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수업이라고요? 우리 대학생인데요?
토요일 수업이라고요? 우리 대학생인데요?
2017.08.23 16:02 by 박경린

“일단 대학만 들어가, 그러면…”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가장 많이 듣고, 가장 많이 하는 말. 대학만 들어가면 연애도 하고, 여행도 다니며, 그간 봉인된 것들을 모두 해보려 다짐한다.

우리나라 대학생의 삶은 자유로운 편이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남은 시간을 아르바이트나 대외활동에 사용할 수도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 교실에 묶여있던 시절을 보상받는 것처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혹은 누군가에게 간섭받지 않고 직접 결정을 내린다. 그에 따른 결과, 또 그에 대한 책임도 모두 본인이 져야 하지만 학생들은 그 자유를 마음껏 누린다.

하지만 그 자유의 참맛을 모르는 대학생들이 있다. 바로 벨라루스 대학생들이다.

벨라루스 국립대학교 전경의 모습.

그들에게 선택권이란?

이 시기 대학생들에게 가장 큰 관심거리는 다음 학기 시간표다. 개설되는 수업 계획서를 보고, 본인이 원하는 시간대에 희망하는 과목을 선택한다. 물론 학생들이 너무 몰리는 과목은 눈치싸움, 시간싸움도 해야 하지만 말이다. 이 과정이 너무나도 당연했기 때문에,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특권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못 해봤다. 여기 벨라루스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벨라루스 국립대학교 강의실 내부 모습.

벨라루스에서 처음으로 사귄 현지 친구에게 주말에 놀러 가자고 제안한 적이 있다. 그러나 친구의 답변은 “토요일에 학교 수업이 있어 못 가겠다”는 것이었다. 초등학생 이후로 토요일 수업을 경험한 적이 없는 난 순간 당황했다. 친구의 말이 너무 의아했던 나는 “왜 토요일에 수업을 넣었냐”고 물었는데, 돌아오는 답변이 귀를 의심케 했다.

“우리는 학교에서 시간표를 짜서 줘. 그래서 이번 학년에는 토요일에 계속 학교 나가야 해”

벨라루스 대학교 시스템은 틀에 갇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학교가 성적순으로 학생들에게 반을 배정한다. 학생들은 동일한 반에서 계속해서 수업을 듣는다. 아침 8시부터 저녁 7시까지, 오전‧오후반으로 나뉘어 구성된 시간표 내에서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과목을 고를 수 있는 기회 또한 없다. 철저한 관리 속에서 진행되는 교육이란 측면에선 유익할지 모르겠지만, 자율성을 배제한다는 면에선 어쩐지 안타까움이 남았다.

벨라루스 대학생들의 수업시간 모습이다.

졸업 후 국가를 위해 일해야 취직할 수 있다?

졸업 후에도 학생들에게 선택권은 주어지지 않는다. 여느 나라와 같이 벨라루스 학생들에게도 장학금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우리나라로 치면 수능 같은 시험을 통해 입학하게 되는데, 성적이 좋은 학생들에게는 전액 장학금이 주어진다. 단, 한 가지 조건이 따라붙는다.

‘졸업 후에 2년 동안 반드시 국가를 위해 일해야 한다. 지키지 못할 경우, 모든 등록금을 다 반납해야 한다.’

졸업을 앞둔 학생들은 그래서 고민이 깊다. 졸업 후에 본인이 입사하게 될 회사, 혹은 기관으로부터 증명서를 받아 학교에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학교 측으로부터 다시 승인을 받는다. 승인을 받지 못하거나 본인이 직접 기관을 찾지 못한 경우에는 국가에서 가라고 하는 지역으로 가야 한다. 민스크가 아닌 타 지역 출신 학생들은 본인의 출생지로 돌려보내지는 경우가 많다.

벨라루스 국립대학교 증명서(certificate).

같이 일했던 동료의 아버지는 의대를 졸업하고 시골 병원으로 발령받았다. 그는 다른 의사들도 없는 그곳에서 2년 동안 일을 해야 했다. 해외 대학원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도 예외는 없다. 모두 2년간 일을 해야 유학을 갈 수 있다.

