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맘’ 다시 보기
‘전업맘’ 다시 보기
2017.07.24 10:40 by 지혜

이순원 쓰고, 문지나 그린 <엄마가 낮잠을 잘 때>

신혜원 쓰고 그린, <세 엄마 이야기>

나는 오직 엄마로만 사는 ‘전업맘’이다. 물론 적지 않은 시간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운동을 배우고 사람들을 만나는 데 쓰지만 가장 많은 시간은 가사와 육아를 하는 데 들인다. 특히 아이를 돌보는 일은 내게 가장 중요해서 모든 일들은 늘 그 뒤로 밀린다.

엄마의 일은 마치 숨 같다. 물건들은 제 자리에 정돈되어 있고, 깨끗한 컵에 언제든 물을 받아 마실 수 있으며, 옷장에는 계절에 맞는 옷이 걸려있고, 욕실은 쾌적하게 유지된다. 아이의 차림새는 깔끔하고 손톱은 단정하다. 키도 크고 살도 찐다. 그렇지만 이를 위해 누가 어떤 수고를 들였는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아니 눈치채려고 하지 않는다. 내쉬면 들어오는 숨처럼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라 여긴다.

(사진: PR Image Factory/shutterstock.com)

그래서일까. 전업맘이라는 호칭에는 괄호가 따라붙는다. “(집에서 놀고먹는) 전업맘이다” 놀랍게도 생각보다 많은 전업맘들이 스스로를 이런 식으로 표현한다. 더 놀랍게도 그런 표현이 부당하다고 지적하는 나도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해왔다. 되돌아보면 나는 지금 나의 상황을 언젠가는 벗어나야 하는 어떤 잉여,로 여겼다. 자아는 집 안이 아니라 집 바깥에 있다고 믿었으므로, 비록 사적 영역에 속해있지만 곧 공적 영역으로 넘어가 내 이름이 걸린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한 장면 하나, 엄마와 딸이 마주하고 있다. 그들은 눈물을 뚝뚝 흘린다. 딸이 외친다. “난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 엄마가 외칠 때도 있다. “넌 나처럼 살지 말라고 했잖아!” 어느 쪽이든 화면 속 엄마는 푸석한 민낯에 뽀글이 파마를 하고 촌스러운 고무줄 바지를 입고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엄마처럼 살고 싶어”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대사일까. 왜 엄마는 벗어나야 하는 무엇,이 되었나.

 

 

달콤하지 않은 시간,

<엄마가 낮잠을 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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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낮잠 한 시간만 자려고 한다. 비교적 짧은 시간이지만 가족들은 엄마의 부재를 견딜 수가 없다. 아들은 청바지가 어디에 있는지, 라면이 어디에 있는지, 반창고가 어디에 있는지를 엄마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아빠도 마찬가지다. 텔레비전 리모컨이 어디에 있는지, 라면 두 개를 끓이는 데 물을 얼마나 부어야 하는지, 달력에 표시를 보면서도 춘천 가는 날이 언제인지 묻는다. 이는 ‘엄마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엄마는 빠짐없이 답한다. 집 안에서 일한다는 이유 때문일까. 이런 엄마를 두고 아빠와 아들은 “낮잠을 자는 동안도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척척 해결”해 준다며, “우리 집이라는 우주의 중심” 자리를 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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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이 자리는 결코 달콤하지 않다. 아빠가 그리는 무지개 안에서 소중하게 집을 안고 미소 짓는 엄마의 얼굴은, 오히려 서글퍼 보이기까지 한다. 엄마의 존재는 아빠와 아들이 부를 때만 가치를 인정받는다. 만약 엄마가 낮잠을 잔다고 대답하지 않았다면? 엄마는 타인이 요구하는 ‘엄마의 역할’을 성실하게 해냈기 때문에 ‘우주의 중심’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그림책이 불편하다. 아빠와 아들은 주체가 되어 엄마에게 ‘엄마다움’을 부여하고 엄마는 그들과 분리된다. 타인에 의해 떠밀리듯 앉아 버린 ‘우주의 중심’ 그 자리는 엄마에게 벗어나야 할 무엇,이 되었다.

엄마에 대한 그림책을 하나 더 소개한다. 위에 그림책이 놓친 것을 이 그림책은 가지고 있다. 볼 때마다 엄마로서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책이다.

 

 

 

 

내가 하고 있는 나의 일,

<세 엄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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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책의 주인공은 세 엄마다. 엄마와 엄마의 엄마, 그리고 엄마의 엄마의 엄마가 ‘엄마의 일’을 한다. 엄마는 집 앞 넓은 밭에 콩을 심기로 한다. 하지만 콩을 어떻게 심는지는 모른다. 그때 엄마의 엄마가 등장한다. 훨씬 나아지긴 했지만 두 명의 엄마가 콩밭을 가꾸기에는 땅이 너무 넓다. 그래서 또 엄마를 부른다. 어렵고 힘들 때에는 역시 엄마다. 엄마의 엄마의 엄마까지 오시니 콩 농사는 술술 진행된다. 엄마들이 모여 콩밭을 만들고 잡초를 뽑고 잘 길러 수확하고 까서 말려 메주까지 만든다.

이 그림책에도 아빠와 아들이 등장한다. 위에 그림책과 다른 점은 ‘아빠와 아들/엄마’라는 이분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엄마와의 관계나 차이를 드러내지 않고, 관찰자로서 동료로서 존재한다. 엄마에게 정체성을 부여하거나 역할을 요구하지 않는다. 넓은 밭에 무엇을 심을지, 콩을 어떻게 기를지, 수확한 콩으로 무엇을 해 먹을지 ‘엄마’라 불리는 이들은 ‘엄마의 일’을 스스로 결정한다. 딸과 엄마, 할머니, 증조할머니까지 4대가 함께 모여 농사를 짓는 모습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대를 물려 전해 내려오는 가업이 결국 역사가 되는 것처럼 이제까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엄마의 일’ 또한 역사의 일부임을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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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도 참 좋다. 온 식구가 엄마들이 만든 메주 위에 매달려 웃는다. 우리가 딛고 살아갈 든든한 바닥은 바로 ‘엄마의 일’ 덕분이라 말한다. 이 그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일이 하고 싶어진다. 내가 하고 있는 나의 일 그래서 나의 자리, 엄마.

엄마로 살면서 왜 집 안은 집 바깥보다 덜 중요한 영역일까 의문이 들었다. 바깥처럼 안에서도 주체적인 노동을 하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자아를 찾아 바깥으로 나간다면, 자아를 찾아 바깥에서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물학적인 성별에 상관없이 그저 이 일이 나에게 맞는다면, 여자든 남자든 ‘엄마의 일’이 자연스러운 날이 오길 기다린다.

모두가 엄마는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 존재 가치는 내가 판단할 일이다.

  Information

<엄마가 낮잠을 잘 때> 글: 이순원 | 그림: 문지나  | 출판사: 북극곰 | 발행: 2015.06.28 | 가격: 15,000원

<세 엄마 이야기> 글·그림: 신혜원 |  출판사: 사계절 | 발행: 2008.06.27 | 가격: 10,500원

 

 /사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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