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 말고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말고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말고 '좋아하는' 것!
2017.09.06 17:32 by 류승연

“걱정 마. 아무리 장애가 있어도 잘하는 게 하나쯤은 있을 거야. 그걸 찾아서 키워주면 돼”

아들이 장애 확진을 받고 난 후 아마도 가장 많이 들었던 위로의 말이 아닐까 싶다. 얼핏 생각하면 장애 아이 부모를 격려해주는 좋은 말인 것 같지만 속사정을 알고 나면 그렇지만도 않다. 특출나게 잘하는 게 없는, 평범한 장애 아이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장애가 없는 아이들이라고 해서 모두 공부를 잘하지 않는 것처럼, 모두 달리기를 잘하거나 모두 피아노를 잘 치지는 않는 것처럼.

그림이나 음악, 수학 등 어느 한 분야에서 비범한 능력을 나타내는 발달장애인을 일컬어 ‘서번트 증후군’을 가졌다고 한다. 그러나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이들은 전체 자폐증 장애인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며,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우리 아들과 같은 지적 장애인 중에서는 더더욱 찾아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 아들도 무엇이든 좋으니 잘하는 게 하나쯤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장애인으로 사는 삶이 조금은 더 특별해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서번트 증후군을 가진 발달장애인의 경우를 보니 남들과 다른 특별한 재능은 어릴 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9살이 된 우리 아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너는 뭐를 잘하니?” 대답 없는 질문을 던져본다. 뭐라고? 귀여운 소리 내며 웃는 걸 잘한다고? 마음에 안 드는 상황이 발생하면 일단 제자리에 주저앉아 반항하는 걸 잘한다고? 아니면 엄마의 방어를 뚫고 손가락으로 잽싸게 밥알 집어먹는 걸 잘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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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아들도 잘하는 게 있긴 한데 도무지 재능하고는 연결이 되지 않고 사회생활에는 더더욱 써먹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렇다면 어찌할까? 기능적으로 발달시킬 궁리를 한다. 학교 교육과 치료실 수업과 가정교육을 연계해 지시 따르기 훈련도 열심히 하고, 한 가지 일에 몰입하는 집중력도 키우고, 손가락 소근육도 활성화시키고, 정교한 작업도 할 수 있을 만큼 인지도 높이기 위해 노력!

이런 과정들을 혹독하게 거쳐 발달장애인으로서 최고의 영애라 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질 수 있다면 다행이다. 어떤 직업이냐고? 바로 바리스타다. 깨끗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일반인들과 함께 어울려 생활하며 맛있는 커피를 내려주고 월급까지 받는 꿈의 직업, 바리스타!

아니면 발달장애인계의 삼성이라 할 수 있는 기업 ‘베어베터’에 취직할 꿈도 품어본다. 일단 출근하고 나면 집에 가라고 해도 퇴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꿈의 직장 베어베터…. 하지만 이 또한 좁은 문이라는 걸 안다. 경쟁률 때문이 아니라 아들의 기능적인 면 때문에.

그러니까 이런 거다. 비장애인인 딸을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시키고 나서 엄마들을 만난다. 이때만 해도 대다수 엄마들은 자기 자식이 SKY에 입학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받아쓰기도 백 점, 수학시험도 백 점, 성적표도 올 ‘잘함’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고학년을 지나면서 슬슬 아이의 공부 머리에 의심이 들기 시작하다가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면 “아~ 내가 한 때 헛된 나비의 꿈을 꿨구나~”라는 걸 깨우치게 된다. 마찬가지인 거다. 모든 장애 아이들이 바리스타를 하고 대기업에 취직할 수 있을 정도로 기능이 좋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ADragan /shutterstock.com)

다시 또 묻는다. 그러면 이젠 뭘 어찌해야 할까? 한때는 아이의 인생을 부모인 내가 설계해서 모든 걸 완벽하게 세팅을 하고 세상을 뜨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기능적으로 덜 발달했다고는 해도 한 가지 일을 반복적으로 10년 이상 하면 어느 정도 손에 익기는 하겠지. 우리 부부가 하는 모든 일을 50세에는 중단하고 아들과 함께 카페를 차릴 생각을 했다.

부모와 함께 10년, 20년 이상 한 자리에서 카페를 운영하며 노하우를 익히게 한 뒤 어느 정도 때가 되었다 싶을 때 가게를 물려줄 생각을 했다. 다만 아들이 경영권을 책임질 경우 경제적 안정까지 기대할 수는 없기에 부부가 죽기 전까지 30억 원을 만들어 아들 앞으로 매달 얼마씩의 돈이 나오게 은행에 신탁을 맡길 계획을 세웠다.

