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 모임에 ‘목표’를 더해 보아요
엄마들 모임에 ‘목표’를 더해 보아요
엄마들 모임에 ‘목표’를 더해 보아요
2017.06.20 16:21 by 류승연

친구들 모임과는 다르게 엄마들의 모임은 참 거시기한 측면이 있다. 나가도 고민 안 나가도 고민이다. 나가더라도 ‘여자들의 입담’이 무서워 행동거지를 조심하게 되고, 그런 꼴이 보기 싫어 안 나가자니 우리 아이만 소외될까 두렵다.

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 모임이라 해도 크게 다르진 않다. 밥 먹고 차 마시고 수다를 떨어도 왠지 모를 허전함은 여전하다. 왜일까? 왜?

공통된 목표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 이때쯤 되면 엄마들은 이미 내 아이의 장애를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단순한 수다로는 성이 차질 않는다는 얘기다. 그보다 더 발전된 무엇이 없다면 관계는 형식적이 될 수밖에 없다.

우연한 기회에 발달장애 엄마들의 자조모임에 초대를 받아 참석하게 되었다. 이름하여 ‘무지개 모임’. 나 혼자 사는 엄마들의 모임이냐고요? 노노. 그렇지 않아요. 전현무 회장의 그 무지개가 아니라 김정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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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모임은 2015년에 만들어졌다. 설립 배경은 이렇다.

은창이가 두 살 때 자폐 진단을 받자 은창이 엄마 정아씨는 눈물로 세월을 보낸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자폐는, 발달장애는 고쳐지는 병 같은 게 아니다. 평생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 특성이다. 남다른 특성을 갖고 있는 내 아이를 장애인 복지가 척박한 대한민국에서 잘 키워내려면 엄마인 내가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갈 수밖에 없다.’

눈물을 쓱 훔치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여기저기 수소문하고 도움을 구하다 발달장애 아이의 엄마이자 특수교육 전문가인 이경아 박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를 만나 상담을 하면서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엄마들의 자조모임을 구상하게 되었다.

목표는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행복과 자립. 단 ‘장애인 월드’ 안에서의 행복과 자립이 아니다. 지역사회 안에서의 행복과 자립이 목표다. 비장애인들과 같은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같은 마트에서 장을 보고, 같은 음식점에서 외식을 하는…. 지역사회 안에서 어우러져 사는 성인 장애인으로 키우는 게 목표다.

은창이와 같은 어린이집을 다니던 엄마들이 주축이 돼 자조모임이 꾸려졌다. 이름을 무지개 모임으로 정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은 공부였다. 엄마가 먼저 알아야 했다. 내 아이는 자폐증. 내 아이는 지적장애. 내 아이는 뇌병변. 우리 아이의 장애는 어떤 특성을 갖고 있나요? 어떤 자극을 받으면 어떤 반응이 나오나요? 대체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거예요? 이럴 때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거예요?

발달장애인으로 살아본 적 없는 엄마들은 다른 생각회로, 다른 감각을 갖고 있는 내 아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책의 설명을 보고 짐작만 할 뿐이다. 교육이라는 측면으로 가면 더더욱 오리무중이다. 내가 받았던 가정교육은 장애 자식 앞에서 아무 소용이 없다.

무지개 엄마들은 강사를 초빙해 배우기 시작했다. 이경아 박사로부터 가장 큰 도움을 받았고 그 외에도 여러 전문가들을 섭외해 장애에 대해 배워가기 시작했다. 내가 참석을 했던 날도 이경아 박사를 초대해 ‘자폐 범주성 장애 아동을 위한 종합적 교육 접근, SCERTS 모델’에 대해 공부를 하고 있었다. ‘SCERTS 모델’은 장애 아이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에 대응하는 어른들의 태도를 바꿔 아이의 발전을 끌어내는 데 중점을 둔 교육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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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설명하면 아이가 말을 안 할 때 억지로 발화를 끄집어내기 위해 강압적인 분위기에서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 치료사가 손으로 아이 얼굴을 움켜쥔 채 강제로 발음을 교정하고 원하는 단어를 말하게 하는 방식을 지양한다.

대신 아이가 성공의 경험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지지하는 환경을 제공해 준다. 즐겁게 도전하는 상황을 만들어 스스로 발화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 방법론을 배우는 게 ‘SCERTS 모델’이다.

