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전화를 애타게 기다릴 때가 있다. 시험을 보고 난 직후이다. 전화기에서 ‘엄마’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 톤에 따라 마음은 천국과 지옥을 오고 간다. 소리가 아주 밝게 바로 나오면 시험을 잘 친 게고, 전화기에다 뜸을 들이고 엄마를 쉽게 부르지 않거나, 힘없이 저음으로 깔고 부르면 그 결과는 틀림없다. 늘 밝은 톤으로 여유 있게 결과를 알려오면 좋겠지만, 반대의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럴 때면 내일 볼 시험을 염두에 두고, 애써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며 쿨한 척 이렇게 말한다.
“결과가 뭐 그렇게 중요해? 최선을 다했으면 됐지? 오늘 일은 잊어, 알았지?”
전화를 끊고 나면 그때부터 내 속은 더 이상 내 속이 아닌 게다. 아이에게 잊으라고 했지만 엄마는 아이에게 대놓고 못 한 얘기를 속으로 이렇게 구시렁대기 시작한다.
‘지지배, 그러니까 내가 뭐라고 했어? 후회하지 않게 최선을 다하라고 했지?’
‘시험공부를 늦게 시작할 때부터 알아봤어. 어떤 놈은 중간고사 끝나자마자 기말고사 준비한다고 하더라.’
‘결과만 나와 보라지!’
어쨌든 밝은 목소리를 들은 날은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이 행복하고, 그렇지 않은 날은 나라를 잃은 것처럼 몸에서 기운이 다 빠진듯하다. 병이다. 병! 왜 아이 성적에 엄마 기분이 왔다 갔다 해야 하는 거지? 나만 이런가?
엄마, 문제가 여기 있어요!
“엄마, 엄마! 이것 보세요. 내가 못 푼 문제가 여기 다 있어요.”
작은아이가 인터넷으로 신청한 00과목 문제집을 뒤적이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랬구나! 어려운 문제를 미리 풀어본 아이는 맞는 문제였고, 전혀 접하지 않은 아이는 못 푸는 거였구나!’
작은 아이가 2학기 1회 고사에서 00과목 시험을 치르고 난 뒤, 손도 못 댄 문제가 3, 4문제라며 나라를 잃은 것처럼 절망했다. 이제 겨우 고1인데. 고등학교에 들어와 고3인 언니보다 더 열심히 하는 작은 아이를 바라보며 솔직히 걱정 반, 기대 반이었다. ‘발동이 제대로 걸린 건가?’, ‘1학년 때부터 무리하게 뛰다 고3이 되어 나자빠지는 것 아니야?’ 하면서 말이다.
역시나! 1학기에 선방했던 아이가 2학기 1회 고사 00과목에서 제대로 넘어졌다. 손대기 어려운 문제 때문이다. 시험을 치르기 전에 백 점이 한 명도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교과 담당 선생님의 예상을 뒤엎고 만점이 2명이나 나왔다. 확실한 변별력이 생긴 게다. 아이가 망친 시험 결과 앞에 고민하다, 이과생인 언니의 조언대로 몹시 어려운 문제지를 하나 신청해 매일 한 문제씩 풀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드디어 신청한 문제지가 도착했다. 작은 아이가 문제지를 죽 훑어보다, ‘엄마, 엄마!’를 그렇게 숨넘어갈 듯 불러댄 것이다. 이 문제집으로 미리 문제를 풀어본 아이는 맞고, 그렇지 않은 아이는 전혀 손도 댈 수 없었던 게다.
하지만 이해도 되었다. 시중에는 과목당 참고서와 문제집이 학기마다 수없이 쏟아져 나온다. 암기과목의 경우 문제집 몇 권에, 몇 년 치 수능기출문제만 풀어보면 웬만한 문제유형은 거의 다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선생님들이 시험 때마다 시중에 나온 문제들과는 전혀 다른 창의적인 문제를 낸다? 거기다 선생님들이 수년간 똑같은 내용을 가지고 매년, 매 학기, 매회 마다 창의적으로 문제를 낸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또 그런 문제를 낼만큼의 시간적 여유가 선생님들에게 없다. 더구나 문제의 오류 여부까지 고려하면 창의적 문제출제의 가능성은 더욱 좁아진다. 그러다 보니 학교 시험문제나 모의고사 문제에는 어디서 본 듯한 문제들이 종종 등장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시중에 나오는 수많은 문제집 중에 랜덤식으로 몹시 어려운 문제가 몇 문제라도 출제된다면, 좋은 점수 따는 것은 운빨일 가능성이 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