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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엔 소수민족 탄압 연구소가 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 중국에 참 잘 어울립니다. 한족을 포함해 56개의 소수민족이 얽혀 사는 중국 대륙에선 심심찮게 폭동이니 소요 사태 소식을 접할 수 있죠.

 

다양한 민족이 서로 화합하고 단결하자는 취지로 ‘민족대가정(民族大家庭)’이란 구호까지 내걸었지만, 실상은 조금 다른가 봅니다.

 

(사진:Moloko88 /shutterstock.com)
(사진:Moloko88 /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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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시선 

 

최근 중국도 표현의 자유가 비교적 허용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지 최대 포털 사이트와 SNS에는 여전히 검색이 불가능한 단어가 있죠. 바로 ‘티베트에 자유를(Peace in Tibet)’이라는 문장입니다.

 

해당 검색어를 통해선 관련된 자료 검색이 쉽지 않거나, ‘해당 내용 없음’이라는 안내문 사이트가 뜨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만큼 중국은 티베트 독립과 자유를 거론하는 것조차 불편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티벳 불교 승려들과 ‘티벳에게 자유를’이라는 문구가 적힌 광고물. (사진:이베이(ebay.com))
티베트 불교 승려들과 ‘티베트에 자유를’이라는 문구가 적힌 광고물. (사진:이베이(ebay.com))

 

반면, 그런 그들이라고 할지라도 웬일인지 티베트를 포함한 수십 개에 달하는 소수 민족에 대한 연구만큼은 오랜 시간, 큰 비용을 들여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마치 지난 19~20세기 일본 제국이 우리나라를 침략, 무력으로 지배하기 위해 오랜 시간 조선과 조선인의 역사, 언어, 풍습 등을 치밀하게 연구했던 것처럼 말이죠.

 

일반에게는 공개하지 않는, 치밀하면서도 세밀한 그들만의 연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진행되고 있는 것일까요.

 

영화 ‘티벳에서의 7년’ 중(사진:네이버 영화)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 중(사진: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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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시선

 

실제로 소수 민족을 겨냥한 중국의 특수화된 정책은 오랜 시간에 걸쳐 매우 꼼꼼하게 진행돼 오고 있습니다.

 

우리도 잘 아는 것이 하나 있지요. 조선족 동포와 그들이 거주하는 압록강 일대를 아우르는 동북 3성에 대한 ‘동북공정’. 이 역시 대표적인 소수 민족 정책으로 볼 수 있습니다.

 

뿐만이 아니라, 타이완, 티베트, 신장 위구르 등 독립을 꿈꾸는 세력이라고 여겨지는 민족이라면 그들에 대한 연구 과정이 더 세밀하게 진행됩니다. 이를 주로 행하는 곳이 베이징 중심지 곳곳에 설립돼 운영되고 있는 소수민족 연구소들입니다.

 

커다란 대학 건물을 연상시키는 대형 연구소는 각각 연구하는 소수 민족의 이름을 간판으로 달고, 소수 민족의 역사와 특성, 종교 등에 맞춰 효과적인 탄압과 지배가 가능한 정책을 설계하고 구획하는 업무를 담당해오고 있습니다.

 

이들은 중국 사회과학원에 소속돼 있으며, 사회과학원 민족연구소(中国社会科学院民族研究所) 하부 기관으로, 연구소에서 진행한 각종 연구 결과물은 곧장 사회과학원 내부 보고를 통해 이듬해 국무원이 결정하는 소수 민족 지배 논리로 적극 활용되곤 합니다.

 

‘아름다운 티벳’이라는 문구가 티벳을 배경으로 중국어로 적힌 사진. (사진:시짱중국청년여행사)
‘아름다운 티베트’라는 문구가 중국어로 적힌 티베트 배경 사진. (사진:시짱중국청년여행사)

 

그 정책 가운데 상당수는 저마다 다른 역사와 언어, 문자, 종교를 가진 소수 민족을 중국이라는 거대한 국가 안에 묶어두려는 것이 목적입니다.

