츤데레의 나라
츤데레의 나라
2017.07.19 13:43 by 박경린

춥다. 참 춥다. 날씨도, 사람들도…

민스크에 처음 도착했을 때 느낀 점이다. 거리마저 휑하니 차가움은 배가된다. 사실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특유의 한기를 느끼며 산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안다. 그 차가움 뒤에 숨겨진 따뜻함에 대해서 말이다.

 

 

2-1

 

 

2-2

 

도착 당시 벨라루스 시내 풍경

햇살이 귀한 나라, 미소가 귀한 나라

‘러시아 사람들 되게 험악하고 불친절하다던데?’ 

‘소련사람들은 늘 기분이 나빠 보여.’

‘다들 무섭게 생겼잖아.’

벨라루스를 러시아 옆 나라라고 소개하면, 여지없이 이런 답변들이 돌아온다. 하지만 난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주의다. 내가 웃으면 주위도 밝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여기서도 그랬다. 이 지역 국가 사람들의 성격과 상관없이 내가 웃는 얼굴로 대하면 나에게도 웃어줄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헛된 바람이었다.  벨라루스에 입국하기 위해 리투아니아-벨라루스 국경을 넘을 때 만난 군인들의 얼굴엔 옅은 미소조차 없었다. 계속 웃고 있는 나만 바보되는 느낌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다. ’웃는 것에 참 인색한 사람들이구나.’

한번은 현지 우체국을 찾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 택배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직원은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1화 참고)  열심히 번역기로 만든 문장을 외워 자신있게 말했지만, 못 알아듣겠다며 되려 화를 낸다. 답답한 마음에 번역기를 직접 보여줘 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 최대한 살갑게 다가가도, 돌아오는 건 짜증과 무표정.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나도 그들과 비슷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하게 됐다. 일종의 생존방식이랄까. 무시당하지 않기위해 나도 일부러 웃음을 잃었다. 이런 악순환이 답답하다가도 문득 사람들이 안쓰러워 질 때가 있다.

무엇이 이 사람들을 이리도 딱딱하고, 냉랭하게 만들었을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결론은 하나. 바로 날씨였다. 지루하게 늘어지는 장마철을 한번 생각해보라. 괜스레 늘어지고 모든 게 귀찮아 지지 않나. 습한 날씨 탓에 쓸데없이 예민해지기도 한다. 반대로 해가 쨍한 봄날에는, 유난히 발걸음이 산뜻하고 가볍다. 날씨란 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사람의 기분과 성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

2월말의 벨라루스(왼쪽)와 5월의 벨라루스(오른쪽)

벨라루스는 겨울에 영하 30도까지도 내려가는 나라다. 여름에는 20도까지 올라가지만 상대적으로 습하지 않고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체감으론 그보다 훨씬 선선하다. 무엇보다 벨라루스는 해가 귀한 나라다. 안타깝게도 해가 나는 날이 많지 않다. ‘어둡고 추운 기운이 감싸는 분위기 속에서 사람들이 웃음을 잃은 것은 아닌가’하는 추측을 조심스레 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고작 날씨가 인생까지 망칠 수 있을 소냐. 사람들은 그 가운데에서도 즐거움을 찾는다.

조촐한 산책, 향긋한 차로 온기 꽃피우다

벨라루스 사람들에게 산책은 단순히 바람 쐬는 것 이상이다. ‘산책하자’는 게 거창한 약속이 될 정도로 산책을 좋아한다.

 

2-5

 

날씨가 조금 풀릴라치면, 사람들은 정신 없이 밖으로 나간다. 현지인들은 “이 햇빛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니, 해가 날때 어서 밖에 나가서 누리라”고 한다. 실제로 밖에 나가보면 벤치에 사람들이 그득하다. 뭐 대단한 걸 하는 것도 아니다. 햄버거나 피자 한 판을 사서 벤치에서 먹거나 수다를 떨고, 햇빛을 만끽한다. 그냥 넋 놓고 앉아 있는 사람들도 많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그제서야 미소가 보인다.

테라스에서 시간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넓디 넓은 거리를 채운다.
걸을 공간이 충분한 벨라루스의 거리는 산책하기에 딱이다

차를 마시는 것도 그들이 온기를 회복하는 방법 중 하나다.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동료들에게 “내가 여기 와서 5개월동안 마신 차가, 한국에서 20년동안 마신 차보다 많은 것 같다”고 말한 적도 있을 정도다.

여기 직원들은 아침에 오자마자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차 혹은 커피를 타 마신다. 각각의 사무실 서랍에는 늘 차와 커피가 가득 쌓여있다. 밖에서 커피를 사 마시는 우리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벨라루스인은 커피 원두와 설탕, 그리고 우유를 항상 준비해놓고 원할때마다 타마신다. 녹차, 홍차, 갖가지 과일 차 등 종류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한 겨울에도 뜨거운 음료 마시는 걸 별로 안 좋아하던 나도 어느새 하루에 한 잔씩 꼭 차를 마시는 사람이 되었다. 한창 추울 땐 하루에 다섯 잔도 넘게 마신다. 이렇게 차를 마시는 것이 여기 사람들에게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아늑함을 주는 것 같다.

벨라루스 사람들의 낭만과 따뜻함을 엿볼 수 있는 마지막 예는 바로 꽃이다. 벨라루스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여성의 날'을 맞았었다.  전 소련의 지배를 받은 국가들에선 여성의 날을 크게 기념한다고 한다. 벨라루스 또한 그랬다.  여성의 날인 3월 8일이 공휴일이고, 당일은 물론이고 전 후로 여성들에게 꽃과 선물을 준다. 길거리에는 마치 졸업식 학교 앞을 연상시키듯  꽃을 파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벨라루스에서 이런 풍경은 그저 일상이란다. 그러고 보니 지하보도, 지하철 입구등 길거리에서 꽃을 파는 할머니들을 쉽게 볼 수 있고, 꽃을 파는 상점도 유독 많다.

 

 

2-10_400

 

 

2-11_400

 

'사는 것이 급급하고, 차가운 것에 익숙해져 버린 사람들에게 꽃이 다 무슨 소용이람?'이란 생각은 꽃을 든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싹 바뀌었다. 꽃을 고이 품고 소중한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들, 화분을 사들고 행복하게 걸어가는 사람들, 거리 중간중간에 봄을 알리는 꽃을 심는 사람들에겐 예의 그 차가운 벨라루스가 느껴지지 않았다.

겉으로는 그 어느 민족보다 차갑게 보이지만 그 차가움 속에서 소소하게 따뜻함을 찾아내는 벨라루스인들이 이 시대의 '츤데레' 아닐까 싶다. 벨라루스의 이런 반전 매력은 일상의 소소한 재미로 다가온다.

 

/사진: 박경린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1년 사이 가장 주목할만한 초기 스타트업을 꼽는 '혁신의숲 어워즈'가 17일 대장정을 시작했다. 어워즈의 1차 후보 스타트업 30개 사를 전격 공개한 것. ‘혁신의숲 어워즈’...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서로 경쟁하지 않을 때 더욱 경쟁력이 높아지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