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에 특수학교가 들어온다면
우리 동네에 특수학교가 들어온다면
우리 동네에 특수학교가 들어온다면
2017.07.18 18:24 by 류승연

“이 아이들 말이예요. 예전에는 ‘다큐’인 줄 알았거든요. 근데 같이 지내다 보니까 완전 ‘예능’인 거예요.”

장애 아이들과 함께 미술작업을 하는 ‘시스 플래닛’의 오윤선 대표가 한 말이다. 이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알고 있는 나는 웃음이 씨익. 오 대표도 웃음이 씨익. 옆에 있던 김윤우 아트디렉터도 웃음이 씨익.

씨익~하고 지어지는 미소의 의미는 아는 사람들만 안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발달장애인의 매력. 그 순수함, 그 투명함, 그 진솔함. 그리고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웃음이 터지게 하는 온갖 예능의 순간들.

아~ 어쩌지? 이 매력을 널리 알리고 싶은데 이게 말로 해서는 제대로 전달이 안 되고. 시간이 흘러도 언제까지나 어린아이인 자식을 키우느라 몸은 힘들어도 부모들 입에서 ‘천사 같은 내 새끼’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얘기를 꺼낸 건 ‘편견’이라는 부분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다. 서울 강서지역 특수학교 설립을 둘러싼 주민토론회가 파행으로 치달은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사진:jtbc뉴스 캡쳐 화면)

지역주민들이 표면적으로 내세운 이유는 ‘집값’이지만 실제 이유는 아마도 ‘편견’ 때문이지 아닐까 싶다. “발달장애인은 위험해.” “이유 없이 그냥 싫어.” “장애는 내 인생과는 무관한 단어니까 아예 그 쪽과는 접촉을 안 하고 사는 게 나.” 아마도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오늘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어우러져 살았을 때 좋은 점도 있다는 걸 얘기해 보고자 한다. 그것도 일반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엄마의 입장에서 말이다. 나 역시 장애아이의 엄마이기도 하지만 ‘일반’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니까.

올해 초 동환이가 일반학교에 다녔을 때 반에서 유난히 아들을 잘 챙기던 영환이(가명)라는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의 특징은 ‘츤데레(겉으론 무심한 척 하면서 뒤로 은근슬쩍 챙겨주는 모습을 나타내는 일본어의 합성어)’. 앞에서 눈에 띄게 챙기는 게 아니라 뒤에서 은근슬쩍 아들에게 필요한 것을 챙겨주던 속 깊은 아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영환이의 태도. 영환이가 우리 아들만 챙겼을까? 아니다. 동환이가 전학을 올 때쯤 이 아이는 어느새 반 친구들을 챙기는 멋진 사내가 되어 있었다.

영환이 엄마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니 “아들의 몰랐던 모습을 발견하네요”라고 말한다. 집에서 알지 못했던 모습이라면 학교라는 사회 속에서 길러지게 된 덕목이리라. “하하하. 영환이의 좋은 인성이 우리 아들 때문에 길러졌어요”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거야말로 뻔뻔한 자가당착이겠지.

하지만 이 부분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이타적인 태도로 주변을 살피는 성품을 갖고 있는 아이라도 그것을 실행할 대상이 없으면 성품은 발현되지 않는다. 그런데 영환이에겐 마침 동환이가 있었다. 내재돼 있던 성품이 발현될 수 있는 좋은 대상이 있었던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곳에 손을 내밀어 본 경험이 있는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주변을 살필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난다. “나에게 틀렸다고 하지 않고 다르다고 말해주던 남자친구, 항상 양보하고 이해해주던 남자친구, 알고 보니 장애인 누나가 있었더라구요”라던 어느 여대생의 고백은 주목할 만하다.

(사진:Jaren Jai Wicklund/shutterstock.com)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기 위해 모인 주민들 중에는 ‘내 자식을 위해’라는 명분으로 온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이상한 행동을 하는 장애 아이들이 귀하디귀한 내 자식에게 해코지라도 할까봐 불타는 사명감으로 “결사반대”를 외치는 것이다. 님비현상이라는 국민적인 욕을 온 몸으로 받아가면서도.

그렇게 부모의 통 큰 차단 아래 귀하디 귀하게만 큰 아이는 과연 어떤 어른으로 자라게 될까?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의 눈빛을 외면하고, 울고 있는 장애아이 엄마에게 “쇼하지 말라”고 소리치는 부모의 모습을 지켜본 ‘정상인’ 아이들은 과연 어떤 어른으로 자라게 될까? 그 아이들이 자라서 늙고 도움이 필요한 부모들을 챙길 수 있을까? 나만 귀하게 컸는데?