 

티벳 자치구 내에 존재하는 중국 인민정부 정문 모습. (사진:웨이보)
티베트 자치구 내에 존재하는 중국 인민정부 정문 모습. (사진:웨이보)

 

인구 구성의 약 90%를 차지하고 있는 한족(漢族)이 베이징, 상하이 등 대륙의 서남부 연안 지역을 중심으로 밀집해 거주하고 있는 반면, 한족을 제외한 55개 소수 민족의 주요 거주지는 대도시가 포진해 있지 않은 동북쪽 지역이 대부분이죠.

 

한족이 차지하는 인구 비율이 압도적임에도 불구하고, 민족의 거주 지역의 규모만 보면 소수 민족이 차지하는 지역의 분포가 훨씬 더 광활한 것이 사실입니다.

 

때문에 중국 정부가 소수 민족 지배를 용이하게 하는 정책을 개발하고 실행하는 것은 곧 그들의 원하는 방향으로 중국 전역을 지배하기 위해서죠.

 

그중에서도 티베트는 그들이 지배하기에 가장 예민한 민족으로 꼽힙니다. 지난 1949년 마오쩌둥이 이끌던 공산당이 중국을 통일하며 공산당은 주변 소수 민족 국가를 복속시키는 계획을 실시하게 됩니다. 소수 민족 복속 계획이 실시된 지 불과 몇 년 후인 1951년, 중국 공산당 인민해방군은 수만 명의 무장 군대를 이끌고 티베트 라싸를 점령했습니다. 당시 군대를 양성하지 않았던 티베트 정부는 한 차례의 무력 전쟁도 치르지 않고 수도 라싸를 내어주게 되었죠.

 

중국 공산당은 당시 티베트의 외교권과 군사권을 중국이 소유하고, 티베트가 중국의 속국임을 인정하는 협정서를 강제로 체결하기 위해 위조된 국새를 사용하기도 했죠. 이후에도 수십 개의 소수 민족국가를 자국에 복속시켜 60여 년 동안 무력으로 지배해오고 있습니다.

 

어쩌면 중국이 소수 민족 각각에 걸맞은 맞춤형 탄압 정책을 만들어내는 건 과거의 무력 재배를 영원히 지속시키려는 방편일지도 모릅니다. 대표적인 소수 민족 연구 기관인 티베트 전문 연구소 ‘시짱자치구 사회과학원(西藏自治区社会科学院)’의 연구 결과, ‘지난 60여 년간 중국의 무력 지배를 가장 용이하게 만든 티베트인들의 특성은 그들이 믿는 ‘티베트 불교’에서 기인한다’고 기록돼 있죠.

 

티벳의 과거 역사와 민족, 종교, 경제 등에 대한 연구를 담은 중국 정부발(發) 연구 보고서들. (사진:중국사회과학원(中国社会科学院))
티베트의 과거 역사와 민족, 종교, 경제 등에 대한 연구를 담은 중국 정부발(發) 연구 보고서들. (사진:중국사회과학원(中国社会科学院))

 

티베트 불교를 믿는 티베트인들은 군인과 군대를 양성하는 사업을 하층민이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 같은 특성 때문에 군대의 규모를 늘리거나 신식 무기를 사들여 국방력을 키우는 일에 민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군대가 살생을 목적으로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며, 그런 직업을 양성하는 활동은 순수하지 못하다고 폄하하는 경향이 짙다는 게 연구소의 분석이죠.

 

실제로 티베트 불교에선, 불교에 귀의하는 것이 사람으로 태어나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까닭에 한 집에 한 자녀 이상은 반드시 출가 후 승려가 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죠. 600만 명에 불과한 티베트 인구 중 승려의 수만 12만 명을 넘어서는 걸 보면, 그 나라에서 불교와 승려가 가진 위상을 잘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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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무력으로 지배하고 있는 티베트 자치구와 중국인민공화국 전체를 아우르는 지도. (사진:웨이보)

 

