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의 인권 마법사 제디(하)
고대 이집트의 인권 마법사 제디(하)
2017.07.11 15:49 by 곽민수

이번 화에선 지난번에 이어 고대 이집트 이야기 속 등장인물이자 마법사였던 제디(Djedi)에 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펼쳐 보겠습니다.

<웨스트카 파피루스> 이야기에 따르면 제디를 쿠프(Khufu) 왕에게 소개한 사람은 호르제데프(Hor-Djedef, 혹은 제데프호르) 왕자였습니다. 호르제데프는 파라오 쿠프의 아들이자, 쿠프에 이어서 왕위에 올라 파라오가 되는 제데프라와 카프라의 배다른 형제이기도 합니다. 그는 <호르제데프의 가르침>라는 일종의 교훈집을 직접 남긴, ‘현자’의 속성을 다분히 갖고 있는 인물입니다.

호르제데프는 제디를 다음과 같이 소개합니다.

“폐하, 제드-스네페루에 살고 있는 제디라고 불리는 평민(여기에서의 평민은 신분을 의미한다기보다는 궁정에 소속되지 않은 인물이라는 의미입니다.)이 있습니다. 그는 110살인데(110살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가장 이상적이라 여겼던 나이입니다.), 여전히 하루에 500덩어리의 빵, 반 마리의 소를 먹고 100잔의 맥주를 마십니다. 그는 잘린 머리를 다시 붙이는 능력을 갖고 있고, 사자를 그의 바로 뒤에서 얌전하게 걷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는 ‘토트 신의 비밀의 방’의 숫자를 알고 있습니다.”

카-아페르의 목상. 기원전 2500년경. 카이로 이집트 박물관 소장. 제디는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덩치를 한 카-아페르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이 소개에 따르면 제디는 확실히 기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110살이라는 그의 나이와 그의 엄청난 식사량은 그가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들입니다. 제디가 갖고 있는 마법 능력도 분명히 주목할 만한 것이지만, 쿠프가 제디에게 관심을 보인 것은 다른 이유 때문입니다.

<웨스트카 파피루스>에는 이와 같은 호르제데프의 소개 바로 뒤에, 쿠프가 자신을 위한 ‘그의 지평선’을 만들기 위해 ‘토트 신의 비밀의 방’을 찾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의 지평선’은 쿠프의 피라미드, 즉 대피라미드를 뜻합니다. 고대 이집트어에서 피라미드는 메르(mr)라고 불렸지만, 이 메르라는 일반명사 이외에 이집트에서 세워진 피라미드들은 다 각자의 이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대피라미드의 이름은 아케트-쿠프(Akhet-Khufu), 즉 ‘쿠프의 지평선’이었습니다.

<웨스트카 파피루스>에서는 쿠프의 피라미드와 ‘토트 신의 비밀의 방’을 연결지어서 이야기합니다. 이를 통해 다른 피라미드들에 비해 무척이나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는 쿠프 피라미드의 내부구조에 대해 약간은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비록 <웨스트카 파피루스>가 정확한 역사 기록은 아니긴 하지만 말입니다.

기자에 있는 쿠프의 대피라미드

비밀의 방에 관심이 많던 쿠프는 당연하게도 제디를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쿠프는 즉시 호르제데프에게 명합니다.

“나의 아들 호르제데프여, 어서 가서 그를 내게 데려오라!”

호르제데프는 파라오의 명대로 즉시 배를 준비하여 남쪽으로 떠납니다. 배가 제드-스네페르 연안에 이르자 왕자는 흑단으로 만들어진 화려한 가마로 갈아타고 제디에게 향합니다. 왕자가 도착했을 때 제디는 멍석에 편하게 누워서 하인들에게 마사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역시 기인다운 모습입니다. 호르제데프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제디의 젊음에 찬사를 보내고 왕이 그의 소환을 명했다는 사실을 정중하게 전합니다. 제디는 호르제데프에게 역시 정중하게 답례한 뒤 몇 가지 문서들을 챙겨서 제자 몇 명과 함께 호르제데프를 따라 파라오의 궁정으로 떠납니다.

궁정에 도착한 제디는 즉시 파라오를 알현하게 됩니다. 제디는 파라오를 보자마자 “왕이시여, 부름을 받은 자가 지금 왔습니다.”라고 매우 공손하게 인사합니다. 그런 그에게 파라오는 다짜고짜 “그들이 말하는 것이 사실인가. 그대는 잘린 목을 다시 붙일 수 있다고 하던데….”라고 묻습니다. 제디는 파라오의 의심 어린 질문에 “예, 저는 그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폐하.”라고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이에 쿠프는 즉각 “감옥에서 죄수 한 명을 데려와라. 그리고 그를 참수해라!”라고 주변에 명합니다. 그런데 파라오의 이와 같은 잔혹한 명령에 대하여 제디가 보인 반응이 아주 주목할 만합니다. 제디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파라오의 명령에 대해 강력하게 항의의 뜻을 표합니다.

“폐하, 인간은 안 됩니다. 그와 같은 짓을(머리를 잘랐다 붙이는 행위를) 고귀한 존재에게 행하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제디는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그는 가장 낮은 지위를 갖고 있는 감옥의 죄수조차도 그 ‘인간 존엄성’의 범주에서 제외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제디는 이 ‘인간 존엄성’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파라오라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도 굴복하지 않습니다. 결국, 제디는 존귀한 한 사람의 목숨을 구해냅니다. 제가 제디를 ‘인권 마법사’라고 칭하는 것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제디의 반응에 대해 쿠프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마 쿠프는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어색해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파피루스에는 제디의 항변 바로 다음 “그래서 거위를 끌고 와 머리를 잘랐다”라고 쓰여 있는 것을 보면, 파라오도 제디의 당당한 항의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파라오 앞에서 자신의 꿈을 설명하는 요셉. 아서 레지날드 1894년 작. 아마 제디도 그림에 묘사된 것과 비슷한 모습으로 파라오를 알현했을 것입니다.

제디는 사람 대신 잘린 거위의 목을 마법의 주문을 외워 다시 붙여 성공적으로 부활시킵니다. 쿠프는 한 번의 실험으로는 부족했는지, 이후 케티아 거위(보통의 거위보다 조금 더 큰 크기의 종)와 소를 가지고 제디에게 같은 마법을 반복해서 보여줄 것을 명합니다. 당연히 제디는 그 동물들에게도 마법을 구현하는 데 성공합니다.

이렇게 해서 제디의 마법 시연은 끝이 나고, 쿠프는 본격적으로 제디에게 자신의 관심사인 ‘비밀의 방’에 대해서 묻기 시작합니다. 제디는 ‘비밀의 방’이 헬리오폴리스에 있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이후 제디는 쿠프에게 왕자들의 출생과 왕조(즉 쿠프의 4왕조)의 운명에 대한 예언을 들려주고, 미래에 쿠프가 겪게 될 어려움을 마법으로 해결해주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 쿠프는 그에게 큰 상을 내리고, 왕자 호르제데프의 저택에서 살 권리까지 안겨주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습니다.

고대 이집트는 파라오들이 자신 커다란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많은 이들을 착취하던 사회로 널리 알려진 듯합니다. 그런 면도 전혀 없지는 않지만, 사실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어쨌거나 그곳도 분명히 사람이 살아가는 곳이었고, 그 속에서 일찌감치 인간의 존엄성을 인식하고 그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던 제디와 같은 이들도 분명히 존재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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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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