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사연: 설렘에 관하여
열한 번째 사연: 설렘에 관하여
2017.06.20 15:18 by 오휘명

 

SENING_BLUE

6월 어느 공원에서

사진: NWstock / shutterstock.com

저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 새로운 사람이나 공간을 보면 참 설레요. 날씨가 꿀꿀해도 말이죠. 특히 나가기 전 단장을 할 때가 가장 즐거운 것 같아요. 눈썹을 좀 더 세심하게 그리고 홍조가 있어 하지 못했던 볼 터치를 빵빵 두드릴 때요. 만났을 때도 좋지만 만나기 전의 들뜬 마음, 그 기분이 너무 좋아요.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서로의 무엇인가를 공유하는 것 자체도 참 멋진 일인 것 같아요.

설렘에 관한 이야기니만큼, 풋내기 햇병아리 시절의 뻔하디뻔한 사랑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사춘기 시절, 호르몬이 왕성하다 못해 넘쳐흐르는 시기는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제게도 모르는 어느 순간 계속 눈길이 가게 된 사람이 있었어요. 음, 마치 “자몽” 같은 사람이었어요. 달짝지근하면서 씁쓸한? 검은 머리에 긴 속눈썹, 큰 키의 전형적인 ‘농구부 오빠’ 스타일이었어요. 저는 그 아이를 향한 마음을 2년 동안 숨겼어요. 저의 왈가닥이고 늘 까불거리는 성격과는 다르게, 그런 마음만큼은 혼자만의 비밀로 간직하고 싶었거든요. 제 주변의 가까운 사람들도 모를 정도였어요. 우연히 같은 반이, 심지어 짝꿍이 된 그 아이에게, 저는 참 뻔한 접근방식인 ‘마이쮸 먹을래?’라고 말했어요. 좋아한 지 1년 만에 처음으로 말을 건 거였어요.

우리는 서서히, 어떻게 보면 참 느리게 친해졌어요. 저는 누구에게나 말을 잘 거는 성격이었지만, 그 친구만큼은 가까운 듯 참 멀게 느껴졌었거든요. 한 사람의 생각이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고, 그 아이의 기분에 따라 제 하루의 컨디션마저 달라졌어요. 영화를 보면 주인공 뒤에 뿌옇게 특수효과 같은 것들이 칠해지곤 하죠? 저는 그 아이를 보기 전까지는 그런 걸 느껴본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직접 겪어보니 너무나 신기한 거예요!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내 홍당무처럼 익은 얼굴이 들통날까 봐 겁났어요.

그 애는 저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혹은 공복의 치킨 같은 존재였습니다. 저를 무심히 챙겨주곤 했어요. 제 옆자리까진 차마 오지 못하고 주변에서 맴도는 것이 참 귀여웠어요. 하지만 누군가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요? 제가 그 아이를 좋아했던 시기와 그 친구가 절 좋아하게 된 시기는 안타깝게도 어긋나버렸어요. 제 나름의 마음 정리가 끝났을 때 그 아이에게 연락이 왔어요. 그리고 우리는 공원에서 만났어요. 나뭇잎이 우거진 유월 어느 초여름날(아마 현충일이었던 걸로 기억해요)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그 아이를 볼 때마다 ‘그냥 나란히 걸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하곤 했는데, 이게 웬걸, 막상 함께 걸어봐도 아무 느낌이 없었어요. 그 아이는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우리는 그렇게 하염없이 걷다가 벤치에 앉았어요. 계속 뜸을 들이던 그 아이는, 제게 “나에게 기회를 줘”라고 말했어요. 10초쯤의 정적이 흘렀어요. 멘트가 참 별로라고 생각했지만, 저는 그 아이의 용기와 제 용기를 합해서, 2년 6개월 만에 꼭꼭 숨겨 놓았던 제 마음을 말해줬어요.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요.

“나는 너를 정말 좋아했어. 왠지는 아직도 모르겠어. 아마도 네가 농구를 할 때 반했나 봐.”