너무도 당연하게, 현재 티베트가 보유하고 있는 군대와 군인의 수는 전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중국이 무력으로 티베트를 점령한 1949년 당시는 말할 것도 없고요. 당시 맨손으로 중국 공산당의 무력 침략에 항전했던 8000여 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첫 번째 항전에서 사망했다는 기록을 보면 그 나라의 분위기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선 “티베트 스스로 중국의 무력 지배를 용이하게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실제로 최근 티베트 청년들 가운데 일부는, 티베트 불교가 가르치는 ‘평화적인 방식으로 자유를 갈구하는 행위’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 같은 주장은 티베트를 떠나 인도 각 지역에서 출생하는 아이들이 늘어가는 것과 비례합니다. 실제로 인도 북부와 남부, 멀리는 부탄과 네팔에 이르기까지 티베트인들을 위한 자치구에는 매년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망명하는 티베트인들의 수가 2천 명을 넘어서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중국 정부의 무력 통치와 지배를 피해, 진짜 자신들의 역사와 언어, 문자를 배우고 싶다는 의지 하나로 험난한 히말라야 산맥을 넘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 망명 정부가 자리한 인도 일부 지역에 닿기 이전에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50여 명의 한 무리가 티베트에서 출발해 히말라야 산맥을 넘기 시작한다면, 평균 6~7명만 겨우 살아서 인도에 소재한 티베트 자치구에 도착한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죠.

 

이렇게 모인, 지난 반세기 동안 지속된 망명 정부는 최근 들어 다양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종교 지도자 달라이 라마를 중심으로 정치, 경제, 사회 전반적인 사항을 운영해왔으나 최근엔 “달라이 라마는 단순히 종교적인 지도자의 역할만 담당해야 하며, 정치와 경제, 사회 등 각 분야는 망명 정부 내부에 존재하는 분화된 권력이 각각 지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죠.

 

사실 티베트에선 달라이 라마가 국가의 모든 사항을 아우르는 통치를 담당해왔습니다. 현세의 달라이 라마가 사망할 경우에는 새로 환생한 달라이 라마를 찾는 순환이 반복됐죠.

 

하지만, 현재 14대 달라이 라마는 민주주의 방식의 정치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시대의 목소리에 따라, 지난 2010년 일명 티베트 국민 대표 회의를 창설하고 선거를 통해 국민의 의사를 반영할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등의 작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는 당시 국민 대표 회의 창설에 대해 “티베트인들이 원치 않는다면 나 역시 흔쾌히 지도자의 자리에서 물러나고 싶다”라며 “망명 정부가 아닌 진짜 정부를 세우고, 우리의 땅으로 돌아가 모든 티베트인에게 자유가 주어지는 날이 도래한다면 정치 지도자가 아닌, 한 명의 종교적 수행자로 살아갈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습니다.

 

중국 최대 규모의 국가 연구기관인 중국사회과학원 모습. (사진:바이두 이미지 DB)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60여 년 동안 망명 정부의 처지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티베트의 독립 의지 역시 중국의 막강한 무력과 대규모 자금 동원 앞에 가로막혀 있죠. “우리도 무력을 사용해 독립 의지를 관철해야 한다”는 강경한 목소리가 제기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티베트인은 여전히 달라이 라마가 주장하는 평화적인 방식을 통한 독립을 지지합니다. 전 세계 많은 국가와 시민들 역시 달라이 라마의 비폭력 평화주의에 손을 들어주고 있고요.

 

현재 중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티베트를 포함한 수백 여 곳에 달하는 소수 민족 연구기관의 존재를 통해, 과거 문화 통치와 무력 통치를 번갈아가며 조선의 완전한 지배를 노렸던 일제강점기를 떠올리게 됩니다. 중국 내 힘없는 소수민족들의 목소리와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싶은 건 그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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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소개

중국에 대한 101가지 오해

언론에 의해 비춰지는 중국은 여전히 낡고, 누추하며, 일면 더럽다. 하지만 낡고 더러운 이면에 존재하고 있는 중국은 그 역사만큼 깊고, 땅 덩어리만큼 넓으며, 사람 수 만큼 다양하다. 꿈을 찾아 베이징의 정착한 전직 기자가 전하는 3년여의 기록을 통해, 진짜 중국을 조명해본다.

필자 소개

서울에서 중앙일간지 정치부 국회출입기자로 4년 여간 활동, 서른을 한 해 앞둔 무렵, 아무 연고도 없는 베이징으로 무작정 건너와 현재는 프리랜서 통·번역, 여행 칼럼을 쓰며 자유로운 삶을 만끽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