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이 많아 잠들 수 없는 밤에는
걱정이 많아 잠들 수 없는 밤에는
2017.06.05 15:56 by 지혜

먼로 리프 쓰고, 로버트 로슨 그린  

<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드>

자랑인데, 나는 날씬하다. 아랫배와 옆구리에 붙은 군살이 거슬리지만 옷만 잘 골라 입으면 그렇게 날씬해 보일 수가 없다. 헐렁한 셔츠에 엉덩이부터 쫘악 달라붙는 스키니진을 즐겨 입는다. 말라서 좋겠다는 칭찬을 들을 수 있는 차림새이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는 해본 적이 없다. 믿을 수 없겠지만 음주와 야식으로 점철된 밤들을 보내도 체중계 위 나의 숫자는 거의 변하지 않는다. 비결은 타고난 체형과 체질 그리고 무엇보다, ‘걱정’이다.

아, 걱정. 걱정에는 낮밤이 없지만 아무래도 밤에 하는 걱정이 제 맛이다. 눈을 감고 가만히 누워 있으면 아까 아침에 발견한 붉은 반점의 원인이, 친구가 툭 던진 말 한마디에 담긴 의미가, 30년 뒤 우리 가족의 생계수단이 너무 걱정된다. 그렇다고 이 밤에 반점 하나 때문에 응급실에 갈수도, 친구에게 전화해서 왜 그런 말을 한 것이냐 되물을 수도,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날아 갈수도 없는 노릇이니, 한번 시작한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결국 불면을 낳는다. 피곤한 몸으로 일어나 낮을 꾸역꾸역 살아 넘기다 보면, 날씬한 몸은 행복의 반대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짜증이 많고 우울도 쉽다.

(사진:Sergey Nivens/shutterstock.com)

새 걱정이 생겼다.

아이는 발레를 몹시 좋아한다. 스트레칭이나 근력 운동이 꽤 힘들 텐데 그만 둔다는 소리 한번을 안 하고 제법 잘 다니고 있었다. 그 사이 오랜 꿈이었던 구급대원이 발레리나로 바뀌기도 했다. 그런데 발레보다 친구가 더 좋은지, 같이 다니던 단짝 친구가 그만 둔다고 하자 어떤 고민의 흔적도 없이 너무나 쉽게 그만 하겠다고 해버린다. 비슷한 경우가 이미 여러 번이다. 얘는 도대체 왜 자기 생각보다 친구 생각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지 걱정이다. 너는 친구와 다른 사람이니까 계속 다녀야 한다고 강요를 하려다가, 발레에 흥미를 잃고 마지못해 하게 될까봐 걱정이다. 그렇다고 그만 다니라고 하자니 끝맺음에 필요한 인내를 배우지 못하고 포기가 쉬운 어른으로 자랄까 걱정이다. 현명한 선택을 하는 엄마가 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할까 걱정이다. 이 밤을 기다렸다는 듯 실타래처럼 걱정 뒤에 걱정이 풀려 나온다.

불면의 밤이 너무 힘들어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그림책 한 잔을 한다. 신호등에 빨간 불처럼, 폭주하는 걱정을 멈출 빨간 그림책이다.

 

 

걱정 없는 삶의 비밀,

<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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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황소 페르디난드는 꽃을 좋아한다. 보통의 어린 황소들은 달리고, 뛰어오르고, 서로 머리를 받으며 지냈지만 페르디난드는 다르다. 그저 조용히 앉아 꽃향기를 맡을 때 가장 행복하다. 페르디난드의 엄마는 때때로 아들을 걱정했지만 ‘그저 조용히 앉아서 꽃향기를 맡을 수 있는 이곳이 더 좋다’는 말에 어떤 망설임도 없이 “그대로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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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른이 되었다. 주변에 친구 황소들은 투우 시합에 뽑혀 나가길 바라며 하루 종일 서로 머리를 받고 뿔로 찌른다. 페르디난드는 여전히 코르크 나무 아래 조용히 앉아 꽃향기를 맡을 뿐이다.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고 “그대로 둔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코르크 나무 아래 앉으려는 페르디난드를 벌이 쏘아버린다. 페르디난드는 고통에 미친 듯이 몸부림을 친다. 그 모습을 지켜본 사람들은 페르디난드를 가장 사납고 힘센 황소라 오해하고 투우 시합을 위해 데려간다. 페르디난드는 투우를 좋아하지 않지만 사람들의 오해를 풀려고 하지도 않는다. 어디 그뿐인가 앞으로 벌어질 위기에 대한 예상과 계산도 없이 그냥 “그대로 둔다.” 실려 가는 수레 위에서 어찌나 한가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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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우장에는 황소를 화나게 할 날카로운 작살과 기다란 창, 마지막 순간에 황소를 찌를 칼 한 자루가 기다리고 있다. 이것들을 페르디난드는 “그대로 둔다.” 투우사들이 자신을 자극하려고 무슨 짓을 하든 그저 앉아서 꽃향기를 맡을 뿐이다. 결국 사람들이 포기했다. 페르디난드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고 자신이 좋아하는 코르크 나무 아래 앉아서 조용히 꽃향기를 맡으며 아주 행복해한다.

처음부터 걱정 없는 삶이 아니었다. 누구나의 삶이 그렇듯 걱정은 쉼 없이 페르디난드를 두드린다. 하지만 “그대로 둔다.” 보통의 황소들과 다른 모습도, 사람들의 오해도, 훌륭한 황소가 되지 못하는 것도, 자신을 위협하는 칼도, 반드시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대로 두면 시간이 흐르듯이 걱정도 흘러간다.

걱정 없는 삶이 아니라 걱정 하지 않는 삶, 정말 페르디난드처럼 살아도 될까.

페르디난드가 투우 시합에 뽑혀 나갔던 것은 순전히 우연 때문이었다. 풀밭 위에 벌이 있는 줄 모르고 앉았고 쏘였고 날뛰는데 마침 사람들이 보았다. 이 우연의 연속이 답한다. 삶은 의지대로 흐르지 않는 법이고 함부로 짐작할 수도 없는 것이므로 걱정이 유일한 방법은 아니라고, 페르디난드처럼 살아도 괜찮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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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걱정은 그대로 두자. 발레보다 친구가 더 좋다는데 어쩌겠는가. 또 모르지. 우연히, 친구보다 발레가 더 좋아질지도. 그림책의 마지막 장면처럼, 끝! 이제 그만 잠들기로 한다.

  Information

<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드> 글: 먼로 리프 | 그림: 로버트 로슨 | 역자: 정상숙 | 출판사: 비룡소 | 발행: 1998.06.10 | 가격: 9,000원

 

/사진: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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