이런 정책이 생긴 배경은 무엇일까. 사실 처음에는 좋은 취지로 시작되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학생들은 국가에서 지정한 좋은 직장에서 일할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취업난 걱정을 덜어주겠다는 취지이기도 하다. 물론 시작 당시에는 국가 기관에 좋은 일자리도 많았다. 하지만 점점 졸업생 수가 일자리 수를 초과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했고, 지방으로 발령받는 졸업생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최근에는 장학금을 받지 않은 졸업생들도 정부 지정 기관에서 일을 해야 하며 거부할 경우, 졸업장을 주지 않겠다고 공표되기도 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강제성 뒤에 숨겨진 참교육

벨라루스 대학생들에게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게 오히려 장점이 될 때도 있다. 모든 학생이 모든 과목을 다양하게 배울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경우 수업은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따른다. 때문에 문과 계열 학생이 수학 과목을 선택하는 경우는 드물며, 이과 계열 학생이 철학 공부를 하는 경우도 드물다.

하지만 벨라루스 대학생들은 전공에 상관없이 입학하면 교육학, 철학, 심리학, 그리고 벨라루스의 역사, 이렇게 네 과목을 필수로 들어야 한다. 모든 학문의 기초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체육 수업도 커리큘럼에 포함되어있다. 춤을 배울 수도 있고, 농구를 배울 수도 있다. 체육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우리나라의 대학 교육과 비교하면, 꽤 흥미로운 구성이다.

녹음이 우거진 벨라루스 국립대학교 산책길이다.

모든 일의 첫 취지는 항상 좋다. 최대한 많은 사람이 최대한 만족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결정이 내려진다. 하지만 그 취지를 모든 사람이 계속해서 공감하느냐가 문제다. 정부는 졸업생들의 취업난을 걱정해서 좋은 의도로 정책을 세웠다. 하지만 졸업생들은 정부가 일자리 찾지 못한 학생들로부터 벌금을 수거하기 위해서 정책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느낀다. 학교는 학생 관리와 교육 커리큘럼을 더욱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 통일된 시간표를 지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학생들에겐 자유가 없는 답답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외국인의 신분으로, 어떤 것이 옳은지 그른지 판단할 순 없다. 하지만 ‘벨라루스 사회 전반적으로 형성되어있는 통제적 분위기가 교육제도에까지 뻗어있다’는 생각을 지우긴 힘들다.

 

/사진:박경린


The First 추천 콘텐츠 더보기
  •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24주 연속 1위 브랜드의 저력으로”…‘나르카’ 운영사 ‘언커먼홈’, 매쉬업벤처스 등으로부터 후속 투자 유치

    이제 헤어 케어도 브랜딩이다!

  •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창업팀은?”…유망 초기 스타트업 뽑는 ‘혁신의 숲 어워즈’ 막 올랐다

    최근 1년 사이 가장 주목할만한 초기 스타트업을 꼽는 '혁신의숲 어워즈'가 17일 대장정을 시작했다. 어워즈의 1차 후보 스타트업 30개 사를 전격 공개한 것. ‘혁신의숲 어워즈’...

  •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Only for you”…대세는 초개인화 서비스

    초개인화의 기치를 내건 스타트업들이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타 산업과 연계, 핵심 기술 접목…“관광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라”

    '관광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틈새에 대한 혁신적인 시도 돋보였다!

  •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생산성, 효율성 쑥쑥 올리는 솔루션”…매쉬업벤처스, 스타트업 ‘마일 코퍼레이션’에 초기 투자

    기업의 공간, 자산 관리를 디지털 전환시킬 창업팀!

  •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당신에겐 더 큰 무대가 필요하다”…스타트업의 해외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의 등장!

  •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기업의 글로벌 성장 발판 마련”…한국액셀러레이터협회, 뉴저지 진출 전략 웨비나 개최

    국내 유망 스타트업의 미국 진출, 맞춤형으로 지원한다!

  •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초록은 동색…“함께 할 때 혁신은 더욱 빨라진다.”

    서로 경쟁하지 않을 때 더욱 경쟁력이 높아지는 아이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