결혼? 결혼도 시켜야지. 아들의 경우처럼 유전에 의해서가 아닌 사고의 후유증으로 지적장애가 온 착한 처녀를 찾아 며느리로 맞을 계획을 세웠다. 그래야 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장애가 없는 비장애인, ‘일반인’일 테니.

그 아이들이 자기 부모를 돌볼 수 있는 20살까지 내가 손주들을 키우고 나면 이 생에서 내가 할 일은 다 끝낸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 가서 마음 편히 눈을 감자고 생각했다. 이러한 내 계획을 몇몇 이들에게 말하니 멋있다고 박수를 친다. 꼭 이루라고 응원도 한다. 나도 그 길이 정답인 줄만 알았다. 그리 살아야지 했다.

하지만 아이가 성장하며 엄마인 나도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걸 느낀다. 이 모든 게 엄마인 나의 욕심이고 허영일 뿐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아무리 장애가 있다고 해도 내 생각대로 아이의 인생을 재단할 수 있는 건 아니며, 내가 계획한 대로 아이가 따라주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모든 자식 된 자들의 본성이다.

우리조차도 공부 열심히 해서 의사 되고, 판사 되고, 공무원 되라는 부모님 말씀을 안 듣고 자랐지 않은가! 장애인 자식도 마찬가지다. 장애가 있다고 자기 의견이, 자기 생각이 없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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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버라이어티한 과정을 다 거치고 난 뒤 지금에 와서 드는 생각은 이렇다. 꼭 잘하는 게 없어도 괜찮다. 앞으로도 학교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고, 여건이 허락 되는대로 치료실 수업도 늘리고, 아이가 잘하는 것을 찾거나 기능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을 하겠지만 설령 그 결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 괜찮은 것이다.

대신 여가생활을 누리는 데 있어 비장애인보다 제약이 많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한평생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좋아하는 것’은 반드시 찾아주자는 생각이다. 잘하는 것으로 경제활동까지 하면서 살면 더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좋아하는 것으로 취미활동을 하며 살 수만 있으면 된다. 지역사회 안에서 취미생활을 즐기는 장애인으로 살 수만 있으면 그것으로 좋은 것이다.

남들 보기 좋은 번듯한 직장은 못 구한다 해도 괜찮은 것이다. 박스 접기를 하거나 수건을 개도 괜찮다. 제과점 한 켠에서 달걀 깨는 일을 하거나, 주차장 청소를 해도 괜찮다. 무엇이든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몫을 하고 살면 된다. 그러면서 나머지 시간에 좋아하는 일을 즐기며 누리며 살면 된다.

(사진:Creativa Images/shutterstock.com)

‘잘하는 것을 찾아보자’에서 ‘좋아하는 것을 찾아주자’로 생각이 바뀌고 나니 마음의 부담감이 먼저 덜어진다. 일단 죽기 전까지 아들한테 물려줄 30억 원을 안 벌어도 되니 그것만으로도 숨이 좀 쉬어진다.

엄마로서 해야 할 일도 달라진다. 내 새끼만 바라보고 내 새끼의 기능을 한 치라도 더 발전시키기 위해 끙끙대는 대신 내 새끼만이 아닌 남의 새끼도 함께 즐기고 누리며 잘 살 수 있도록 복지의 틀을 확장시키는 데 관심이 가기 시작한다. 사회 안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찾기 시작한다. 단지 생각만 바꿨을 뿐인데 엄마인 나의 삶에도 변화가 온다.

아이가 잘 하는 것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찾아주다가 좋아하는 일을 잘하게 되어 지원해 주는 것은 그 출발점이 엄연히 다를 것이다. 나는 후자를 택하련다. 비록 이 또한 시행착오의 한 과정이라 할지라도 일단은 GO다. GO!

/사진:류승연

필자소개
류승연

저서: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전)아시아투데이 정치부 기자. 쌍둥이 출산 후 180도 인생 역전. 엄마 노릇도 처음이지만 장애아이 엄마 노릇은 더더욱 처음. 갑작스레 속하게 된 장애인 월드. '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에 깜놀. 워워~ 물지 않아요. 놀라지 마세요. 몰라서 그래요. 몰라서 생긴 오해는 알면 풀릴 수 있다고 믿는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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