그런데 만약 특수학교가 들어선다면 어떨까? 버스정류장에서, 집 앞 카페에서 귀하디귀하게 큰 아이가 발달장애인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예고도 없이. 일상의 한 장면으로. 인사도 없다. 갑자기 눈앞에 다가와 분명하지도 않은 발음으로 “저 가방 끈 좀 매주세요”라고 말하는 발달장애인. 처음엔 당황하지만 일단 도와달라니 도와준다. 그러고 나면 발달장애인이 “고맙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고래고래 인사를 한다. 도움 받을 일이 많은 발달장애인이다 보니 부모들이 그런 부분에 대한 교육은 철저히 시키는 것이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싶기도 하겠지만 이내 웃음이 날 것이다. 덩치에 안 맞게 아기 같은 눈빛을 띠고 고맙다고 외치며 활짝 웃는 발달장애인을 보면 왠지 모를 뿌듯함도 솟아날 것이다. 내가 착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막 들고. 그런 경험이 한 번, 두 번 쌓여간다. 특수학교가 동네에 들어서면. 일상의 한 장면이 된다.

또 있다. 좋은 점. 누구나 알고 있겠지만 직장생활은 잘하는 사람이 있고 못하는 사람이 있다. 업무적인 능력을 말하는 게 아니다. 대인관계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잘하는 이들을 보면 노이로제를 일으키는 직장 상사, 미운 짓만 골라하는 얌체 같은 동기, 암을 유발할 것만 같은 후배와도 히히덕거리며 잘 지낸다. 반면 대인관계가 힘든 이들은 이 모두를 생각하면 속에서 열불이 터진다.

직장상사는 더 제대로 된 인간이었으면 좋겠고, 동기는 가식의 탈을 벗었으면 좋겠고, 후배는 어디 데려가서 한 대 치면 소원이 없겠다. 그런데 그러질 못하니 속병이 쌓여가고 대인관계가 꼬이니 자신감이 떨어지고 일도 잘 안 된다. 결국은 잦은 이직으로 고생을 한다.

(사진:Mindmo/shutterstock.com )

귀하디귀하게 큰 아이가 정작 대인관계 때문에 화려한 스펙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대인관계의 왕 또는 여왕’이라 불리는 동료에게 조언을 구해본다. 대체적으로 비슷한 말을 한다.

“왜 바뀌지 않는 주변 사람들 때문에 네가 스트레스를 받아?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대로 살라고 하고 너는 너대로 살아”.

뻔한 말인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살아본 적이 없는 탓이다. 비슷한 취미를 가진 친구들과 학창시절을 보내고, 비슷한 성격과 문화를 지닌 이들과 그룹지어 대학생활을 마친다. 나와 다른 생각, 다른 문화, 다른 세계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보다 큰 다른 세계를 경험하라고 어릴 때부터 부모 따라 해외여행은 자주 가봤어도 어차피 휴양지에 가서 놀다 오거나 관광 위주의 일정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세계는 접하지도 못하고 ‘눈’으로만 모든 걸 보고 왔다.

그렇게 커서 던져진 ‘진짜’ 세계 앞에 귀하디귀하게 큰 아이는 한 없이 무력하다. 자신이 커왔던 세계와는 다르다. 스트레스가 쌓여간다. 망가지는 건 자신이다. 세상이 아니라.

그런데 동네에 특수학교가 들어서면 일상에서 접하게 된다. 같지만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그들의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굳이 돈 주고 해외에 나가지 않아도 같지만 다른 이들이 사는 세계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 모습을 보며 나와 다른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게 된다. 다른 생각을 갖고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 내 삶에 하나의 풍경처럼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사진: 쌤스토리의 특수교육이야기)
자자.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특수학교요? 어디에나 지어지는 게 아니에요. 자자. 지금이 기회예요. 부지(공터)가 있을 때 잡으세요. 기회를! 경험하세요. 새로운 세계를! 경험시키세요. 다르다는 것의 의미를! 그 안에서 찾으세요. 다른 것 안에 녹아 있는 공통의 것을! 그리고 ‘다큐’ 안에 숨어 있는 ‘예능’의 세계를!

특수학교 설립 관련한 주민토론회는 워낙 예민한 문제라 되도록이면 재미있게 풀어나가려고 노력했다. 이 모든 건 내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고, 장애 아이들과 차단돼 귀하디귀하게 자란 모든 아이들이 이상한 어른으로 자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분명 이 안에는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진실’이 숨어있다. 그 작은 진실을 끄집어내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주길…. 나는 바란다.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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