그 아이는 적잖이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우리의 감정들은 이미 어긋나있는 상태였어요. ‘나도 참 나쁜 여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와 동시에 이 애매모호한 관계를 정리하고 싶다는 마음도 강하게 솟구쳤기에 저는 이렇게 말해줬어요.

“용기를 내줘서 고마워. 하지만 지금 난 널 좋아하지 않아. 미안해.”

그리고 저는 짝사랑의 상대가 아닌, 내가 느꼈던 지난 감정과 포옹한 뒤 그 아이와 헤어졌어요. 집에 도착하니 참 허무하면서도 시원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 나는 그 아이를 정말 좋아했었지. 예쁘게 보이기 위해 안 하던 화장을 했었고, 아침마다 머리에 볼륨을 주기 위해 애썼고, 은근한 향을 내는 로션을 항상 바르고 다녔었지. 예쁜 마음을 가지려 노력했었고. 또 달콤함을 선물하기 위해 새콤달콤도 주머니에 넣고 다녔었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나 참 애썼구나. 그리고 그 당시엔 참 행복했었다고 생각해요. 설렘이라는 게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사소한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크게 느껴지는 거요.

하지만 설레는 감정은 동시에 한순간에 지나가버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욱 소중한 것이고요. 그래서 꾸덕꾸덕하고 달달한 브라우니 같은 느낌을 계속 느끼고 싶다면, “용기”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누군가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말했듯, 모든 건 타이밍이 중요하니까요.

 

WB

6월, 어느 카페에서

사진: Jung U / shutterstock.com

‘설렘은 한순간에 지나가버리는 것.’

보내주신 편지 중, 이 한 구절을 몇 번이고 읊조렸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마음 깊숙이 공감했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사실 ‘설렘’이라는 단어는 저와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사랑하지 않은 지도 몇 년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고, 또 그런 건 어쩐지 제게는 과분한 게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늘 그렇게 관계에 있어서 위축돼있곤 했던 제게도 가끔은 외로움에 몸부림쳤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참 고맙게도, 그리고 미안하게도 그때마다 좋은 사람들이 내 곁에 머물러주었습니다. 설렘이라는 감정을 선물해준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제게 설렘을 선사해준 사람과 바람 부는 밤에는 전화통화를 했고, 비가 오는 날에는 한 잔 술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사랑은 아니었지만 어째선지 사랑만큼의 애틋함이 있는 관계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사랑은 타이밍’인 걸까요, 저는 참 오랜만의 설렘이라는 감정에서 허우적거리기만 했을 뿐, 관계를 진전시키기보다는 그 떨리는 감정을 그저 오래 음미하려 멈춰있기만 했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제 곁에 머물던 사람들은 지쳐 떠나가기 일쑤였습니다. 내가 미련해 학습효과가 없는 건지, 아니면 나름의 고집 같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기질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고 저는 여전히 홀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설렘이라는 건 한순간에 지나가버리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그 말을 몇 번이고 읊조린 이유 말입니다. 정말이지 설렘이라는 건 사랑이라는 것과는 또 다르게 유한성이 있어서, 그러니까 아주 달콤하고 맛있지만 유통기한이 짧은 디저트 같은 것이라서, 당장 잡아서 먹지 않으면 상하거나 변해버리는 것 같습니다. 뒤늦게 ‘아, 그거 정말 갖고 싶었는데! 오랫동안 잡을까 말까 고민했는데!’라고 생각할 때는 이미 늦은 뒤가 돼버리는 겁니다.

어느덧 6월 중순입니다. 슬슬 한낮에는 땀이 줄줄 흐를 만큼 더워지고 있지만, 밤에는 여전히 좋은 바람이 부는 나날입니다. 그리고 저는 몇 년째 밤길을 홀로 걷는 사람입니다. 어제도 밤길을 홀로 걸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습니다. 언제 또 내게 설렘을 주는 사람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설렘은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말입니다. 오래오래 웃고 싶다고 말입니다.

제가 어수룩했던 지난날보다 조금 더 성숙해졌다면, 그래서 더 용기 있는 사람이 된 거라면, 제게도 사랑이 찾아올 날이 있지 않을까요? 조금은 기대가 됩니다. 벌써부터 설렐 정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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