 차이가 있길래 요즘 아이들은 자기들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일까?
꿈꿀 시간이 없다
물론 경제 수준, 사회변화 속도와 정보의 양이 다른 것은 분명하다. 그때는 가난했고, 그 누구 하나 나서서 챙겨주지 않았다. ‘제 밥그릇은 차고 나온다’, ‘낳아 놓으면 알아서 큰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고, 부모들이 먹고살기 바빠 한 집에 네, 다섯이 보통인 자녀들을 일일이 챙길 여유가 없었던 게 사실이다. 그 속에서 재능이 그냥 묻히기도 했고, 제대로 된 정보 하나 없이 스스로 꿈을 찾아 나서기도 했다. 또 배움의 장소는 올 곧 학교 하나였고, 선생님의 설명이 지적 호기심을 채우는 전부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다른 것은 그때의 아이들은 꿈꿀 시간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것도 누구의 간섭과 도움 없이 말이다. 또한, 같이 더불어 놀 기회가 많았다. 그곳이 가정이기도 하고, 동네이기도 하고, 학교이기도 했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꿈이 없는 것에 대한 책임을 아이에게만 돌릴 일은 아니었다. 아이는 학원만 가지 않을 뿐이지, 다른 아이들과 별반 다름없이 책상에 앉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먼저는 어릴 때 못 읽었던 책들을 읽으면서 놓친 어휘를 익혀야 했다. 교과서에서 모르는 단어를 일일이 찾는 일도 어김없이 해야 하는 과제 중 하나였다. 쉴 새 없이 읽고, 찾고, 무언가 하기는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끊임없는 엄마의 감시 속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또 어쩌랴!
시험 기간이 시작될 무렵, 뜬금없이 소설책에 빠져있는 아이를 보면 “너, 제정신이니?” 하며 호통을 쳐댔고, 친척 집이라도 갈라치면 공부 시간을 최대한 뺏기지 않도록 시간 계산을 해서 보냈다. 거기다 노는 시간, 컴퓨터 하는 시간까지 일일이 부모의 허락 없이는 되는 일이 없으니, 그 속에서 아이가 언제 자유롭게 꿈꿀 수 있겠는가?
배움이라는 것이 꼭 교과서와 참고서에만 있는 게 아닌 것을, 늘 지식을 쌓는 데만 초점을 맞춰 아이가 책상반경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손에서 잠시라도 책을 내려놓으면 큰일인 것처럼 아이를 닦달하고 몰아세우기는 여느 부모와 매한가지였다.
그런 아이에게 꿈을 묻는다고 질책하며, 그 문제는 네 문제니 알아서 해야 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자격이 솔직히 엄마인 내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