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잘못은, 잘못 키운 엄마만의 탓일까?
아이의 잘못은, 잘못 키운 엄마만의 탓일까?
아이의 잘못은, 잘못 키운 엄마만의 탓일까?
2017.07.04 16:45 by 류승연

“모두 아이를 잘못 키운 내 탓”

부모의 입장에서 육아의 실패를 인정해야 하는 마음은 쓰다. 죽어라 달려왔는데 이 길이 아니라니. 잘못 왔다. 다시 먼 길을 돌아가야 한다. 더 쓰라린 게 뭐냐면 이 모든 결과가 엄마인 나의 선택으로 행해졌다는 것이다. 온전한 내 책임. 아이를 잘못 키운 건 엄마인 나다. 이 사실이 견딜 수 없이 버겁다.

특수학교로 전학한 지 50여 일. 아들은 힘겹게 적응 중이다. 수업 중 교실 바닥에 누워 있기 일쑤고, 이동 중에는 제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며, 점심시간에는 밥을 거의 먹지 않는다고.

바뀐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힘들지만 점심을 안 먹어 기운조차 없다 보니 아들은 병이 나 버렸다. 전학한 뒤 벌써 두 번째. 삼복더위에 고열로 고생 중이다. 컨디션이 안 좋은 아들은 더더욱 천덕꾸러기가 된다. 힘든 건 어른들이다. 말을 못 하는 아들의 짜증을 몸으로 받아내는 학교 선생님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01

담임선생님과의 전화통화. 한숨이 길게 쉬어진다. 아들의 문제행동(부적응 행동, 도전적 행동)이 문제다. 교실 바닥에 누워 있는 것도 문제지만 선생님들을 발로 차고 머리로 들이박는 게 더 문제라고. 작년 초 가슴을 졸이게 했던 할퀴기가 사라지자 이젠 발차기와 박치기가 자리를 잡았다(ㅠㅠ).

열흘 전인가. 선생님이 내게 물었다. 학교에서 보이는 문제행동을 집에서는 어떻게 대응하느냐고. 그때 난 “집에서는 미운 짓을 하나도 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집에서는 누워 있지도 않고, 엄마를 공격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집에서 미운 짓을 하는 건 딸내미다. 초등학교 2학년답게 말대꾸는 기본이요. 반항은 옵션이다. 반면 아들은 얼굴만 봐도 꿀이 떨어질 정도로 예쁜 짓만 오구오구오구. 도대체 미워할 구석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선생님에게 그 대답을 한 뒤부터 계속 마음에 찜찜함이 남는다. 밖에서는 집에서와 다른 행동을 보이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을 찾기 시작. 의외로 쉽게 답이 나온다.

집에서 나는 아들이 싫어할 일을 시키지 않았다. 아들이 좋아하는 대로 하루의 스케줄을 맞추고 있었다. 아들이 문제행동을 보이는 지점을 미리 알고, 아예 그런 행동이 나올 환경을 처음부터 차단하고 있었다.

하지만 인생은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 수가 없는 법. 사회 안에 뒤섞여 살려면 싫은 것도 감내할 줄 알아야 했다. 난 그것을 비장애인인 딸에게는 확실히 가르치면서 장애인인 아들에게는 가르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집에서는 천사 같은 아이가 학교나 치료실만 가면 문제행동이 불거졌다. 담임선생님과 오랜 통화 후 앞으론 집에서도 아들이 싫어하는 일을 시키기로 했다. 감기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다그쳐가며 착석 연습을 시키고 있는데 문득 한편에선 억울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 문제행동이 나오게 너를 키운 건 분명 엄마인 내 죄야. 그건 맞아. 근데 너를 키우는 게 왜 꼭 나 혼자만의 책임이어야 하지? 나는 너를 방치한 적도 없고, 너의 일거수일투족에서 눈을 뗀 적도 없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가며 너를 키웠는데…. 나의 30대는 오직 김동환이라는 이름 석 자에 점령당해 없어져 버렸는데…. 그런데 나는 왜 이제 와서 나홀로 죄인이 되어야 하는 거지? 왜? 왜? 왜?