호오~ 내가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과도 맞닿아 있다. 형태와 기능, 대체행동 지정해 주기, 행동중재 등 강의 내용에 어려운 용어도 난무했지만 귀에는 쏙쏙 잘 들어온다.

‘동환아~ 그동안 손가락으로 밥알 집어먹을 때 무작정 못하게 해서 미안해. 이제부턴 밥알 대신 손의 촉감을 느낄 수 있는 대체품을 찾아보도록 할게. 엄마가 반성!.’

진지하면서도 재미있는 강의. 단지 공부만이 다가 아니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나아가고 있다 보니 서로의 속마음도 다 터놓고 지낸다. 이날도 가족 때문에 지친 한 엄마가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자 다 함께 고민하고 방법을 생각한다. 그렇게 모여 공부도 하고 서로 위로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무지개 모임은 한 달 4번꼴로 모인다. 모여서 뭐를 하느냐. ‘거북이 모터 달다’란 사업을 한다.

장애인 가족과 비장애인 가족이 함께 모여 놀이마당(숲 체험, 과자집 만들기, 축구교실, 얼음조각 만들기 등등)을 개최하기도 하고, 지역사회 활동(양천구 한마당 축제 등)에 참여하기도 하고, 장애 아이들만 따로 모여 체육수업을 받기도 하고, 가족들끼리 다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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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조모임을 하려면 활동비를 내야 한다는 거네요? 그럴 돈 있으면 우리 아이 치료 한 과목을 더 받게 하겠어요”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걱정 말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자조모임을 지원하는 장애인 단체들은 많이 있었다. 무지개 모임의 경우는 한국지적발달장애인복지협회, 한국자폐인사랑협회, 양천구 마을 공동체 등 5곳의 단체에서 여러 형태의 필요한 지원을 받고 있었다.

회장인 정아씨는 말한다. 무지개 모임과 같은 자조모임이 전국 곳곳에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고. 누군가 자조모임을 만들고 싶은데 방법도 모르고 지원받을 곳도 막막하다면 얼마든지 찾아오라고. 노하우를 알려주겠다고.

이러한 소규모 자조모임이 활성화 되고 서로서로 연계돼 ‘지역 사회 내 발달장애인의 자립’이라는 큰 목표를 향해 함께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룰 수 있지 않겠냐고.

무지개 모임은 나중에 사회적 협동조합을 꾸릴 계획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먼 미래의 이야기다. 일단은 자조모임이다. 지금은 이 자조모임을 내실 있게 잘 운영해 나가는 게 먼저다.

일반 아이의 엄마들은 반대표 엄마가 주최하는 ‘엄마들 모임’에 나가서 차를 마시고 수다를 떨다 와도 된다. 하지만 장애 아이의 엄마들은 내 아이의 살아나갈 미래를 위해 스스로 길을 찾고 움직여 개척을 해 나가야 한다. 이게 힘든 점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에 벌써 움직이고 있는 엄마들이 있다. 이미 이런 과정을 다 거쳐 나름의 길을 닦아놓은 엄마들도 있고, 언젠가는 자조모임을 만들겠다며 막연히 계획 중인 예비맘들도 있다. 아니면 아직도 이불 속에서 눈물만 흘리고 있는 엄마들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가리켜 장애 아이의 엄마라고 부른다. 이것이 같은 세상에서 다른 삶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다.

희망적인 모임을 보고 나서 기분이 좋았는데 헤어지기 전 더욱 큰 기쁨이 몰려온다. “장애인이 왜 장애인인 줄 아세요?”라고 묻는 정아씨의 질문을 받고서다. 장애의 사전적 의미를 말하려던 찰나 먼저 답을 알려준다.

“長(길 장), 愛(사랑 애), 人(사람 인). 오랫동안 길~게 사랑받는 사람이라고 장애인이래요”

장애인(長愛人). 오랫동안 길게 사랑받을 사람들. 터져 나오는 기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 기쁨은 곧 여운이 되어 마음을 울린다. 長愛人…. 長愛人…. 長愛人…. 마음속에 충만함이 가득 차오른다.

/사진: 무지개, 거북이 모터 달다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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