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욕 안 하는 아이는 OO이밖에 없어요.”
중학교 담임선생님이 전해준 말이다. 큰 아이는 중학교에 입학한 후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을 겪었다. 기껏해야 한 학년에 10에서 15명 남짓 되는 소규모 학교를 다니다가, 갑자기 도심지에 있는 중학교에 입학했으니 놀랄 일이 얼마나 많겠는가? 무엇보다 큰아이가 힘들어 했던 것은 아이들의 욕설이었다.
입에 욕을 달고 사는 아이들! 어른들은 걱정이지만 아이들은 이 일에 전혀 걱정하거나 반성하는 눈치가 없다. 오히려 욕이 필요하단다. 욕을 해야 세게 보여 친구들이 무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욕이 언제부터 ‘자기방어기제’가 되었는지… 요즘 아이들에게 욕은 그렇게 일상용어가 되어 버렸다. 욕을 섞지 않고는 소통이 되지 않고, 그 결과 쉬는 시간의 교실은 욕설로 얼룩져 버린 지 오래다.
그런 아이들 앞에서 욕 한마디 없이 살아가는 큰 아이는 학교에서 천연기념물이라는 칭찬 아닌 칭찬을 받고 지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아이의 발목을 잡을 줄이야! 친구들 사이에서 큰아이는 시대에 뒤처지는, 소속이 다른 듯한, 거기다 말귀까지 못 알아듣는 이상한 아이로 비쳤다. 또 졸업한 학교가 작다 보니 같은 학교 출신이 없어 그 외로움은 더했던 것 같다.
한번은 아이가 내게 이런 말을 내비친다.
“엄마 알아? 나, 밥 먹으러 갈 때도 혼자 가고, 화장실도 혼자 다녀.”
이 일을 또 어쩌면 좋단 말인가? 여자아이들이 가진 속성 중에 친구를 하나 이상 끼고 다니는 게 정상 아닌가? 밥 먹으러 갈 때도 함께 가고, 화장실도 같이 가고, 교무실에 제 볼일 없이도 따라가고, 시간만 되면 모여 수다 떨면서 그 속에서 안전함을 느끼는 게 사람 심리 아니던가! 특히 여자아이들이 더더욱 그런 성향을 강하게 보이는 것을. 거기에 끼지 못하고 어디든 혼자 다닐 아이 생각을 하니 왜 이리 우울한지!
그렇게 외롭게 한 학기를 보내고 2학기가 시작되면서 큰아이의 학교생활은 다행히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다른 반에서 외국 생활을 경험한 한 친구를 알게 된 덕분이다. 서로가 가진 경험이 호감으로 이어져 둘은 금세 친해졌고, 쉬는 시간마다 서로를 찾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행복해하는 낯빛으로 바뀌어 갔다.
욕! 글쎄, 사회성을 위해 어느 정도 필요한 걸까?
타고난 영재? 맞춤형 영재?
“엄마, 나 과학 영재반 시험 한번 볼까요?”
중학교에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큰아이의 물음이다. 우리말도 제대로 이해 못하는 아이가 영재반 시험을 보겠단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등 떠밀지 않아도 본인이 제 발로 고생문에 들어서겠다는데. 그런 아이의 용기에 칭찬을 못할망정, 엄마인 내가 대뜸 한다는 소리,
“네가?”
운 좋게도 큰아이는 학교 과학 영재반에 뽑혔다. 들인 것 없이 거저 얻은 타이틀, 영재! 이 얼마나 값진 이름인가? 내심 아이가 기특했다. 부모의 어깨가 절로 으쓱해졌다. ‘자식 키우는 게 이런 맛이구나!’ 하는 기분을 한국에 와서 처음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하지만 영재라는 이름을 붙이고 나니 그 또한 우스웠다. 무슨 영재인가 싶었다. 영재라는 이름을 정확한 검증 없이 너무 아무 데나 붙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시험응시자의 결과를 놓고 서열을 매긴 것에 불과한 것을.
학교에서 영재입학식을 치르고, 아이가 학교에서 공짜로 받았다며 책 한 보따리를 꺼내 놓았다. 그런데 가져온 교재를 보고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아이가 들고 온 과학교재는 물리, 화학, 지구과학, 생물 등의 낱권으로, 딱 보아도 대학 개론서 수준의 책이었다. 교재의 두께만으로도 질렸다. 그 책을 가지고 아이는 매주 토요일, 4시간씩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수업을 받으며 오전 시간을 보냈다.
그때야 비로소 영재와 관련된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부모가 자녀를 특목고, 특히 과학고에 보내고 싶으면, 미리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에 돌입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과학고 입학을 목표로 한 경우, 교육청 과학영재과정은 필수이며, 그 영재교육시스템에 아이를 넣기 위해 난이도 높은 수학, 과학문제를 일찍부터 아이들에게 들이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일들을, 나같이 평범한 문과형 엄마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난이도가 그렇게 높다는데, 그 문제들을 그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어떻게 소화해 내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우리나라 영재들의 수준을 너무 낮게 보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그런 영재들이 많이 태어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 부모들의 열성과 아이들의 노력으로 맞춤형 영재가 탄생하고, 그런 자격과 조건이 갖춰진 아이들이 특목고로 직행하고 있다는 현실이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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