02

주변의 그 어떤 도움도 없이 나 홀로 장애 아이를 키우느라 쩔쩔맸던 지난 시간이 스쳐 지나간다. 뭐가 뭔지, 이게 맞는 건지….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아마 상황은 많이 달라졌으리라.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 수 있는 구조적인 시스템이 구축돼 있었더라면 시행착오를 많이 줄일 수 있었으리라.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는 건, 장애 아이를 교육하는 데 부모가 방향성을 잡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방향성은 잘못된 곳을 향하고 있으면 안 된다. 어떤 게 옳은 방향인지는 수많은 전문가의 조언과 고민, 앞서 장애 아이를 키운 선배 맘들의 사례에서 배울 수 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는 건, 장애 이해 교육을 배울 수 있는 기회들이 지천으로 널려 있다는 사실이다. 이전까지의 나는 몇 달에 한 번씩 복지관에서 공고가 날 때만 장애 이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줄 알았다. 그 외의 다른 길은 없는 줄 알았다. 엄마 스스로가 무작정 책을 펴고 잘 이해되지도 않는 내용을 독학해야 하는 줄만 알았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는 건, 장애 아이 엄마들 간의 연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구성돼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엄마들 모임이라는 건 동네 찻집에서 만나는 게 전부인 줄만 알았다. 장애인 부모회가 있다는 얘긴 들어봤지만 가입하는 방법도 몰랐고 엉뚱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장애 엄마 두 명에게 부모회에 관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한 명은 국회 앞에서 삭발한 이야기를, 한 명은 시청에 무력 진입한 이야기를 들려줬던 터라 ‘부모회는 과격한 곳’이란 선입관도 갖고 있었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국회 앞에 나가 투쟁을 외칠 시기는 아니라 생각했고 그 때문에 부모회라는 건 알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부모회는 한 곳도 아니었고, 장애 유형별로 여러 부모회가 존재해 있었고, 가입하면 삭발을 해야 하는 그런 무서운 곳들도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자조모임이나 스터디모임, 장애 인식 개선을 위한 동아리 모임 등 엄마들의 모임은 각 지역별로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있는 건, 이런 엄마들 간의 모임과 각종 교육의 기회를 잘 이용하면 장애인인 내 아이도 얼마든지 통합교육의 틀 안에서 잘 자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이다.

03 (2)

앞서 만난 무지개모임의 엄마들은 스스로가 공부하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반학교에 아이를 보내 통합교육을 하는 데 있어 부모가 적극적으로 방향성을 잡고 학교 측에 교육방법을 제안하고 건의할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일반학교 재학 당시 무조건 고개 숙인 죄인으로 살고, 교사들 말에는 “네네. 감사합니다”만을 연발했던 난 결코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 나도 내 아이에게 맞는 무언가를 더 요구할 수도 있었고, 내가 나서서 도움을 줄 수도 있었다. 얼마든지 그래도 되는 거였다.

3번에 걸친 선생님의 권고에 특수학교로의 전학을 결정해 버린 대목에서 후회가 된다. 특수학교에서의 교육은 마음에 들지만 통합교육이라는 과실을 너무 빨리 포기해버린 듯해 미련이 남는 것이다.

마침 양평에 위치한 조현 초등학교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쌤스토리의 특수교육이야기 대표이사인 김성남 교수의 장애 이해 교육에 비장애 아이들의 엄마가 60여 명이나 참석했다는 소식이다.

이 학교의 비결은 뭐지? 아니, 비결을 묻기에 앞서 나 역시 이전 학교에서 일반 엄마들을 대상으로 한 장애 이해 교육을 추진이라도 해봤어야 하는 것 아닌가? 무언가 방법을 찾아보기도 전에 미리 포기부터 해 버린 건 아닌지 이제야 후회가 되는 것이다.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그때부터 알았더라면…. 아마 아들의 문제행동은 지금처럼 큰 문제가 되도록 불거지지도 않았을 테고, 아마 통합교육의 과실도 조금은 더 먹을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04

여기서 질문이 나온다. 왜 그때는 몰랐냐고. 왜 혼자서 쩔쩔매다 지금에 와서 아이를 잘못 키운 자신을 탓하고 있느냐고. 왜냐면,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기관이나 주민센터, 학교, 병원, 복지관, 각종 치료실의 그 누구도 발달장애 분야에 이미 아이들을 성인으로 키운 선배 맘들에 의해 이런 시스템과 모임이 구축돼 있고 이런 강의와 교육이 진행되고 있다는 걸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혼자 알아봤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언제? 어떻게? 어디서? 존재 자체도 몰랐는데 어디에서 이런 정보들을 알 수 있었을까? 발달장애 분야의 네트워크나 연대, 홍보나 컨설팅 등이 아쉬운 대목이다.

만일 이전의 나처럼 지금도 혼자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엄마들이 있다면 먼저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라고 권하고 싶다. 페이스북에 들어가 검색을 하다 보면 소위 이 바닥에서 활약하고 있는 몇몇 인사들을 만나게 된다. 그때부터가 시작이다. 그들의 게시물을 통해 정보를 얻고 공부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라.

혼자서 쩔쩔매지 않아도 된다. 알고 보면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 다만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알고 나면, 그때부터가 변화의 시작일 것이다. 아마도.

/사진: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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